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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비로소 잠시 멈춰서 삶을 돌아본다.

돌아본 내 삶은 쓰레기장이구나.

by 김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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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범주에 교묘하게 걸친 사람들에게 인간의 언어와 인간의 도덕과 정치, 화합, 관계, 신용, 의리, 명예에 호소를 시도하다가 실어증에 걸렸다. 실어증 싫어싫어. 말을 잃고 분노 조절 장애가 도졌다.


버튼이 눌리는 표현이 461301개 있다. 정상인인척 연기하며 겨우 살아 내다가 과거의 한 순간으로 돌아가서 면상을 후려갈기고 싶은 사람이 51203명 떠 오른다. 내 귀에 갈기든, 타인에게 갈기는 말을 듣든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 놈들이 배설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내 자식 같아서 그래. 친동생 같아서 그래. 내 딸 같아서 그래.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지금은 내가 싫어도 나중에 나한테 많이 고마울걸? 분명히?"


이 자들은 집에서 아들과 동생을 수탈하고 딸을 성추행 하는가. 그들이 이끄는 가족 같은 회사에서 퇴근하면 회사 같은 가족들에게 가서 징징거리는 소리와 돈 좀 달라는 몰염치를 듣고 배달음식 먹은 흔적을 본다. 나는 배달 어플을 설치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일하는 기계다.


어르신들은 돈이 어디서 솟아나는 줄 아는 건지 전두엽이 박살 나서 미래 계획 능력이 없는 건지 처먹고 처먹다 체해서 소화제를 먹고 다이어트 약을 먹고 돈 들여 운동을 하고 없는 살림에 미용 시술을 받고 돈 줄이 끊기면 자살하겠다고 협박을 한다.


내게 맡겨 둔 손자라도 있는 건지 "그래도 아이를 한 둘을 낳으라"는데 기가 막히다. 생식욕구를 단절하고 돈을 악착 같이 모으는 이유 중 하나가 당신들이 죽어갈 때 매달 들어갈 병원비와 요양원 비라는 생각을 못하고 모은 돈 없어 펑펑 써재낀다. 그리고는 명예가 중요해서 친척과 친구와 의리를 다진다. 속물들끼리 모여서 옷을 자랑하고 교양을 자랑하고 자식을 자랑하고 사위를 자랑하고 자랑을 잘 참음을 자랑하고 자랑을 자랑 같이 않게 은근히 중불로 지긋이 해날 수 있음을 자랑하며 브런치를 기품 있게 처먹는다.


나는 친구를 모조리 버렸다. 나눌 말도 없고 공유할 감정도 없다. 형편 좋은 애새끼들이 징징 거리는 소리를 이십 년 참고 들었으니 그만 됐다.


나의 욕구와 필요의 수준이라는 것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나는 하루 한 끼로 연명하며 엽록소 달린 식물처럼 나무처럼 최소한의 소비와 폭력을 일으키며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복합적이고 기름진 문화의 레이어가 필요 없고 맛을 본 적이 없어서 뭐가 있는지도 모른다. 20년을 주 7일로 일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어도 괜찮을 만큼 인생과 사회와 미래에 기대하는 내용 역시나 빈약하다. 다만 가능한 덜 아프게 짧은 순간에 죽는다면 좋겠다.


나의 자산 소득은 나의 생활 규모를 덮는다. 나는 모든 갈등을 멈추고 법정처럼 사제처럼 침잠하고 싶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언제 자살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커리어와 노후대비가 허술하다. 그리고는 나보다 몇 배의 소비를 해내며 나의 진지함과 공허함 허무함 기대 없는 노동에 가면을 뚫고 나오는 옅은 조소를 흘린다. 인생 전반의 대비를 하지 않다가, 어는 날 갑자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무시하던 재난이 다가오자 살려달라고 난동을 피운다.


몸살에 걸린 채로 삼 일간 연강을 하고 나니, 집에서 등따시게 쉬는 가족들 생각이 나서 좆같다.


나는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교회와 성당과 절 밖의 삶의 현장 속에 승려인데, 상대의 탐욕과 무지 무례함을 이해와 사랑으로 감싸려는 수도자인데, 수도자는 개뿔 아픈데 일하니까 그냥 좆같다.


늘 새해 다짐은 반 문화주의자 반 도덕주의자 반골 기질을 조금씩 줄이고 인류가 투쟁으로 쌓아온 성숙한 전통과 문화의 형식을 존중하기 위해 천박한 언어생활을 교정하는 것이다. 정갈한 언어생활과 정제된 행동으로 만물과 인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오해 없이 전달하고자 함인데 욕을 안 하고 살려니 개 씨발 좆같은 것이다.


갈 길이 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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