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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Aug 26. 2019

촛불이 선택한 조국, 그리고 정유라

일단 박무진처럼 해보심이..

오늘로 휴가를 마치고, 대강 일주일치 뉴스를 복습했다. 기억해야 할 이름이라면 이용마와 김용균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이슈의 중심엔 조국 후보자가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볼 용도로, 몇 가지 단상을 끄적이려고 했는데 엄청 길어졌네... 내일 출근은... orz




1. 많은 분들이 지적하듯 논문이니 장학금이니 하는 건 불법여부를 떠나 교육자원에 대한 접근성이 차별적이라는 현실을 보여준다. 여기에 이게 뭐가 문제냐며 말을 얹은 사람들은 모두 2004년에 나온 김상봉 쌤의 <학벌사회> 한 구절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런 편리함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은 그것이 별 것 아니라고 애써 폄하한다. 그러나 정작 그런 편리함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이 땅의 대다수 사람들은 그들이 누리는 편리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자기들의 결핍을 통해서 알고 있다."




2. 처음에 논란이 불거지자마자 빠르게 자신이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를 인정하고 고위관료로서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대응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야당의 공세야 이어졌겠지만 조국 후보자와 비슷한 자원을 누리고 살아온 이들과 열혈지지자들의 어설프고 말같지도 않은 실드가 키웠을 정치혐오의 대가에 비하면 그쪽이 나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자신의 결핍과 빈틈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60일 지정생존자>의 박무진이 가진 차별성 중 하나는, 몰랐던 문제에 맞닥뜨리면 학습하고 정면으로 돌파한다는 원칙이었다. 드라마를 요 며칠 사이 몰아서 봤더니 조국 후보자의 말투나 이미지는 박무진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던데, 박무진의 태도를 좀 배우신다면 훨씬 매끄럽게 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3. 정유라-최순실 사태와 비교하며 국정농단까지 연루시키는 건 명백한 오류라 해도, 입시 단계에서 부모가 가진 자원이 개입하는 문제라고 본다면 당연히 유사한 점이 있다. 조국 후보자의 개입여부는 사실관계가 밝혀지면 정리될 것이니 차차 지켜보면 될 것인데 어쨌든 이 거대한 반발심은 2016년에도 지금도 참 한국적이다. (미국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곤 하지만)


2016년 촛불의 기폭제는 이대 시위였고, 이대 시위의 도화선을 당긴 건 미래라이프 대학,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엔 정유라의 입시 부정이었다. ‘덕분에’ 한국은 이만큼이라도 나아졌지만, ‘그래서’ 촛불은 부르주아 우파혁명의 선을 넘지는 못했다. 그리고 2019년의 대한민국은 촛불이 선택한 문재인 대통령이 통치하고 있으며, 조국 후보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다. 결국 꼬리를 물고 올라가면 조국 후보자는 정유라의 입시부정이 만든 법무부장관 후보자다. 그에게 제기된 가장 큰 의혹과 국민적 반발심이, 3년 전 정유라에 대한 그것과 닮았다는 것은 참 흥미로우면서도,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4. 서울대-고려대의 촛불집회가 잠깐 이슈였나보다. 장학금과 제1저자 논란, 이게 중요한 이유는 정말 많지만, 이 이슈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교육자원에 대한 접근성의 문제다.  난 내가 학생일 때나 지금이나 장학금은 성적이 아니라 경제적 수준에 따라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학부든 대학원이든 학교가 수험생들이 학교에 '잘 맞는지' 판단할 수 있도록 입시에 좀 더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방향이 좋다고 생각한다. (줄 세우기 좋은 시험이랑 대충 포장하기 쉬운 스펙들 말고) 그게 교육자원으로의 접근성을 평등하게 만드는 길이다. 당연히 가장 좋은 방법은 학벌자원 자체를 상대화시켜버리는 것인데 그건 입시 수준을 넘어선 장기적 과제라고 치고.


암튼, 교육 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려면 이미 명문대 재학생으로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부터 살폈어야 할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법인' 서울대는 말할 것도 없고 고려대조차 비수도권 국립대보다 더 많은 ‘국가’지원금을 받고 있었다.(지금이라고 다를까?) 불평등의 탑 전체를 문제시하지 않고 탑에서 내 위에 있는 사람만 비난하면 그건 그냥 떼쓰는 거다. 같은 불평등의 구조에서 자기가 누리는 건 권리고 타인이 누리는 건 특혜라고 보는 태도는 자기 삶에서 이룬 성취가 온전히 스스로의 힘만으로 쟁취한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내가 존경하는 이들 상당수는 자신이 이룬 성취를 공적인 기회의 부여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주변을 좀 살펴보면 나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위치는 그저 운이 조금 더 좋았기에 차지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내가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주어진 자리에 성실하고자 했던 이유는, 운의 차이로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런 감각을 나는 고등교육 단계에서, 강의실의 안팎에서 배웠다. 모여서 촛불을 들었다는 이들에겐 그런 감각이 존재할 수 없는 고등교육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요즘 특히 니편내편이 심해서, 그래서 조국 후보자가 적격이냐 부적격이냐 물으신다면, 검경수사권 조이랑 공수처 말고도 형사정책을 좀 보완해주시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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