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납북자 여섯 가족도 `눈물의 재회`

국군포로·납북자 여섯 가족도 `눈물의 재회`


◆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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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서 20일 시작된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1차 행사에서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가족도 북녘의 식구들을 만나 애끓는 혈육의 정을 나눴다. 이들은 분단과 전쟁의 모진 역사가 끊어놓은 70년 세월 때문에 이미 세상을 뜬 부모와 형제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북측에 살고 있는 이복(異腹)동생, 조카들과 눈물로 첫인사를 나눴다. 이번 상봉에는 국군포로 1가족과 전시 납북자 5가족이 참여했다.



생때같은 가족이 전쟁통에 남쪽까지 내려온 인민군에 끌려갔지만 `자진 입북 아니냐`는 오해를 살까 가슴 졸이며 말로는 다 못할 고통을 안고 살았던 이들은 처음 만나는 북측 혈육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쓰다듬으며 아버지·형님의 모습을 찾으려 애썼다. 또 조카들이 금강산에 챙겨온 사진을 놓고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70년 넘게 궁금했던 안부를 물었다. 이영부 씨(76)는 조카 병삼 씨(70)와 함께 북측 조카들인 리영식(53), 정란(57), 병일(75·5촌조카) 씨를 만나 서로 부둥켜안으며 오열했다. 평안북도 용천군이 고향인 이씨는 6·25전쟁이 터지자 아버지와 함께 서울로 내려왔지만 아버지는 그해 9월 납북됐다. 이씨 나이가 열 살 때 일이었다. 자식들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셨던 어머니는 마흔도 채 되지 않았던 1962년 돌아가셨다. 북측은 `아버지가 자진 월북했다`고 주장했다.



최기호 씨(83)도 의용군으로 끌려간 세 살 위 큰형 영호 씨(2002년 별세)의 아들인 조카들과 만나 얼싸안았다. 최씨의 동생 양길 씨(78)도 형님과 손을 맞잡고 금강산에서 조카들과 만났다. 최씨는 북측 조카인 선옥 씨(56)가 가져온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며 손수건을 눈물이 흐르는 눈에 대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조카가 가져온 가족사진 속 인물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물었다. 선옥 씨도 "제가 부모 형제 생각이 많이 나서 내내 울었습네다"고 말하며 눈물을 멈출 줄 몰랐다. 최씨는 어머님께서 형을 특히 그리워하셨다면서 "끼니마다 꼭 형이 먹을 밥을 떠서 상에 올리고 `밥공기에 물이 맺히면 네 형은 살아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회상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홍정순 씨(95)는 오빠의 딸인 선희 씨(74)와 동생의 아들인 림종선 씨(57)를 만나 울고 웃었다. 홍씨는 칠순이 넘은 북측 조카인 선희 씨가 "○○가 아이가 하나 있었던 것 기억하세요? 그 아이가 (1·4)후퇴 때 폐렴으로 죽었어요, 그리고 혼자 살았수다, 남편도 죽었어요"라고 말하자 "그 남 서방?"이라고 되물으며 희미해져가는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금강산 = 공동취재단 / 서울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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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522381 

한국은 그런것 보면 참 외교를 못한다.


지금이야 북한에 돈 주는 것이 유엔제재 위반이라 안 되겠지만 돈을 줄 수 있을 때 돈 주고 사오자.




예전에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어져 있을 때 돈이 모자르는 쪽은 항상 동독이었다.


그래서 동독이 서독에게 손을 벌리면 항상 서독에서는 하는 말이 있다.


정치범. 서독포로, 이산 가족을 교환하는 조건이었다.




이런 쇼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하에서 북송된 사람들을 돈이라도 주고서라도 데려와야 되는 것 아닌가?


이제 조금 있으면 만나지도 못할 사람들인데 말이다.




한심하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수준이 말이다.




JD 부자연구소
소장 조던
http://cafe.daum.net/jordan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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