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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Jan 25. 2020

스타워즈9, 문제의 그 장면들

'라.오.스'를 봤더니 '로그 원'이 보고 싶어지네


(아래의 글도, 링크한 방송도 스타워즈 시리즈 전체에 대한 스포일러 투성이!!)


친구의 초대를 받아 팟캐스트 녹음이라는 걸 처음으로 해봤다. 주제가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 대한 리뷰였는데 이런 걸 해본 적이 없다보니 횡설수설하고 왔다. 완전히 주관적인, 내 마음속 스타워즈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니 다른 팬들과는 생각이 많이 다를 수도 있겠다.


- 팟캐스트 링크

- 유튜브 링크


아래는 실제 방송에서 던져진 질문에 맞춰서 내가 준비했던 원고를 재배열하고 조금 다듬은 것. 레이와 벤 사이의 연결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분들이 많이 해주셔서 길게 하지 않았는데, 방송을 다시 들어보니 그게 프리퀄과 클래식과는 다른 방식의 서사를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다는 이야기를 안했다. 둘 사이에 성적인 긴장감이 흐르는 이유도 타이밍을 놓쳤네 ㅠㅠ 준비해간 얘기 중에 안한 건 꽤 있지만 (그리고 준비를 전혀 안한 얘기도 많이 했지만) 이 두 가지는 좀 아쉽다.




1. 레이와 벤의 키스신은 왜 필요했나?


스타워즈 시리즈는 일단 재밌는 이야기다. 클래식 트릴로지(456)는 서부극 문법을 우주에 이식해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를 개척했고, 프리퀄 트릴로지(123)는 은하계의 공화정 시스템이 어떻게 무너지고 제국이 되어가는지에 대한 정치드라마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의 외피를 걷어내고 주요 인물들이 겪는 내면에 집중하면 결국 스타워즈 시리즈의 주제는 선과 악 사이의 갈등이다.


프리퀄과 클래식을 관통하는 중심인물은 다스 베이더/아나킨 스카이워커다. 그의 입장에서 클래식 트릴로지는 어떻게 악(제국/시스)에서 선으로 넘어가는지를, 프리퀄 트릴로지는 선(공화국/제다이)에서 악으로 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아들아, 요새 명절에 왜 안오는 거니


시퀄 트릴로지를 이 관점에서 보면 레이와 벤이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다. 문제는 아나킨이라는 인물은 혼자 프리퀄 3편에 걸쳐 선에서 악으로, 클래식 3편에 걸쳐 악에서 선으로 넘어온 것에 비해, 시퀄에서는 레이와 벤 두 사람이 3편에 걸쳐서 오락가락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과 악 사이의 갈등이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이긴 했지만 아나킨의 고민은 참 ‘인간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아나킨을 추동한다. 그 사랑의 대상은 엄마(슈리)와 연인(파드메)이고 나중엔 파드메와의 사랑이 남긴 자식들(루크, 레아)이다. 프리퀄에서 아나킨의 내면은 엄마와 연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지배한다. 이 공포를 감지한 요다는 아나킨에게 공포는 분노를, 분노는 증오를, 증오는 고통을 낳는다고 경고한다. 프리퀄의 아나킨은 정확히 이 스텝을 밟아나가며 결국 고통받는 악의 집행자, 다스 베이더가 된다. 배우의 발연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나킨이라는 캐릭터가 살아 숨쉴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서사의 개연성이다.


클래식을 돌아보자. 클래식의 시점은 선의 집행자들인 루크와 레아, 그리고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지만 결국 선한 인물인) 한 솔로를 따라간다. 이들은 이미 악의 집행자가 된 다스 베이더에게 선으로 돌아오길 손짓한다. 다스 베이더가 <제다이의 귀환>에서 그 손을 다시 잡는 이유는 루크와 레아가 파드메와의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철학적인 고민이 담긴 것은 아니지만 다스 베이더라는 인물의 선택에는 일관성이 있고, 인간성도 묻어난다.


죽어서도 제다이 아카데미 기수 따질 기세


9편의 키스신을 얘기하는데 왜 뜬금없이 123456을 훑었느냐, 하면 이 장면이 바로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들에게 시퀄이 선사한 결말이기 때문이다. 시퀄은 레이와 벤을 쌍두마차로 내세웠고 이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이유로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한다. 하지만 이들에겐 아나킨 만큼 긴 서사가 주어질 시간이 없고 또 새로운 시대에 맞게 이야기의 변주가 필요하다. 그래서 만들어진 장치가 바로 레이와 벤이 포스에 의해 연결된다는 설정이다. 이 설정에 의해 레이와 벤은 혼자서도 갈등하는 와중에 상대방과 연결될 때마다 서로를 빛으로, 어둠으로 유혹한다.


시퀄이 진행되며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선에 성적인 긴장감이 겹쳐지는 이유는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와 내면의 밑바닥을 알고 있는 동시에 서로를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스트 제다이>에서는 이 과정이 상당히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는 두 사람이 연결되는 장면들이 내면묘사보다는 서사의 전개에 활용된다. 그래서 레이와 벤 사이에 어떤 감정이 쌓여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다. 쌍제이는 (내 입장에선 쓸데없이 길었던) 데스스타에서의 칼싸움과 벤을 치유하는 레이를 통해 그 감정을 보여주려 한 것 같은데 그 시퀀스엔 [레이와 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벤과 레아+한] 사이의 서사와 감정선이 겹쳐있다(이쪽이 훨씬 강력하다).


엔딩씬 연습 중


결국 애매모호한 상태로 레이와 벤은 펠퍼틴을 무찌른다. 해피엔딩이지만 시퀄에서 저지른 짓들을 돌아보건대 벤은 갈 곳이 없으니 퇴장이 필요하다. 그 퇴장에 키스신이 걸맞으려면 이 시점에서 온 관객들이 두 사람이 제발 키스하기를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레이와 벤은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만 보면 물론이고, 시퀄 전체를 통틀어보더라도 그 정도 감정이 쌓여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키스를 시켜버린 건(?) 그냥 둘 사이엔 그렇고 그런 기운이 오가긴 했고 서로 생명도 한 번씩 구해줬고 뭐 그런 거지... 라며 뭉개는 느낌이랄까.


결국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 이라는 테마에 레이와 벤이라는 두 인물을 던져놓고 서로 연결시킨 뒤 유혹하게 만드는 설정 자체는 (지지하진 않더라도) 이해가 되지만 그걸 뒷받침하는 감정의 개연성이 부족했던 것 아닐까. 레이야 살아남았고 앞으로 또 다른 스타워즈 시리즈가 나온다면 후사가 펼쳐질 수 있으니 제쳐두더라도, 벤의 경우엔 아담 드라이버라는 명배우가 너무 낭비된 느낌이 들어 아쉽다. 김혜리 기자가 ‘필름클럽’에서 캐리 피셔의 사망이 서사의 완성도에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는데 벤의 캐릭터가 납작해진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벤과 레이에게 각각 좀 더 입체적인 서사가 부여됐다면 굳이 둘이 키스하고 끝나는 결말로 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거 때려 부수면 니콜한테 혼나겠지....? (feat.결혼이야기)




2. 왜 레이는 마지막에 스스로를 스카이워커라고 칭했나


스타워즈 시리즈 중에서도 전편인 <라스트 제다이>는 호불호가 상당히 엇갈린다. 특히 7080이나 좋게 봐줘도 2000년대 초반에 살고 있는 듯 한 팬덤의 반발이 심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라스트 제다이>가 기존의 스타워즈 시리즈와는 다른 인물상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클래식과 프리퀄은 주로 선택 받은 자들, 이미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 활약하는 이야기다. 시퀄 역시 마찬가지지만 몇몇 주요 인물들의 설정은 그래도 과거보단 나아졌다.


<라스트 제다이>에서 등장한 로즈를 보자. 일단 로즈는 파일럿이 아니라 정비공이다. 또 <라스트 제다이> 오프닝 시퀀스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는 로즈의 언니, 페이는 조종사긴 했지만 스피디한 액션을 자랑하는 엑스윙이 아니라 느릿느릿하게 폭탄을 투하하는 폭격기 조종사였다. 하지만 그녀들이 보여주는 의지는 저항군이 가지고 있는 정신의 핵심이다. 주인공 레이는 어떤가. 비범한 건 사실이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였고, 척박한 행성에서 혼자 고물을 수집해서 먹고 사는 처지였다. 특히 <라스트 제다이>까지만 해도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의 자식이라는 설정도 안고 있었다.


먹고 살기 힘들다


심지어 <라스트 제다이>의 엔딩씬은 이름도 나오지 않는 한 노예 아이를 비춘다. 그 아이가 포스를 사용할 줄 안다는 점을 암시하는 장면은 더 이상 스타워즈라는 세계에는 스카이워커니 혈통이니 하는 것들이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깨어난 포스> 이후에 개봉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와도 일맥상통한다. 기존의 신화적인 영웅담에 별로 특별하지 않아도 간절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우며 그 의지를 계승하고 연대하느냐의 이야기가 끼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깨어난 포스> - <로그 원> - <라스트 제다이>까지는 스타워즈가 이제 다음 세대의,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흐름으로 가고 있었다.


피켓팅 광클 대기중


그런데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는 시작부터 구세대의 적폐라 할 수 있는 펠퍼틴이 등장하고 급기야 레이가 그 펠퍼틴의 손녀임이 밝혀진다. 순식간에 혈통 설정이 영화를 장악하고 레이가 겪는 내면의 갈등 역시 피에 뿌리박힌 악이냐, 자신의 의지에 가까운 선이냐의 구도가 잡힌다. 레이의 마지막 대사는 그래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지 하는 누가 말했는지도 알 수 없는 아포리즘과 운명보단 선택이 중요하다는 덤블도어의 가르침과 아무튼 그런 것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싶다.


사실 레이가 포스를 다루는 능력이 엄청난 것으로 보건대, 펠퍼틴의 손녀일 것이라는 가설은 스타워즈 팬덤에서 이미 나온 얘기였다. 하지만 그 배경이 굳이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다. 당장 포스의 균형을 가져다 줄 예언의 아이라는 아나킨 스카이워커 / 다스 베이더의 경우엔 출생의 비밀이 그냥 예수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나킨의 어머니인 슈리 스카이워커가 임신을 했고(마리아??) 낳았다는 것인데 슈리가 특별히 포스를 잘 다루는 사람이었던 것도 아니다.


도시락에 당근 남겨오지 말고


마찬가지로 최고의 제다이인 요다나 최고의 시스인 펠퍼틴에게 구구절절 혈통 얘기가 붙어있지도 않다(물론 설정상으론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본편 기준으로 볼 때). 결국 레이가 펠퍼틴의 손녀였다느니 마지막에 스카이워커를 택한다느니 하는 것은 모두 클래식과 프리퀄의 설정놀음을 즐기는 팬들을 위한 결론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결론이 이 시대에 적합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한줄평을 해본다면


로그원을 보십시오


그냥 내가 로그원빠여서가 아니다(물론 나는 로그원빠지만).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는.. 금수저로 회귀하는 결론이라든가, 두 주인공의 애매모호한 관계라든가, 지나친 파워인플레로 오히려 긴장감이 사라진 대단원이라든가, 클래식 시리즈의 그림자를 다루는 방식이라든가 등등을 전부 제대로 해낸 작품이 바로 <로그 원>이기 때문이다.


카메라 어디냐


앞서 말했듯, 스타워즈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인물에게 주어지는 과제는 선과 악 사이의 갈등이고, 이야기를 빚어내는 방식은 서부극과 정치드라마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나는 로맨스와 동료애 등 온갖 종류의 영화용 문법이 뒤엉켜있고, 감동을 주는 장면들은 대개 누군가의 간절한 의지에서 비롯된다. <로그 원>은 특히나 그 간절한 의지가 어떻게 계승되고 연대하는지를 잘 그려내고 있다.




그러니 넷플릭스여,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안 들여놔도 좋으니 <로그 원>은 계속 유지시켜주세요 제발... 그리고 <라스트 제다이>도 좀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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