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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Apr 24. 2018

우리 이니가 달라졌어요

부서진 마음의 정치

작성일: 2018년 3월 18일


며칠 전, 파커 파머가 문재인 대통령이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었다는 사실을 접하고 쓴 포스팅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훈훈한 기운이 퍼졌다. 이 사진이 세월호 천막에서 단식하는 현장에서 찍혔다는 걸 생각하면 문재인 대통령, 당시로 치면 문재인 의원이 책에 담긴 '부서진 마음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고통의 현장 한복판에서 고민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사진이 viral로 퍼지고 있는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내놓은 결정은 며칠 전, 전직 대통령이 서초동 검찰 포토라인 앞에 서서 내뱉었던 워딩 그대로 "참담한 심정"을 불러일으킨다. 한국 정부는 지난 주 금요일, 낙태죄 폐지와 성소수자 인권 보장,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사형제 폐지와 대체복무제 도입 등의 유엔 권고를 '불수용'하기로 했다



파커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일부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개인적·정치적 삶에서 우리가 끌어안아야 하는 모든 긴장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도전적인 것은 “비극적 간극”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견디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 간극의 한쪽에는 세상의 어려운 현실이 있다. 우리의 영혼을 부수고 희망을 무너뜨리는 현실 말이다. 그 간극의 다른 한쪽에는 실제로 이 세계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루어지는 삶 말이다. 우리는 전쟁에 빠져 있는 세상을 보지만 평화의 순간을 알고 있다. 인종적·종교적인 대립을 보지만 연합의 순간을 알고 있다. 불공정한 결핍으로 인한 고통을 보지만, 풍요가 생성되는 물질적·영적인 나눔의 순간을 봐왔다. 이런 종류의 가능성은 부질없는 꿈이나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의 삶에서 목격해온 대안적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극적 간극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 비극적인 이유는 그 간극이 단지 비통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비극적’이라는 말의 고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그 간극은 인간 조건의 영원하고 벗어날 수 없는 특징이다. 여기는 인류의 역사라고 불리는 장소로서, 우리가 희망을 갖고 견디며 행동해야 하는 곳이다. 우리와 우리의 후손도 그 간극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 파커 파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298p


적어도 문재인 정부는 세상의 어려운 현실에 침잠하기 보다는 가능성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고, 그러한 정치적 움직임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로부터 탄생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정부 출범 1년을 앞둔 지금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성소수자 인권을, 총을 들지 않겠다는 양심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다. 대체 비통함의 정치학, 즉 부서진 마음과 민주주의에 대한 이 정부의 철학은 무엇인가?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그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아래 기사 같은 사건이 계속 벌어진다. 



읽을수록 마음이 아프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찬반에 부치는 폭력적인 문화가 가해자는 당당하게, 피해자는 위축되게 만든다. 야당 의원 시절, 세월호 천막에서 부서진 마음에 대한 책을 읽던 대통령은 소수자들의 인권문제를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래서야 대선 당시 그의 지지자들이 외치던 "나중"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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