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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Oct 28. 2019

시사직격, 문제는 친일이 아니다

시사 프로/레슬링이 문제죠


KBS 시사직격, 지난주 금요일 방송분이 아직까지 논란이다.



문재인 ‘씨’가 웬 말이냐는 목소리는 그냥 해프닝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고, 거부반응의 핵심은 한일문제가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관 때문이라는 산케이 신문 해설위원의 발언이 아닌가 싶다. 진행자인 임재성 변호사는 일본 사회에 실제로 존재하는 인식이며, 그것을 대면할 필요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아마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여론에 관심을 가지고 따라왔던 사람들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나 역시 일본사회의 여론은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대면의 방식이다


일본의 보수언론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해왔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체결한 위안부 합의를 뒤집었다는 이유다. 우리 입장에서는 위안부 합의 자체가 잘못된 결정이었으니 뒤집었을 뿐이다.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2015년 11월 박근혜 정부 지지율은 결코 낮지 않았고 1년 뒤에 탄핵소추가 이뤄질 조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아베 총리는 기존의 일본 정부 스탠스에서 어느 정도 양보한 합의안을 내놓았다. 그렇게 양국의 외교부장관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 선언한 합의를, 후보 시절부터 비판적으로 언급해왔고 정부 출범 이후에 결국 잘못된 합의라 이행하지 않겠다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을, 일본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러다보니 일본 언론은 문재인 정부에 불리한 이슈를 적극적으로 보도해왔다. 심지어  조국 전 장관 사퇴 뉴스를, NHK를 비롯한 주요 언론들이 속보로 쳤다. 그만큼 상당수 일본 언론은 문재인 정부에 적대적이고, 보수적인 지면언론의 영향이 큰 일본 여론지형 역시 문재인 정부에 적대적일 확률이 높다.




우리 입장에선 이런 과거도 모르는 놈들이, 라며 황당하게 느껴지지만 어쨌든 전쟁 치르거나 아예 국교를 단절할 게 아니라면 이 상황을 이해는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사직격 제작진이 산케이 신문 해설위원의 입을 통해 나온 주장을 어떤 방식으로든 프로그램에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 점에는 나도 동의한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다루는 방식이다.


여기서 나는 시사직격 제작진이 섬세하지 못했다고 본다. 일본 진보/보수, 한국 진보/보수 4명 둘러앉아서 입씨름하는 게 무슨 대면인가. 이건 그냥 2:2 태그매치다. 상대방의 주장을 듣고 나의 주장을 바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앉아있으니 토론도 아니다. 제3자 효과를 노린다기엔 관중 대다수가 4개월째 일본 불매운동 중이다. 그러니 이 2:2 구성이 결정된 순간, 해당 방송분량은 그저 우리편이 상대편을 제껴야 하는 프로레슬링이 돼버린 것이다. 프로레슬링은 그 우여곡절의 드라마가 어찌됐든 간에 결국에는 이겨야 될 놈이 링 위에 남고 상대방이 넉아웃 돼야 끝난다. 저 레슬러는 왜 저런 기술을 쓰는 건지 이해해보자며 분석하는 관중이 어딨나. 일본의 극우 언론인에게 마이크가 갔을 때 대중이 원하는 건 (이게 바람직한지 여부를 떠나) 한국언론인이 ‘따끔한’ 비판을 날리는, 예컨대 이런 방식의 인터뷰라는 것이다.


물론 KBS가 독립투사 스탠스로 일본 극우파를 조지는 인터뷰를 방송하는 것도 적절해보이지는 않는다. 그럼 일본에 실제로 존재하는 여론은 어떻게 우리가 대면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식이 가능하다. 예컨대, 나는 일본의 여론 지형과 아베의 언론 정책에 대한 정보의 70% 정도는 팟캐스트 그알싫에서 들었다.



일본에 사는 공부노동자가 출연해 문재인 정부 출범 전후로 일본 언론들이 어떤 방식으로 문재인 정부를 공격해왔는지 쭉쭉쭉 정리를 해주었다. 그 사람에게 한국 팟캐스트 출연은 부업이다. 주업으로 이런 일 하라고 돈 받는 사람들이 바로 KBS에도 있는 일본 특파원들이다.


그러니 KBS가 한국의 시청자들에게 일본 내의 문제적인 여론을 '대면기회를 주는 가장 좋은 방식은 KBS 특파원의 자문을 받아 일본 내의 언론보도 자료를 모으고, 일본 시민들 인터뷰도 따고, 일본의 보수/진보 언론 차이점도 짚어보고, 왜 보수언론들이 그렇게 득세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찾아보고, 결국 한일대화가 왜 어려운지까지 쭉쭉쭉 논리와 내러티브를 섞어 구성하는 것이다. 10대 이후 대부분을 아베 정권만 경험한 일본 청년의 시점을 따라간다든가, 90년대까지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남아있던 일본 내의 진보적인 목소리가 담긴 풋티지를 뒤져본다든가 뭐 아무튼 이런저런 구성을 동원하면 입체적으로, 충분히 재밌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걸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는 KBS 스페셜이라는 게 있었다. 지금은 폐지됐지만.


다시 시사직격으로 돌아와서, 스튜디오에 앉아있는 한겨레-조선-산케이-아사히 언론인들이 점잖은(?) 사람들이고 나름 필드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들이라고 해도 이 구성이 대중에게 소비되는 방식은 과거 종편의 아무말 시사토크쇼와 다르지 않다.  시대의 시사 콘텐츠 소비문화 고려했다면 2:2 태그매치는 나쁜 선택이다.


결국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지 깊이 고민한 게 아니라 그럴싸한 그림(한국과 일본의 진보/보수 언론인들의 한일관계 썰풀기) 만들기에 치중해서 이 사단이 났다고 본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직접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고, 재판으로 얽힌 한일관계에 있어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인 임재성 변호사는 졸지에 악플러들에 의해 친일파가 돼버렸다.


이럴 거면 추적60분이나 KBS 스페셜은 뭐하러 폐지했냐는 소리도 나온다. 나 역시 시사직격의 아이템 선정에서 드러나는 ‘좋은 의도’를 응원하는 것과 별개로 공영방송에서 탐사보도와 다큐멘터리를 폐지하고 스튜디오 토크로 이어가는 시사 구성물을 만든 결정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요컨대, 문제는 문재인 씨도 아니고 일본 극우언론의 주장이 방송에 실린 게 아니다.


문제는 언론사로서 KBS가 어떤 메시지를
어떤 형식으로 담아낼 것인지에 대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저널리즘 토크쇼J를 둘러싼 논란 아닌 논란(?)도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여전히 KBS가 한국 사회에, 한국의 언론지형에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는 부디 논란보다는, 믿고 볼 수 있는 방송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시사직격 같은 스튜디오 토크쇼도 충분히 잘 다룰 수 있는 이슈들이 많다.


그건 그렇고 양승동 사장님, 추적 60분이나 KBS 스페셜 좀 부활시켜 주시면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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