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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Jan 26. 2023

한나 렌,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단편집의 마지막 작품까지 읽고난 뒤, 정세랑 작가가 한나 렌 작가를 '천재'라고 상찬한 이유를 납득했다. 멀티버스, 인공지능, 생체개조, 시간의 상대성 등등 익숙한 SF적 설정에 우정과 사랑, 성장을 끼얹는 방식은 익숙하지만 한나 렌은 한발씩 더 나아간다. 초콜릿을 입에 넣고, 쓴맛 뒤의 단맛에 익숙한 만족감을 느낄 때쯤, 여기서 끝난 줄 알았지? 탁 치고 올라오는 새로운 맛의 묘미.


특히 단편치곤 꽤 길지만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는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는 설정부터 여러 번 등장하는 전환점, 그리고 결말까지 여러 번 감탄하며 읽었다.


한 신칸센 열차에 발생한 '저속화 현상', 기차 안의 1초는 기차 밖에서는 300일이다. 그래서 이 열차가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는 것은 2700년 후다. 탑승객들은 살아있지만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가. 마침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던 학생들의 사연은 세월호 기억교실을 연상시키고, 그때부터 독자의 마음은, 그리고 동급생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떠나지 못한 두 사람의 주인공은 이 저속화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해결해야만 한다는 의지로 책장을 달려간다.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오래 남길 생각 없이 발표된 시대에 최대순간풍속을 내기 위해 쓴 이야기'라고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과 세월호의 기억이 각인된 독자들에게, 아마도 '타다이마'였을 마지막 문장은 따뜻하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봄바람이 될 것이다.



조금 찾아보니 한나 렌은 어렸을 때부터 SF에 빠져 살았던 SF 덕후였다. 덕후가 세상을 구원한다더니 과연, SF 키드가 탁월한 SF작가가 되어 어마무시한 걸 써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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