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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Apr 24. 2018

한 장의 페미니즘을 기억하며

작성일: 2018년 3월 26일 + 2016년 7월 26일.



2018년 3월 26일 저녁, 트위터가 뒤집어졌다.  한 게임회사에서 직원이 한국여성민우회 SNS 계정을 팔로했다는 이유로 사상검증을 진행하고 해당 직원의 실명과 함께 그 내용을 회사 홈페이지에 공지사항으로 올렸다. 이 회사 대표가 민우회를 규정하는 언어는 반사회단체였다.(나중에 사과했음) 아직도 '메갈 사냥'에 여념이 없는 한심한 (에휴)들을 고객님으로 떠받들고 있는 모양새다.



얼마 전엔 한 아이돌 그룹 멤버가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댓글 테러를 당했고(이 책은 대통령도 읽었음, 그리고 대통령도 트위터에서 민우회를 팔로한다), 그 전에는 girls can do anything 이라는 문구를 SNS에 노출한 또 다른 아이돌 그룹 멤버가 죄인 취급을 받았다.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 2016년 7월에는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가 화제(?)였다. 이 당연한 문구가 박힌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한 성우가 게임회사와 계약을 해지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티셔츠는 블루일베 페이스북의 김치녀 페이지와 메갈리아 페이지에 대한 이중잣대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할 자금을 모으고자 만들어졌다. 위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텀블벅 모금 문구가 "한 장의 페미니즘"이었다. 후원할 때만 해도 티셔츠 문구가 너무 당연해서 큰 의미가 없어보였는데 언제나 그렇듯 줄쓰큰의 한심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당시 메갈리아는  중세시대 마녀와 비슷한 취급을 받았(지금이라고 다른가 싶다만).


그리고 넥슨의 문제는 성우와의 계약해지만이 아니었다. 티셔츠 사건이 발생하기 조금 전에 넥슨은 <서든어택2>를 출시한다. 이 게임은 정식 출시도 되기 전부터, 정확히는 티저영상이 공개되자마자 여성의 신체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비판을 받는다. 초창기 넥슨은 이러한 비판을 거의 쌩까다시피 했다. 그런데 왕자 필요 없다는 티셔츠에 대한 비판은 바로 고객의 소리라며 반영했다. 여기서 서로 상충하는 '고객의 소리'를 반영하는 기준이 결국 <서든어택2> 따위 게임을 만드는 감수성이었음이 드러난다.



점점 일이 커지면서 웹툰작가 등 문화예술계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넥슨 계약해지 성우에 대한 지지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에 비례해 백래시 세게 날아들었다. 소비자 운동을 운운하며 창작은 권력이 아니라느니,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느니 하는 소리들이 나왔다. 웹툰산업회장인가 하는 사람은 공개적으로 웹툰작가들의 '사상'을 문제삼았고, 원내 유일의 진보정당이라는 정의당에서는 '당내 분란'을 이유로 자신들이 냈던 논평을 철회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메갈리아가 전투적이어서 이렇게 거친 전선들이 생겨나는 걸까? 이 모든 난리의 시작이 '페이스북의 이중잣대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 만든 한 장의 티셔츠였다. 주절주절 길게 늘어놨지만, 결국 이 한 장의 티셔츠를 그 순간 페미니즘 운동의 상징으로 만든 건 후질대로 후진 한국사회였다는 뜻이다.


다시 2018년으로 돌아와, 우연찮게도 민우회를 반사회단체로 규정한 게임 개발사의 퍼블리셔는 역시나, 넥슨이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남성들도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지게 되었다고 증언한다. 그런데도 넥슨은 지난 2년여 간 학습한 게 없다시피 하다.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한사코 외면하고, 나아가 백래시에 열중하기까지 하는 이 한심함은 어떻게 고칠 수 있나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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