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 리뷰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8월 중순, 직장동료 한 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검사를 받기로 한 뒤에 오만 걱정이 덮쳐왔다. 지난 2주간 나의 동선은 어땠는지, 혹시나 내가 방역수칙을 어긴 적은 없는지, 의도치 않게 슈퍼전파자가 되는 건 아닌지, 감염되면 엄청나게 아플 수도 있다는데 어떻게 견딜지 등등.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뉴스 속에서 내 눈 앞으로 다가온 날이었다.
이튿날 두려움에 두근대는 마음을 붙잡고 선별진료소로 검사를 받으러 갔다. 거기서 감염병 최전선의 의료노동자들을 봤다. 마스크도 제대로 끼지 않고 “내가 집회 있던 날 광화문을 지나갔다. 집회에 간 건 아니지만 검사를 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을 말리느라 쩔쩔 매고 있었다. 검사대상자가 보건소 직원에게 침을 뱉었다거나, 선별진료소에서 일하다 확진 판정을 받은 의료노동자가 있다는 등의 기사가 떠올랐다. 내가 이틀 사이 가졌던 두려움이 누군가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를 여는 작품 <최후의 라이오니>는 이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나’는 우주의 쓰레기를 수거하고 다니는 로몬 종족의 일원이다. 별다른 두려움이 없는 동족들과 달리 유난히 소심한 ‘나’에게 우주 한켠의 무너져가는 거주구를 탐사하라는 미션이 주어진다. 왠지 모를 사명감에 이끌려 도착한 미션 지역에서 나는 기계들에게 둘러싸여 붙잡히고 만다. 그 기계들의 우두머리인 ‘셀’은 나를 라이오니라는 인물로 착각하고, 내가 자신들을 이 무너져가는 거주구에서 탈출시킬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영문을 모른 채 감금된 나는 다른 기계들과 소통하며 이 거주구와 기계들의 비밀을 알아간다. 이곳은 과거 생체공학의 발달 덕분에 불멸의 삶을 살았던 종족이 살았던, 하지만 원인 모를 감염병이 발생해 다시금 죽음이라는 현상을 마주한 불멸인들이 그동안 함께 문명을 지탱해왔던 기계를 모두 버려두고 떠난 폐허였다. 라이오니는 죽음 앞에서 불멸인들이 느낀 두려움 덕분에 살아난 인물이다. 아무리 기계라고 해도 어느 정도 의식을 가진 존재들을 그냥 두고 떠날 수 없었던 라이오니는 기계들의 우두머리인 셀에게 약속한다. 반드시 너희들을 구할 방법을 찾아서 돌아오겠노라고.
기억의 전송, 클론 기술, 의식을 가진 기계, 우주를 떠도는 고물수거상 등등 김초엽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SF적 상상력을 동원해 감염병 시대의 두려움과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자신이 라이오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계가 알게 되면 죽임을 당하고 말거라는 주인공 ‘나’의 두려움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진실을 고백하는 용기로 나아가는지, 기계라는 존재가 스스로 망가져가는 가운데서도 전력을 다해 멸망해가는 거주구를 지탱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 작품이 그려내는 캐릭터들의 마음을 읽다보면 저 먼 우주 한켠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절망 가운데서도 제 자리를 지키는 용감한 사람들”(작가 노트)의 모습이 떠오른다.
초유의 팬데믹 시대를 견딜 수 있는 힘도 어쩌면 꼭 필요한 만큼의 두려움, 그리고 그 두려움으로부터 한 발 나아가 나의 책임을 다하는, 제 자리를 지키는 용감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최후의 라이오니> 외에도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에는 감염병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절망 속에 피어나는 희망, 이어져 있고 싶다는 갈구, 있는 힘껏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 애틋한 사랑과 연대의 가치까지.. 여섯 명의 개성 있는 작가가 그려낸 여섯 개의 세계는 SF적 상상력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 시대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