어느 동계올림픽 때였던가, 김연아 선수가 빙판에 넘어지자 누군가 이런 트윗을 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피겨 스케이트 연기가 진행되는 그 몇 분의 시간동안 관객은 조마조마하다. 혹시나 실수하면, 넘어지면 어쩌지. 빙판이라는 무대는 불안을 증폭시키고, 불안은 긴장을 낳고, 긴장은 기술이 성공했을 때의 쾌감을 배가한다. 그러다 쿵! 하고 선수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내 심장도 내려앉는다. 온 맘을 다해 누군가를 응원하는 기분, 그게 내가 피겨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주의 - 스포일러 투성이!!)
오랜만에 그런 기분을 느꼈다. 몇 분짜리 피겨 연기가 아니라 두 시간짜리 영화다. 신선도100% 카피를 달고 나온 영화 <엑시트>. 과연 이 영화의 장르를 무엇이라 콕집어 규정하기도 모호할 정도로 다채로운 색이 칠해져있다. 초반을 지배하는 정서는 답답함이다.
한 마디로 K환장 대잔치, 실감나는 한국의 꼰대문화가 목을 조여 온다
여기서 더하면 질식하겠다 싶을 타이밍에 와장창, 가스통이 창문을 깨고 날아들며 게임의 시작을 알린다. 이용남과 정의주, 생존게임에 내던져진 두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건 단련된 몸과 운동화와 몇 가지 클라이밍 장비뿐이다. 대도시 한복판에서 유독가스를 피해 빌딩을 넘나드는 장면들은 파쿠르의 긴장감과 짜릿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그런 쾌감보다 더 찐하게 공유하는 감정은 아마 용남과 의주를 응원하는 마음일 것이다. 바로 그 마음이야말로 <엑시트>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핵심 메시지이고, 관객들이/적어도 내가 울고 웃게 되는 이유였다.
그 마음은 스크린 밖에 머물지 않는다. 영화의 후반부, 재난의 위험에서 벗어난 영화 속 시민들은 드론 카메라를 통해 여전히 재난 한복판에 놓인 두 청년의 뜀박질과 얼굴을 보게 된다. 그 순간 시민들과 관객의 마음은 스크린 안에서 하나가 된다. 용남과 의주의 앙다문 입, 상처투성이의 손, 뜀박질하는 다리, 그리고 무너질 것 같으면서도 금세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우리는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형형색색의 드론들은 21세기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그 드론에는 용남과 의주를 간절히 응원하는 모두의 마음이 실려있다. 그 마음은 21세기 버전의 원기옥이 되어 결국 구조의 손길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드론은
지켜보고 있었으나 구하지 못했다는, 세월호에 대한 한국사회의 트라우마를 잠시 다독이는 진통제이기도 하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응원하게 될까. 일단 용남도 의주도 어벤져스마냥 거리감 느껴지는 영웅들이 아니다. 클라이밍 에이스들이라고는 해도 벽에서 미끄러지고, 힘들어하고, 지치고, 확신 없이 불안해한다. 자발적으로 구조의 기회를 포기하는 결정은 영웅적이지만, 이들은 바로 다음 순간 울음을 터뜨리며 순식간에 관객과의 거리감을 좁힌다. 용남도 의주도 그저 내 옆에 있는 한 사람, 한 청년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거의 맨몸으로 재난에 맞서는 그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SOS 모르스부호를 입으로 표현한 [따따따 따-따-따- 따따따] 역시 소리만 떼놓고 보면 응원구호처럼 들린다.
용남과 의주의 생존게임이 의미하는 바는 굳이 행간을 읽을 필요도 없이 영화가 직접 던져준다. 우리 사회에서 청년들이 처한 상황이다. 이용남, 스펙에 도움도 안 되는 일만 하다가 나이가 꽤 찰 때까지 취업도 못하고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백수. 정의주,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명찰을 달고 성희롱과 갑질에 시달리며 홀로 세상과 싸우는 직장인. 서로 대비되는 점도 많지만 두 사람은 이 시대 청년들이 부딪히는 문제를 적당히 버무려 디자인된 캐릭터다. 무엇보다, 사력을 다해 뛴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마치 무지개처럼 동화적인 엔딩은, 이 영화가 우리 사회의 청년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 아닐까 싶다.
비현실적이면 어떤가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애초에 이런 방식의 테러가 가능할 리도 없어 보이고, 용남과 의주가 아무리 클라이밍 에이스였다 하더라도 도심 파쿠르를 저렇게 이어갈 수 있는 체력과 근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웨딩홀, 학원가, 헬스장, 고기집, 지하철역, 빌딩숲 등등 온갖 한국적인 배경과 노래방 기계 같은 사물은 마치 용남과 의주가 우리 동네에서 뛰어다니는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배우들의 힘도 상당하다. 그 생지옥을 겪은 뒤에 엄마에게 “한번 업어보고 싶었어”라 말하는 용남을 관객들에게 설득할 수 있는 배우는 조정석 뿐이지 않을까. 의주 역시 윤아가 가진 눈빛과 목소리, 캐릭터가 설정 단계부터 반영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맞는 옷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평론가 강유정 교수는 공포영화를 정서의 롤러코스터라 표현했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는 않는, 오싹함을 즐기는 시간. <엑시트> 역시 그렇다. 오싹함 보다는 울고 웃게 만드는 롤러코스터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재난의 긴장과 불안에 지칠 때쯤이면 포스터의 문구대로 '짠내나는' 위트가 숨통을 틔워준다. 그렇게 쫄깃해졌다가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어딘가 후련해진다. 롤러코스터를 좋아한다면,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다면, 그리고 응원 받고 싶다면, <엑시트>는 충분히 가치 있는 두시간과 오래 남는 여운을 선사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