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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에서의 신인류

4차 산업혁명에서의 신인류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

이것은 산업혁명이후 꾸준히 논란이 되어 왔던 것이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자동화 되는 것 자체가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대처를 할지가 나오지 일자리가 없어질지 아닐지 가지고 싸우고 그것을 저지하는 것은 시간낭비, 정력낭비다.

그렇게 일자리 지키려고 해도 대세를 거스르면 농업국가로 가고 폐쇄경제로 가자는 말 밖에 안 된다.

한국은 폐쇄경제로 가면 북한처럼 망한다.

그래서 조선 처럼이 아니고 로마처럼 살아야 한다.


조선은 산지가 많다.

산지가 많으니 길을 내지 않았다.

그래서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가 고문을 당한 것이다.

너무 정확한 지도를 만들어 오랑캐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이 맞다.

왜냐하면 한국은 산지가 많아서 산성이 있다.

그래서 외적이 쳐들어오면 산성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길을 커다랗게 내지 않아 좁은 산길이 이어진다.

그러면 대규모 군사가 일렬로 이어지게 되고 산에 매복해 있던 병사가 화살과 돌 등을 좁은 산길로 가는 외적을 기습하면 승리를 하는 전략이었다.

그것이 한국이 살아남은 전쟁의 역사다.

그런데 김정호가 그렇게 정확하게 지도를 만드니 전쟁의 방식을 아는 사람은 이러한 것이 큰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은 길을 넓히지 않았나?

외적의 침략을 소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만약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로마처럼 했을 것이다.

로마는 어떻게 했는가?

외적이 쳐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 신속히 이동하여 쳐 부수는 것으로 전략을 삼는다.

그리고 길을 넓힌다.

그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로마가 발달했다는 말도 되지만 로마에서 신속하게 어떤 식민지라도 갈 수 있게 길을 닦아 놓았다는 말과도 같다.


그렇다면 로마처럼 전략을 세웠다면 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기계보다 더 똑똑해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스미스는 분업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핀공장 얘기를 한다.


하나의 예시를 들어서 핀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고 치자. 

이곳에서 일하는 A는 하루에 핀 20개를 만들 수 있다. 

A랑 똑같은 수준의 공돌이가 10명이 있다고 하면 이 핀 공장은 하루에 200개 이상의 핀은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이 핀 공장이 공정을 18개로 나누어 10명에게 작업을 시켰더니 하루에 약 48,000개를 생산할 수 있었다. 

분업 하나만으로 생산성이 무려 240배로 뛰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산업혁명은 분업의 혁명이 되었다.

분업으로 혁명적인 생산성 발전이 있었으나 아담 스미스는 마르크스 이전에 인간의 소외 얘기를 먼저 했다.

즉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는 단순한 공정을 평생 반복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이러한 인간은 반드시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바보를 탈출할 수 있는 도구는 무엇인가?

그것은 교육이다.

교육을 통해 직업에서 배울 수 없는 근대적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1, 2, 3차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인간의 일자리는 점점 단순한 일자리가 없어졌다는 것이 흐름이다.

1차 산업혁명으로 육체적 노동이 완전히 없어졌다.

현재 있는 일자리를 육체노동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육체노동으로 일을 하는 사람은 삽으로 땅을 파는 사람, 지게로 나무를 옮기는 사람 등이다.

그러나 이것은 굴삭기와 자동차, 기차 등이 생기면서 이러한 육체노동은 없어진 것이고 육체노동을 대신하는 정신노동자들이 생겼다.

굴삭기를 운전하는 굴삭기 기사, 자동차를 운전하는 택시운전 기사, 비행기를 조종하는 기장과 같은 정신노동자들이다.

이것이 AI가 생기면서 다시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요소는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교육이 점점 길어지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옛날 방적이, 방직기가 있던 시절은 아동노동이 심하게 있었다.

왜냐하면 하는 일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기계를 조작하지만 단순해서 하루면 금방 배우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들고 돈을 많이 받는 성인이 아니라 나이적고 돈을 적게 받는 10대 노동이 심했다.

그것은 찰스 디킨스가 쓴 올리버 트위스트에 잘 나와 있다.

아동노동은 흔했다.

그런데 그러한 아동노동이 점점 성인 노동으로 옮겨 간다.

왜냐하면 단순한 기계는 점점 복잡해져 갔고 아동은 이러한 기계를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행기 기장은 영어는 기본적으로 해야 했고 복잡한 기계장치를 다뤄야 했으며 항로를 살피고 위험에 적절히 대처해야 했기 때문에 아동이 이러한 일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러니 점점 교육이 길어지는 식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면서 여성의 지위가 올라간다.

왜냐하면 예전에 농업과 산업혁명 초기 시절에는 초등학교 졸업시키면 바로 일을 시킬 수 있었는데 비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교육을 받아야 직업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선진국이 될수록 대학교 교육은 기본이 되었고 무지막지한 교육비를 부모가 감당해야 했다.

그러니 그러한 교육비를 감당하려면 소수의 아이들만 키워야 했으며 아이를 소수 키우니 10명씩 낳던 주부들은 육아의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그로인해 여성의 사회참여가 일상이 되었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더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식으로 간다면 인간은 대학원 그리고 박사과정은 기본으로 갈 것이며 2명이 아니라 1명을 낳는 것이 대세가 될 것이다 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은 일만하는 당나귀에서 그리스, 로마시대의 시민이 된다.

산업혁명 시대의 인간은 노예나 다름 없는 삶을 사는데 그리스, 로마시대의 노예는 이미 기계가 인간의 노예노동을 대신하고 자유로운 시민만이 살아 남는다.

그 자유로운 시민은 기계가 이뤄놓은 풍요를 여가생활을 즐기며 목적없이 산다.


이러한 목적없이 사는 삶은 그리스, 로마시대때처럼 철학, 문학, 역사 등을 논의하며 아담스미스가 꿈꾸던 배움으로 지성과 교양이 넘치는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다만 유토피아적인 이상향일때 말이다.


디스토피아적으로 간다면 아니겠지만 말이다.

유토피아적이라는 얘기는 누군가 기계노동으로 인한 잉여를 골고루 분배해 준다는 가정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안 해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해 달라고 떼를 쓸 것인가?

누구에게?

나라에?

거지처럼?


나의 미래는 내가 판단하고 실행할 때 결정되는 것이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말이다.


결론이다.

사람들은 더 많이 배워야 한다.

인공지능을 이기려면 말이다.

그러나 알파고도 이세돌이 못 이기는데 일반인이 앞으로 더 진화된 인공지능을 과연 교육만으로 인간이 이기는 것이 가능할까?

그럴리가 없다.

결국 인간은 AI를 소유하는 식이 정답이 아닐까 한다.

AI를 소유하는 것은 AI를 만드는 최고의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이다.

그 기업의 주식 소유는 AI가 인간의 직업을 없애면서 더 많은 배당과 주가상승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JD 부자연구소
소장 조던
http://cafe.daum.net/jordan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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