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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Jul 16. 2019

사랑도 차별금지가 되나요

김원영, 몸으로 묻고 몸으로 답하다

배너사진 출처: 서울변방연극제 페이스북




지난 주말, 나에게는 변호사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연극인 김원영의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을 보고 왔다.



그는 그동안 출간한 책들을 통해 여러 차례 연극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그가 처음 내뱉은 연극 대사에 얽힌 에피소드는 책을 읽은 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① 재활원에서 생활하는 ② 10대 중반의 청소년이 ③ 인생 주마등을 담아 ④ “도대체, 도대체 당신은 어디 있는 겁니까!”라며 신의 존재를 물었던 사연은 <희망 대신 욕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연극과 같은 공연예술은 인간의 신체가 표현의 중심에 놓인다. 극의 서사, 무대 미술과 음악, 조명, 이를 종합하는 연출의 역량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 모든 예술적 시도는 배우의 신체를 통해 구현되어 관객에게 전달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연극이 다양한 정도와 유형의 장애를 가진 내 친구들에게 ‘아름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278p


과연 이번 작품도 그러했다.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김원영은 자신의 몸을 통해, 그 몸 자체와, 그 몸이 살아가는 일상과, 그 몸에 비치는 사회적 시선과, 그 몸이 던지는 질문과, 그 몸이 가지는 매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고 힘껏 보여준다.

 

사진 출처: 서울변방연극제 페이스북


특히 후반부의 퍼포먼스는 정말 놀라울 정도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휠체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보여주는 짜릿한 곡선, 맨손으로 바닥을 치며 만들어내는 박진감 넘치는 리듬에 놀라긴 이르다. 그는 바닥을 종이삼아 몸으로 붓질을 하고, 마치 투쟁현장에서 춤을 추는 몸짓패의 동작처럼 곡선-직선의 팔움직임과 상체근육의 조화를 통해 아름다운 비례를 그려내고, 마지막엔 깨알 같은 관객과의 애드립까지 보여준다. 배경음악 하나 없이, 몸 하나로 보여주는 이 역동적인 몸짓들은 한 마디로 ‘매력적이다’.


동시에, 그 몸짓들은 어떤 질문에 대해 그가 제시하는 하나의 답처럼 보인다. 그 질문은 연극의 전반부에 돌직구처럼 날아든다.


사랑과 우정에서의 차별 금지란 가능한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매력’에 대해서는
차별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은 사람이라면 익숙한 질문이겠지만, 몸을 통해 직접 발화되는, 거꾸로 그 몸에 투영되기도 하는 연극의 메시지 전달방식은 활자화된 텍스트에 비해 훨씬 감각적으로 뇌리에 파고든다.


어쨌든 이 연극이 ‘정답’이라기보다 ‘그가 제시하는 하나의 답’인 이유는 모든 사람이 연극을 통해 자신의 매력을 드러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진짜 연극 무대뿐만이 아니라, 비유적인 의미에서의 무대가 필요하다.


“결국 우리에게는 각자가 가진 생생한 고유성과 숨겨진 ‘아름다움’을 전개할 무대와 관객이 필요하다. 나는 이러한 무대가 설계되어 진지한 관심을 가진 관객을 만날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훨씬 깊은 존중을 받으며 매력적인 관계로 진입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임을 보이고자 한다.”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15p


무대가 주어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발언권이 주어지고, 자기 서사를,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하여 자신을 ‘오래 볼 수 있는 기회’를, 그를 통해 아름다움과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매력’에 대해 차별적인 시선을 가지는 것이 개인의 문제이고 고치기를 강요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떤 집단이 자신의 고유성과 아름다움을 전개할 무대를 제공받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이고, 그 자체로 차별이기에 시정해야 한다.


 

나는 우리가 인간의 몸에서 아주 다양한 맥락과 의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 편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고, 내가 서 있는 시점視點도 중요하다.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263p


그리하여 이 연극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처럼, 다른 시점을 제공해주는, 더 많은 계기들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물론 비유적인 의미에서의 무대들뿐만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연극 무대도 더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덧 - 직업병인지 다양한 '소리'들도 기억에 남았다. 바닥과 옷감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스윽스윽하는 소리,  삐빅하는 전동휠체어의 조작음, 고무로 된 휠체어의 바퀴가 찢어내는 마찰음, 위에도 언급했던 손바닥으로 마루바닥을 쳤을 때 나는 소리 등등. 특히 몇 차례 쿵, 하고 떨어지던 구두소리에서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떠올랐다.  조제를 지금 다시 본다면,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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