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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Jul 31. 2019

김복동의 곁, 우리의 자리

주전장이랑 같이 보세요


<김복동>을 봤다. 하필이면 일본 극우세력이 깽판을 놓고 있는 정국이라 일본 두 글자만 봐도 지겹지만, 확실히 '사람 이야기'는 결이 다른 측면이 있다.



이나영 교수님은 <김복동>의 연출을 두고 '풍부하되 절제된 감정구조'라고 표현하셨는데 딱 그렇다. 과하게 감정을 부추기는 장면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감정의 진폭이 좁지도 않다.  종종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화가 나고(한일 위안부 합의, 아베의 의회 출석 발언), 속이 시원해지고(운동가 김복동의 집회 발언), 숙연해지고(자신의 몸을 태우다시피 할 때), 울컥하는 마음에 이어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한다.


위의 칼럼에서 이나영 교수님도 지적하고 있지만 <김복동>은 여러 모로 얼마 전 개봉한 <주전장>과 묶인다. 같은 소재, 다른 접근이랄까. <주전장>의 미키 데자키 감독은 시사자키 인터뷰에서 일본의 극우세력과 역사수정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자료만 취사선택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도 명확하게 남아있는 자료, 즉 피해자들의 증언과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피해자의 증언과 경험에 주목하는 방식 하나가 바로 <김복동>이라는 다큐다. 그리고 <주전장>의 시선이 일본의 극우와 역사수정주의자들을 향해있다면, <김복동>의 시선은 여성 인권운동가 김복동과, 그녀의 곁으로 향해있다. 


그 곁의 자리는 좀 더 우리들의 것이다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실 때마다 이제 몇 분이 남았다. 평균연령이 아흔이 넘었다, 이런 얘기들이 언론에 반복된다. 배째라는 방식으로 나오는 아베 내각이 알아서 태도를 바꿀리는 없다. 외교는 원래 복잡한데 지금 한일관계는 더 복잡하고 등등등. 이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적어도 당사자들의 삶과 경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원칙만큼은 가져갈 수 있지 않나. 바로 <김복동>처럼.




덧. <김복동>에서 가장 열불나는 장면 두 가지가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합의와 관련이 있다. 다시 생각해봐도 대체 이건 무슨 짓이었나 싶다. 요즘 한일 갈등을 두고 미국의 중재 어쩌고 할 때마다 기가 차는 게, 미국이 한국이랑 일본 화해시키려고 한 결과 중 하나가 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이었고, 또 하나가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 아니었나. 근데 무슨 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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