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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Sep 13. 2020

<공부란 무엇인가> 지금, 자극이 필요한 이들에게  

김영민 교수 신작 <공부란 무엇인가>를 읽고


팟캐스트 이번주 업로드 분에는 김영민 교수의 <공부란 무엇인가>를 소개했다. 책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뤘다기보다는 책을 소재로 삼아 수다를 떨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갓 대학원에 진학했거나,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는 분이라면, 그 외에도 지적인 체험으로서의 공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모든 지혜가 그렇듯, 몸에 맞을 수도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도움이 된다는 건 분명하다. 방심하다 웃게 되는 유머코드가 곳곳에 숨겨져 있어 가독성도 좋다.




팟캐스트 녹음을 하면서 느낀 점은, 이 무용해보이지만 가치 있는 지적 체험의 경험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방송 내용 대부분은 지적 체험으로서의 공부보다는 대학 입시나 취업을 위해 유예된 시간에 붙은 이름으로서의 공부, 그리고 아카데믹한 경험은 아니지만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활동으로서의 공부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그러다보니 <공부란 무엇인가>의 핵심내용을 짚어가기 보다는 주변을 겉돌 수밖에 없었다.


그게 나빴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더 일반적인(!) 경험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고 저자도 방송 내용을 링크하며 “재밌네요”라고 코멘트를 남겼다. 다만 한국 사회 평균보다 독서량이 많은 사람들도 이 책에서 말하는 ‘공부’에 대해 길게 할 이야기가 없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 지적 체험으로서의 공부를 지탱하는 저변이 빈약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렇게 공부 자체가 희귀한 경험이며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좋은 글’ 역시 아주 희귀하다. 김영민 교수는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 “한국어로 쓰인 좋은 산문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글을 많이 쓴다고 밝혔다. 신형철 평론가는 “소설적인 문장은 ‘소설적인 문장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속에서 고뇌한 흔적을 품고 있는 문장”(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은 ‘좋은’ 산문은커녕 기본적인 글쓰기와 그 바탕이 되는 지적 활동 자체에 대한 물음과 고뇌가 희귀한 시대다. SNS 세계에 떠도는 ‘필력이 좋다’느니 ‘글빨이 죽인다’느니 하는 표현의 기저엔 DC에서 출발해 일베로 귀결된 죽창정서가 깔려있지 않나.


이런 시대에 공부의 의미를 묻는 행위는
무용한 것일까,
아니면 희귀하기에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일까.

여기서부턴 책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다. 공부에 대한 책을 읽고 나니 복잡미묘한 감정이 든다. 마치 남미 여행기 한 권을 재밌게 읽었지만 내가 당장, 아니 아마도 향후 몇 년 간 남미로 떠날 수가 없어서 괴로운 심정과 비슷하다. 오늘 나의 원래 계획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각 잡고 앉아서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서평을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무지 정신의 근육과 체력이 따라주질 않아 이렇게 SNS 기록용 글을 주절댔다.


뉴스의 기름때가 잔뜩 낀 채로 맞는 휴일은 대개 머릿속에서 디스크 정리와 조각모음을 돌리다보면 끝나버린다. 정신력의 많은 부분을 일터에서 낭비하는 노동자에게 공부를 한다거나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사치다. 근무를 하지 않는 격주 일요일 오전 시간에는 글을 써야지, 라고 정해뒀지만 이 시간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학원에 다닐 때의 고민도 비슷했다. 논문을 읽고 페이퍼를 쓰고 내 연구를 진행하는 시간은 즐거웠지만, 생계 때문에 해야 되는 각종 알바로 보내는 시간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스트레스가 너무나 괴로웠다.


100% 만족도 불만족도 아닌 애매한 감정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나는 왜 공부하는가’라는 주제의 글을 쓸 기회가 있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이 문장이 눈에 밟힌다.


세상에는 로또에 당첨된다면
공부를 할 것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에게 필요한 건 시간(=돈)일지도 모르겠다.


로또를 꼬박꼬박 사지도 않고 있지만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공부한다는 게 꼭 대학원에 가겠단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로또에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충분히 투덜댄 것 같으니 남은 것은 계획이다. 이제 정말 공부 계획을 짜야할 시간이 왔다. 번아웃 코앞에서 좀비처럼 하루하루를 밀어내고 있는 나에게 자, 지금의 조건 안에서 뭐라도 공부를 해보자, 좋은 글을 써보자,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다니.


어쩌면 <공부란 무엇인가>는 읽기에 따라선 치명적인 각성제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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