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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원망하지 말고 내 대(代)에서 잘 하자.

부모 원망하지 말고 내 대(代)에서 잘 하자.


생산수단은 어떻게 세습이 되었나?

생산수단은 무엇인가?

산업혁명 이전은 토지이고 산업혁명 이후는 토지와 주식이다.

생산수단은 불멸하며 썩지 않는다.

그래서 생산수단은 영원하다.

현재도 이 두 가지만이 생산수단이다.

생산수단을 지배하는자 영원히 주인이 되고 생산수단을 지배하지 못하는 자 영원히 노예가 된다.

그런데 그 생산수단의 가치를 모르고 생산수단을 팔려고 한다면 주인이기를 포기하고 노예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을 누가 몰랐을까?

내 부모가 몰랐다면 나는 노예의 삶을 사는 것이고 내가 몰랐다면 나는 내 자식에게 노예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생산수단이 정확히 무슨의미인지 모른채 이것을 단순히 투기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사고 팔아 돈을 버는 행위만을 했을 때 그도 노예가 된다.

생산수단은 모으는 것이지 파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지배했어도 상속세 때문에 부의 대물림이 힘들다.


그렇다면 산업혁명 이전의 토지는 어떻게 세습이 되었고 신분사회가 유지가 되었는가?

봉건사회는 부의 대물림이 되는 신분사회다.

그러나 신분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것은 봉토다.

봉토(토지)만이 신분을 유지하는 수단인 것이다.

몰락한 양반은 왜 몰락한 양반인가?

토지가 없기 때문 아닌가?

그런 양반은 오히려 평민보다 못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토지가 없어 나를 먹여 살려줄 땅이 없으며 일을 해야 하는데 양반은 일을 하면 안 된다.

그러니 청백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신분사회는 어떻게 유지 되었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돈이 대규모로 유통된 것은 언제의 일인가?

아마도 근대에 와서일 것이다.

근대는 중상주의 시절의 프랑스 정도가 될 것이다.

그 때 부르주아들이 상업으로 돈을 벌어 귀족은 아니지만 평민중에서도 부자가 나오던 시절이다.

그렇다면 그 전은 어땠었나?

봉건사회에서는 돈을 더럽게 여겼다.

기독교 윤리에서 보면 돈은 더러운 것이고 그중에서도 고리대금업은 더 천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일반인이 될 수 없고 유대인이나 가능했다.

그렇다면 왜 돈을 더럽게 여겼을까?

돈의 많은 유통이 신분질서를 붕괴하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이전의 생산수단인 토지는 돈으로 거래가 되었을까?

아니다.

토지를 얻는 방법은 두 가지다.

빼앗거나 상속 받거나 이다.

왜냐하면 토지는 왕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귀족이나 양반은 왕의 소유인 토지를 잠시 맡아두고 있었다.

그래서 만약 역적으로 몰려 죽으면 왕은 자신의 토지를 거두어 갔고 공신에게 다시 나누어 줬다.

그러니 토지는 소유권의 대상이 아니며 관리의 대상인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토지를 사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토지를 관리할 권리 또한 귀족으로 양반으로 태어나지 않는 한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니 생산수단은 상류층이 아니면 관리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중상주의 이후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부르조아 계급이 생기고 나서 이러한 생산수단의 균열이 생긴다.

성이나 토지를 돈을 주고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존 로크가 노동에 의한 소유권 획득이라는 개념을 정립하면서 소유권은 개인의 권리가 된다.

 단순히 얘기하자면 자연상태는 신이 주신 공유물인데 그 공유물을 개인의 노동으로 바꾸어 놓으면 소유권이 생긴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생산수단인 토지를 개인이 소유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토지를 소유하게 되면 신분의 질서가 깨진다.

왜냐하면 멍청한 귀족의 자식은 돈과 토지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이전까지는 생산수단은 빼앗거나 세습으로 상속되는 것이지 돈과 바꾸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지는 산업사회로 오면서 급속히 생산수단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왜냐하면 토지는 생산성 향상이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토지에서 나오는 생산물의 양은 해마다 일정한데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는 무한카피로 전세계인에게 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토지보다는 기업을 가지는 것이 훨씬 더 가치있는 생산수단이 되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생산수단인 주식은 어떤 존재인가?

예전의 귀족의 토지처럼 다루면 된다.

즉 귀족의 토지는 팔 수 없었다.

팔면 귀족의 지위를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팔지 않고 모으는 것이다.

현대에서도 토지는 어느정도 생산수단으로서의 가치는 있으나 우리나라는 생산물이 나오는 농지는 농자유전의 원칙으로 농민에게만 소유권이 있다.

물론 편법적인 방법이 있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

농지는 예전처럼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우리가 개발도상국이면 공장을 짓고 신도시를 지어서 토지 수용이 되어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더 싼 인건비와 더 좋은 기업환경을 원해 해외로 나가는 기업 때문에 더 이상 공장이 지어지지 않고 그로 인해 공장에서 일할 사람들이 거주할 신도시 또한 지어질 이유가 없어져 택지개발촉진법 마저 없어졌다.

그로 인해 토지는 오로지 쌀을 생산하여 돈을 버는 소작농에 의한 지대정도만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이익이 되었다.

그러니 토지를 가지고 부자가 될 수도 없을 뿐더러 농민이 아니라면 굳이 토지를 보유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현재 생산수단인 주식이 유일한 생산수단이 된 것이다.


주식은 그래서 봉건시대의 귀족, 조선시대의 양반처럼 그냥 모으는 것이다.

내 대(代)에 모으며 자식이 귀족이 되고 아버지 대에 모으면 내가 귀족이 된다.

그러니 주식은 모으는 것이다.

주식을 사고 팔고 반복 하는 사람은 크게 모을 수 없으며 모을 수 없으니 물려줄 수도 없다.

그러니 내가 왜 가난한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부모가 나에게 생산수단을 물려주지 못해서이다.


상속세가 걸림돌이 되지만 상속세는 조만간 미국이 상속세를 없애면 전 세계가 없애는 쪽으로 급격히 흘러갈 것 같다.

마치 미국이 이자율을 올리면 미국으로 급격히 돈이 빨려 들어갈까봐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리를 너도 나도 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부모 원망하지 말고 내 대(代)에서 잘 하자.

JD 부자연구소
소장 조던
http://cafe.daum.net/jordan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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