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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Mar 25. 2018

언시생 작문 #13

제시어: 문자메시지

실제 있었던 일을 거의 그대로 옮긴 작문.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감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제시어: 문자메시지


스크린 캡쳐를 마치자 총 8장의 사진이 나왔다. 이제 한 장씩 번호를 붙이고 그림판으로 설명을 붙일 차례다. 1) 보내고 싶은 사진 터치, 2) ː 터치, 3) 공유하기 터치, 4) 문자메시지 터치, 5) 받는 사람 검색, 6) 문자 내용 쓰기, 7) 내용과 사진 확인, 8) 보내기 터치. 각 캡쳐사진마다 터치해야 할 부분을 빨간색 네모박스로 처리했다. 이런 식으로 아예 어플리케이션마다 사용자 매뉴얼을 만들어도 되겠다 싶었다. 이제 출력해서 부모님께 드릴 일만 남았다.


“아 왜 이걸 못해” 동생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 게 시작이었다. 거실로 나와 보니 소파에 동생과 어머니가 나란히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거 누르고, 응 그 다음에 이거” 동생의 리드를 따라 고개를 끄덕이던 어머니는 혼자 해보라는 동생의 말에 금세 “에이 못하겄어”하시면서 TV를 켰다. 동생은 부모님께 문자메시지로 사진 보내는 법을 가르쳐드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범대 나온 아들이 가르쳐드리겠다며 동생을 밀쳐냈다. 직접 화면을 터치하시도록 유도하면서 가르쳐드리니 곧잘 따라하시다가 설명 없이 혼자 해보십사 하면 헷갈려하셨다. 동생은 “벌써 다섯 번째야”라며 깐족댔다.


나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부모님은 얼리어답터였다. 전화선 모뎀으로 하이텔 하던 시절부터 인터넷을 활용했고, 20년 전 돈으로 200만원도 넘었던 486 컴퓨터도 집에 들여놓았다. 10년쯤 전에는 주식거래용으로 나온 PDA를 사용하시기도 했다. 그런 분들이기에 스마트폰에 적응하시는 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부모님은 스마트폰에 관해서는 거의 문맹 수준이었다. 메신저 앱에는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500개 넘게 쌓여있었고, 광고성 어플리케이션도 잔뜩 설치돼있었다. 항상 똑부러지게 살아오신 부모님이 스마트폰 앞에서 쩔쩔 매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딸, 까마귀 이야기 기억나?” 묵묵히 스마트폰 액정만 쳐다보고 있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동생은 고개를 저었다. “어렸을 때 오빠랑 너랑 데리고 우리 가족이 다 산에 갔어. 너는 혼자 걷다가 아빠가 업어주다가 할 때였는데, 가보니까 엄청 큰 까마귀가 울고 있는 거야. 까마귀를 보더니 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게 뭐야? 물어봐. 아빠가 까마귀야, 라고 대답했지. 그러고 돌멩이도 물어보고 나무도 물어보고 하다가 또 까마귀를 가리키면서 저게 뭐야? 라고 물어봐. 그럼 아빠는 또 까마귀야, 라고 대답해.” 동생은 “에이~ 무슨 말인지 알았어” 하면서 아버지 팔짱을 끼고 앉았다. 깐족거릴 때는 언제고 참 넉살도 좋았다.


프린터가 윙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잉크젯 프린터의 소음을 들으니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에게 프린터 잉크 교체하는 법을 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나는 카트리지 다루는 게 서툴렀다. 아마 까마귀를 처음 본 동생처럼 아버지에게 몇 번이고 똑같은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지금 부모님 곁에는 그렇게 편하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쓸쓸해졌다. 매뉴얼이 완성되면 실습도 시켜드릴 겸, 어렸을 적 내 모습을 모아둔 앨범을 사진으로 찍어서 문자 메시지로 보내달라고 말씀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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