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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Jul 26. 2017

4차 산업혁명과 대학 #1

사회수요 맞춤형 교육이라는 판타지


2017년 7월 21일. <오늘의 교육> 39호.


글 순서

1. 사회수요맞춤형 교육이라는 판타지

2. 신기루 속에서 헤매는 대학

3. 대학의 무능


며칠 전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썼다. 요즘 블라인드 채용이 화제지만 내가 지원한 회사는 공공기관이 아니었다. 덕분에 6,000자 분량의 자기소개서(지원동기, 경험, 입사 후 하고 싶은 일 등) 뿐만 아니라 증명사진도 업로드하고, 다녔던 학교의 이름과 학과, 성적까지 모두 제출해야 했다. 학과명에 적힌 ‘교육학과/사회교육과(복수전공)’이라는 글자가 “너는 왜 교육계에 종사하지 않고 엄한 회사에 지원하니?”라고 물어오는 것 같았다. 교·사대를 졸업하고 교사가 아닌 직업을 찾으려는 이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면접관들은 교원 임용고사 경쟁률은 물론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기로 한 교·사대 졸업생들의 고민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전공-일자리 미스매치의 현실


그나마 대학 전공과 일자리가 직접적 연관성을 갖고 있는 교·사대 졸업생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2016년 발간된 <대졸 청년의 전공일치 취업 실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계열과 의약계열 졸업생들은 전공일치 취업이 87~90% 정도로 나타났다. 반면에 인문계열은 전문대 47.2%, 4년제 62.2%로 꼴찌를 기록했다. 다른 계열들의 전공일치 취업은 65~75% 사이의 분포를 보인다. 평균적으로 25~35% 정도의 사회초년생들은 소위 ‘전공-일자리 미스매치’ 상황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계열별 전공일치 취업현황(2016년 조사)


이 통계를 보고 나는 전공일치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한국의 표준직업분류체계를 전공별로 구분해 놓기라도 한 줄 알았다. 그런데 보고서를 뒤져서 찾아낸 설문 문항은 별로 체계적이지 않았다.


“현재 일자리에서 하고 계시는 일의 내용이 자신의 전공과 어느 정도 맞는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보통’, ‘잘 맞음’, ‘매우 잘 맞음’으로 응답한 경우 전공일치 취업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전공불일치 취업으로 간주하였음.


이렇게 허술한 방식으로 조사된 설문결과를 토대로 보고서 작성자는 결론에서 자못 심각하게 ‘위기’를 운운한다.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대학교육이 낭비”되고 있기 때문에, “사회수요에 맞춘 대학정원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수요 맞춤형 교육이라는 판타지


사회수요 맞춤형 교육은 박근혜 정부 교육부에서 일관되게 밀어붙인 대학구조개혁의 핵심기조 중 하나였다. 다만 대중적으로 그 내용이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는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 대학 사업(Program for Industrial needs-Matched Education), 즉 프라임(PRIME) 사업이었다. 프라임 사업은 신기술이나 융합 학문 중심으로 학과를 개편한 대학들을 선정해 2016년부터 3년간 총 6,000억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인구절벽시대를 맞아 교육부의 재정지원에 목이 마른 대학들은 사업 참여대학으로 선정되기 위해 학내의 갈등을 억지로 봉합하며 학과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출처: 이데일리


프라임 사업에 대한 비판은 다양하다. 당장 ‘프라임 사업’으로 뉴스 검색을 해보면 너무 짧은 기간 동안 큰 규모의 구조조정 계획을 요구한다는 점을 비롯해 허술한 사업 추진 방식, 대학과 기업의 관계, 사업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는 목소리를 상당수 찾아낼 수 있다. 하나하나 중요한 쟁점이지만 먼저 ‘실효성’에 초점을 맞춰보자. 사회수요 맞춤형 교육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많은 대학에서 프라임 사업 같은 재정지원 사업을 신청할 때는 물론, 일상적으로 중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할 때도 ‘사회 수요에 맞는 인재 양성’을 학사구조 개편의 방향으로 잡는다. 사회수요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요를 파악해야 한다. 문제는 그 수요를 파악하는 방식이 별로 과학적이지 않다는데 있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론을 적용해 산업구조의 변동과 일자리의 수요를 산출한다 해도 그 예측이 맞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일반론 수준의 문제제기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대학을 비롯해 자체 씽크 탱크가 없는 기관들은 사회 변화를 예측하는 보고서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다. 그래서 이런 기관들은 한국고용정보원의 ‘중장기 인력수급전망’ 보고서에 의존한다. 인력수급전망 보고서는 작성시점을 기준으로 과거 5년의 자료와 미래 10년의 전망을 담아 작성된다. 예컨대, 2015년 기준 보고서는 2010년과 2015년의 인력수급현황(실제 조사자료)과 2020년, 2025년의 인력수급전망(예측치)을 제시한다. 대학은 이 보고서에서 제시한 통계자료를 근거삼아 ‘사회수요 맞춤형’으로 학사구조를 바꾸겠다는 계획을 수립한다. 쉽게 말해 인력수요가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학과는 없애고, 인력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학과를 신설하는 것이다.


<중장기인력수급전망 2015~2025> 취업자 수 전망


중장기 인력수급전망 보고서의 가장 최신 버전은 2016년 말에 발표된 <중장기 인력수급전망 2015~2025>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 얼마나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 기준년도가 같은 <중장기 인력수급전망 2010~2020>과 내용을 비교해보았다. 비교의 초점은 2010년에 전망한 2015년의 수치가 얼마나 정확하게 실현됐는지, 그리고 2010년과 2015년에 전망한 2020년 수치는 비슷한 방향을 그리고 있는지 여부였다. (고용정보원은 2014년부터 대학 전공별 인력수급전망 보고서도 내고 있지만 중장기적 예측의 정확성을 비교할 수 없어 업종별 인력수급전망 보고서를 활용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2010년 보고서에서 향후 인력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 제조업, 숙박 및 음식점업의 종사자 수는 2015년 실제 조사 자료에서 오히려 늘어났다. 도·소매업과 교육서비스업의 경우 두 보고서에서 2015년은 비슷한 방향을 보이지만 2020년의 전망이 달라진다. 업종 수는 적어도 이 4개 업종의 종사자 수는 약 1,220만 명으로 조사대상 노동자(약 2,500만 명)의 절반에 가깝다. 전망의 방향은 맞지만 증감율 등 구체적인 수치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업종도 상당수 있다.

중장기인력수급전망 보고서의 예측오류 (단위: 천 명)


대학구조조정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2014년에서 2016년까지 주로 활용된 <중장기 인력수급전망 2013~2023> 보고서를 2008년 보고서와 비교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전망의 방향이 틀린 업종 수는 7개로, 해당 업종의 종사자 수는 50% 이상으로 늘어난다.


2008년 인력수급전망 보고서와 2013년 보고서에서 전망이 달라진 업종들


당장 5년 뒤에 노동자들의 50%가 종사할 업종의 인력수급전망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보고서 작성능력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미래를 전망하는 일은 어렵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예측은 참고사항이 될 수 있을지언정 정확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미심쩍은 보고서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널을 뛰는 ‘신산업 육성정책’에 따라 대학에서 운영하는 학과의 존폐가 결정되고 있다.


출처: 네이트판


굳이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까지 뒤져보지 않아도 미래에 대한 예측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배재대학교는 2011년에 2005년 신설한 칠예과와 2008년 신설한 아펜젤러국제학부를 폐지했다. 아펜젤러국제학부의 경우 졸업생이 나오기도 전에 신생학부를 폐지한 꼴이다. 애초에 급변하는 사회에 맞추어 대학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이지도 않다. 휴학과 복학을 고려할 때 4년제 대학은 최소 4년에서 6년, 전문대는 2년에서 4년의 교육기간이 필요한데 그 사이에 사회가 얼마나 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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