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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by 김민규

차에 부딪혀 턱뼈가 부러진 고라니 한 마리가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실려 온다. 간단한 주사액으로 모든 짐을 내려놓는다. 어려운 수술이 아닐 것 같은데, 오는 족족 다 살리기엔 의술의 한계보단 운영비의 한계가 있겠다. 내가 키우던 강아지가 교통사고 났을 땐, 100만 원을 지불해 살렸다. 식은 고라니의 목숨과 살린 애완견의 목숨의 무게는 같은 저울에 달리지 않았다. 저 안락사 약물의 가격은 얼마일까. 수의사의 움직임은 간결하고 정돈되었다. 눈빛에서 드러내지 말아야 할 막막함이 새어 나온다.


보호소에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인 너구리가 있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부비는 행동이 이 친구가 강아지인지 너구리인지 신라면인지 헷갈린다. 이 친구는 야생성을 잃어버려 돌아갈 수 없다. 길들여진 동물은 보호소에 영원히 갇힌다. 보호소의 구조대원과 수의사들은 동물을 사랑해선 안 된다. 쓸데없는 눈길과 손길이 금지되어있다. 사랑은 야생동물에게 독이다. 사랑을 얻으면 자유를 잃는다. 이곳에서 사랑은 자유의 반대말이다.

돌고래의 매끈한 몸의 형태와 몸짓에는, 물과 하나가 되기 위한 진화의 흔적이 파도친다. 이들은 북극해에서 일본 앞바다까지 이동을 하며 서식한다. 좁아터진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들은 자해를 하며 대가리를 터트린다. 자신들이 갇혀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유해환경을 피해 안락한 환경에서 먹이와 영양제를 풍부히 제공한다는 점에서 좋은 게 아니냐는 개소리를 개가 아닌 인간들이 한다. 수문이 열리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위험한 자유로 튀어나갈 것에 내 왼 손목과 오피스텔 3채를 건다.


젖소는 1년에 약 5000kg의 우유를 생산한다. 임신을 하고 새끼를 낳은 직후부터 우유를 낼 수 있다. 우유가 끊기면 다시 임신을 반복한다. 임신을 시킬 때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가장 간편하고 흔한 방법은 쇠막대를 성기에 찔러 정액을 쑤셔 넣는 것이다. 이 막대기를 업계에서 강간 막대라고 부른다. 평생 강간을 당할 운명을 타고 난 젖소는, 자신의 몸집만 한 곳에 갇혀 우유를 생산한다. 나는 그 강간의 결과물을 평생 마시며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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