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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rdan 조르단 Nov 30. 2022

[SMILE]#11. 5도2촌의 삶,수풀사이로 김미리님

언젠가는 시골집에서 살아볼 거야, 에서 ‘언젠가’를 빼버리기로 했다.

나에게 수많은 가르침과 이해를 주는 공간에서 이틀을 만끽한다. 아침에는 산책을 하며 나를 에워싼 광경들을 아로새기고, 천천히, 느슨하게 나를 위한 식사를 준비한다. 계절을 안다는 것은 나에게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거둔 것을 나누고 있다는 것은 내 곁에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삶이 어떻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고개를 들면 자개처럼 빛나는 햇살과 희미한 산무리에 축축이 젖은 새벽 정경, 빼꼼 머리를 내민 싹과 어제보다 부쩍 아름이 튼실해진 배추, 담장을 건너온 정겨운 반찬거리와 늘어지게 잠을 자는 동네 고양이들이 있다. 이런 광경이 어떻게 질릴 수 있을까! 미리의 편안하고 즐거운 목소리가 괜히 혼잣말을 부른다. “참 보기 좋았어.”






열한 번째 미소,

5도 2촌의 삶, <수풀사이로> 김미리 님 :)


반갑습니다! 우선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면서 시작해보죠.

안녕하세요. 이커머스 MD이자 자연생활자, 그리고 작가인 김미리라고 합니다. 저는 평일에는 서울에서 이커머스 MD로 일하며 직장인으로 살고 있고, 주말에는 시골 마을에서 작은 집과 텃밭을 돌보며 자연생활자로 지내고 있어요. 


와, 신기해요. 자연생활자라니 멋진걸요. 이런 라이프스타일은 들어본 적만 있지, 직접 본 것도 처음이에요.

그런가요? 이렇게 일주일 중 5일은 도시에서, 2일은 시골에서 생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5도2촌이라고 불러요. 그리고 5도2촌이라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배우고 느낀 점을 기록하여, 여러 매체를 통해 기록하고 나누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사랑스러운 턱시도 고양이 소망이와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어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미리 님께서 출간하신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를 읽어봤어요. “언젠가는 시골집에서 살아볼 거야, 에서 ‘언젠가’를 빼버리기로 했다.” 이 문장만 봐도 당시엔 엄청 과감한 도전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 솔직히 말하자면 과감한 도전이라기보다는 도피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3년 전, 직장생활 10년 차가 되었을 때 지독한 번아웃을 겪었거든요. 당시에는 복잡한 도시, 치열한 회사생활, 힘겨운 관계에서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어요. 매일 같이 ‘퇴사’, ‘휴직’, ‘한 달 살기’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곤 했죠. 그러다 우연히 ‘시골살이’라는 키워드에 이르게 된 거예요.


건물, 사물, 인물……. 온갖 실재가 가득하던 곳을 잠시 떠나 주위를 돌아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시골에 정착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과정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인터넷으로 이 집 저 집 검색하다가, 나중에는 여러 지역에 직접 집을 보러 가기도 했죠. 그리고 어느 날, 연고도 없는 충남 금산에 폐가를 덜컥 계약하게 되었고요. 그때부터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집을 고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집을 고치고 돌보며 시작한 시골살이가 지금은 제 삶의 한 부분이 된 거죠.


아까 일주일에 5일은 도시, 2일은 시골에서 보내는 걸 ‘5도 2촌’이라고 하셨잖아요. 주변에선 뭐라고 했어요? 부러워하는 분들도 있었을 것 같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걱정과 응원의 마음을 동시에 받았죠. 시골집을 샀다고 하니 다들 부러워하다가 폐가 상태인 집 사진을 보고는 걱정하더라고요. 이건 귀신의 집 아니냐면서요. 

이게 그때 사진이에요? 정말 아무것도 없었네요.

그렇죠? 걱정 말라며 큰소리치기는 했지만, 저도 속으로는 ‘이 폐가가 정말 사람 사는 곳이 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의심하고 걱정했죠. 다행히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시고 응원도 해주셔서 공사도 잘 마무리되었고, 지금은 보시다시피 이렇게 잘 지내고 있어요. 주변 분들 덕분이죠!


처음 이렇게 허허롭던 집을 샀을 때부터 공사가 시작되고, 마무리가 될 때까지 쭉 지켜보신 거잖아요. 번아웃을 피해 서울에서 훌쩍 왔던 시골에서 완성된 수풀집을 봤을 때 정말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아요. 

우선 집이 만들어지기까지 별다른 사고가 없어서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폐가 상태였던 천장도 있고, 사방에 벽도 있고, 따뜻하고, 물도 콸콸 나오는 집이 되었다는 것에 감격했고요.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맞이하는 첫날밤 감상은 어땠어요?

금세 곯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수풀집에서 잠을 자던 첫날밤에도 집이 완성된 상태는 아니었어요. 그날도 하루 종일 집구석구석 마감 작업을 하느라 무척 피곤했거든요. 아마 ‘내일은 어디를 더 손봐야겠다.’ 하면서 잠들었을 거예요.

그렇게 완성된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이자 특별한 여행지, 수풀집


수풀집 생활을 하며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나요? 혼자 시골집에서 사는 거니까 야밤에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지기도 할 것 같아요.

시골살이를 시작한 첫 해 여름에 오래된 돌담이 무너졌어요. 그리고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서 마을 하천이 범람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모두 고지대로 대피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때 저희 집 주방 일부도 침수되었고요. 당시에는 아찔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며 말할 수도 있게 되었네요.



돌담이 무너지거나, 비가 많이 내리거나 하는 건 어떻게 알고 피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잖아요. 상상만 했을 땐 다들 그림처럼 잔잔하게 사는 것 같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게 시골의 삶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어때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나요?

너무 많죠. 사실 그건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 때문에 혹은 돈 때문에 속을 끓이기도 하고, 수풀집 마당을 오가던 사랑스러운 마당 냥이의 죽음을 맞닥뜨리기도 하고요.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라서 어쩔 수 없는 걸까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요?

아무래도 그런 일들을 겪을 때는 엄청난 무력감에 휩싸이게 돼요. 그리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북돋워요. 세상에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이렇게 많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더욱 마음을 쓰며 묵묵히 살자고요.


이 집은 수풀이 무성한 풍경이 마음에 들어서 ‘수풀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면서요. 도시의 집에 이름을 붙인다면 어떤 이름이 어울릴 것 같아요?

음, 다락집? 다락집이라고 해야겠어요. 복층에 넓은 다락이 있는 집이거든요.


그러고 보면 각자 사는 곳에 대한 동경이 있잖아요. 장소와 시간에 대한 동경이든, 장소와 행동에 대한 동경이든 말이에요. 예를 들면 테라스가 있는 집에서, 밤에는 별을 보며 맥주를 마시고 싶다든가 하는. 미리 님은 어떤 걸 동경했어요? 

제가 동경하던 건 두 가지였어요. 바람 좋은 날 대청마루에 앉아 막걸리 마시기. 직접 키운 배추와 무로 김장하기.


왠지 저라도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을 것들이에요. 상상만 해도 좋아요. 어때요, 그 소망은 이루셨나요?

감사하게도 둘 다 이루었습니다. (웃음)


그렇다면 ‘앞으로’ 수풀집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을까요?

앞으로의 소망이라면, 수풀집 뒷마당에 작은 온실을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중부지방에서는 노지 월동이 안 되는 꽃과 나무를 좀 더 키워보고 싶고요. 앞마당에는 소박한 들꽃 화단도 만들고 싶어요. 계절에 맞는 들꽃이 피어나는 작은 화단을 만들어서 마음껏 누리고 싶어요.


그땐 부디 초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져요. 전 바쁘게 지내다 보면 주말에도 완전히 쉬지 못한다는 느낌이 좀 들더라고요. 몸은 분명히 쉬고 있는데 마음은 어쩐지 불편한 거예요. 시골에서 살면 그런 일이 없어질까요?

글쎄요. 몸은 쉬고 있는데 마음이 불편할 때는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그 이유를 스스로 알고 있을 때도 있고, 잘 모를 때도 있잖아요. 저는 그럴 때는 노트를 펼쳐 놓고 직접 기록을 해요. 객관적인 나의 상황, 주관적인 나의 마음, 제 나름의 해결책을 쭉 적어요.


미리 님은 왜 마음이 불편했나요? 

제 경우엔 이유가 보통 세 가지더라고요. 해야 할 일을 미뤄 둔 상태. 어떤 일이나 상황으로 마음이 다친 상태. 마지막으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저 너머의 일. 해야 할 일을 미뤄둬서 마음이 불편한 경우는 그 일을 일단 빨리 해내려고 하고요. 마음이 힘든 경우라면 맛있는 걸 먹고, 푹 쉬어요. 수풀집 주변을 여유롭게 산책하기도 하고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은 더 걱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신경 쓰지 말아야 하는데, 더 걱정하지 말아야 되는데.’ 마음은 그렇게 먹는데 사실 잘 안 되잖아요. 

맞아요, 그게 쉽지 않죠. 엄청 어려워요. 그래서 그럴 땐 텃밭으로 나가 밭일을 해요. 잡초를 뽑고, 가지치기를 하고, 작물에 지지대를 세워 주기도 하고요. 그렇게 풀 냄새, 흙냄새를 맡으며 몸을 바삐 움직이면 오히려 마음이 쉬어지더라고요.


오롯이 나를 위해 흙을 고르고, 심고, 길러낸 것들. 감사와 기쁨은 이렇게 거두어진다.


차라리 그 고민들이랑 먼 일을 하면서 마음의 시선을 돌리는 거군요. 밭일을 하신다니까 문득 궁금해지는데, 보통은 시골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놀 게 없다.’ 거나, ‘며칠 지내면 지루할 것 같다.’ 거나 많이들 이야기하는 부분들이요.

놀랍게도 지루했던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시골 일상이 잔잔하기만 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집 안팎을 돌보면서 도시에서는 해보지 않은 일들을 하다 보면 매번 새롭게 우당탕거리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어요.



어떤 일들이 미리 님을 그렇게 분주하게 만드는 걸까요. (웃음)

마당에 수도꼭지를 고친다거나 지붕 처마에 자리를 튼 벌집을 치운다거나. 또 때맞춰 돌봐야 하는 텃밭 작물과 마당의 초목들도 많고요. 게다가 매주 계절이 미묘하게 바뀌어서, 마당에 앉아 저 멀리 숲의 빛깔만 바라보고 있어도 시간이 훌쩍 가요. 답을 하고 보니 제가 일상의 공백을 지루함이 아니라 평온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집‘안’ 일만이 아니라 집‘밖’ 일도 있네요. 그럼 바쁠 수밖에 없겠어요. 계절이 바뀌어간다는 게 어떤 건지는 알듯 말 듯 한데, 그 미묘하게 바뀌는 계절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언제예요?

제게는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모든 계절을 다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얼마 전에 출간한 책의 저자 소개에도 이런 문장을 적었어요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하는 질문에 봄에는 봄이, 여름에는 여름이 가장 좋다고 답하는 사람.” 저는 언제고 지금 통과하는 계절을 가장 좋아하게 되거든요. 



그럼 지금은 겨울이겠네요?

네. 지금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라고 답할게요. 몸과 마음을 충전할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하고, 겨울만이 주는 평온함이 있거든요. 시골의 겨울은 도시보다는 더 춥긴 하지만 특히 더 고요하고 평화롭다는 매력이 있어요.


고요 속에서 조그맣게 속삭인다. 나 역시 씩씩하게 봄을 기다릴 테니, 너도 나와 함께 흐르고, 피자고. 나도 너희의 일부라고.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장면들을 떠올려보면 시골에선 옆집이랑 음식도 나누어 먹고, 이사 오면 떡 돌리며 인사도 하고, 이웃집 젓가락이 몇 세트인지까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잖아요. 요즘도 그런가요? 

그럼요! 시골에 살다 보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질 때가 있어요. 밥상을 앞에 두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저 집에서 이 집으로 반찬 나눔 릴레이가 끝없이 이어지는 바로 그 장면이요. 특히 수확철에는 서로의 대문을 드나드는 발걸음이 많아져요. 김장 김치부터 막 수확한 밤이나 감, 각종 제철 요리가 꽃무늬 그릇에 담겨서 저희 집 대문을 넘어와요. 그러면 저도 그릇 반납을 핑계로 수확한 고구마로 직접 만든 맛탕이나 도시에서 공수해 온 음식을 담아 다시 이웃집으로 향하고요.


오 그렇군요! 이야기만 들어도 따스해지는 기분이에요. 


각 여행지마다 우리 일상과 모습이 바뀌듯이, 서울에서의 삶과 시골에서의 삶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듯 다를 것 같아요! 시골에서 지낼 때와 서울에서 지낼 때 먹는 음식이나 듣는 음악, 보는 영화 등 취미나 일상의 여러 부분이 달라질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듣는 음악, 보는 영화, 읽는 책……. 이런 건 비슷해요. 그런데 아침 일상과 먹는 음식은 확실히 달라져요. 시골에서는 꼭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하거든요. 눈뜨면 출근하기 바쁜 평일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이잖아요. 특별한 목적지도, 정해진 시간도 없이 편안히 걸으며 딱 그때의 계절을 누려요. 비슷한 것 같아도 매주 수풀의 색과 모양, 물소리, 발에 닿는 땅의 느낌, 공기까지 모든 게 다르거든요. 



느긋한 아침 주변에 푹 빠졌다가 돌아오는군요. 음식은 직접 기른 것들로 정성껏 준비해 먹는 건가요?

맞아요. 산책에서 돌아오면 텃밭에서 수확한 제철 채소로 정성 들여 밥상을 차려 먹으려고 노력해요. 평일에는 사 먹는 밥, 배달 음식, 쫓기듯 바삐 먹는 식사로 가득하니까 수풀집에서의 시간만이라도 스스로를 잘 돌보자고 생각하면서요.



5도 2촌 생활을 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나 마음가짐의 변화가 있는지 궁금해요!

그럼요. 많은 변화와 배움이 있었어요. 자연은 매일, 아주 조금씩 바뀌더라고요. 애써 살피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이요. 그런 자연을 곁에 두고 지내다 보니 모든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관찰하는 태도가 생겼어요. 마을의 어르신들께도 많이 배워요.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삶의 태도 같은 것이요. 


아, 있죠. 어르신들 특유의 초연하면서도 느긋한 태도요. 

또 묵묵히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법, 때가 되면 순순히 물러나는 법을 스스로 아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저도 그 순리에 따라 살아가자는 다짐도 하게 됐어요. 이런 변화와 배움들이 평일의 삶에도 반영되어서 전보다 훨씬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이 되었어요.


좋아하는 것들로 꾸려진 나의 '여행지', 혹은 '보금자리'.

미리 님께서 출간하신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더라고요. 시골집으로의 귀향을 원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니즈가 그만큼 많아진 거라는 생각도 드는데, 체감이 되시나요?

네, 많이 느껴요. 주변에 5도2촌이나 귀촌을 고려하는 분들이 정말 많아졌거든요. 당장은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에 시골로 가야겠다며 준비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이런 흐름이 제 책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겠죠.


“서울에서 보내는 닷새 동안은 주말 이틀이, 시골집에서 보내는 이틀 동안은 서울에서 보내는 닷새가 여행처럼 느껴진다.”고도하셨잖아요. ‘여행처럼’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어요.

아쉬운 마음과 동시에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거죠. 수풀집으로 출발할 때는 편리한 도시의 일상이 아쉽기도 하지만, 자연이 그립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수풀집이 가까워지면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자연을 더듬어요. 닫힌 창문을 비집고 들어온 풀 내음과 흙냄새, 개구리울음소리 같은 것들이요. 서울집으로 출발할 때는 주말 시골살이의 끝이 아쉽기도 하지만, 서울집의 안락함이 그리워져요. 24시간 열려 있는 편의점도 반갑고, 서울의 야경도 아름답게 느껴지죠. 여행처럼.


시골집에 대한 애정이라든지, 이 공간, 로컬에 대한 애착과 만족감이 많이 느껴져요. 언젠가 도시와 시골을 오가지 않고 시골에 머물러 사는 것도 계획하고 있나요?

‘나중에는 시골에 가서 살 건가요?’라는 건 아주 단골 질문이에요. 지금처럼 서울과 시골을 계속 오갈지, 언젠가는 시골에 아예 자리 잡게 될지, 아니면 언젠가는 시골살이를 마치고 완전히 서울로 돌아가 살게 될지……. 글쎄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시골집을 고치면서 다시 한번 느꼈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지금은 제 삶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스메바 미야코 (住めば都)”라는 일본의 속담이 떠올라요. “태어난 곳이 고향이 아니라 정든 곳이 고향”이란 뜻이거든요. 

그래요? 저는 처음 듣는 속담이에요. 인상 깊은 말이네요.


미리 님의 두 번째 고향이 현재 수풀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에 세 번째, 네 번째 고향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떤 곳이 좋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저는 바닷가나 깊은 숲 속에 집을 짓고 거기를 정든 고향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래저래 한해 마지막 달이 왔어요. 괜히 새삼스러운 기분도 되고, 지난 일도 돌이켜보게 되는데 올해 도전했던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첫 책을 출간하고 뉴스레터 ‘수풀집편지’를 발행한 것을 꼽고 싶어요. 수풀집편지는 시골마을 이야기와 텃밭 소식, 자연과 동물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리는 시골살이 뉴스레터인데요. 지난 1월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발행해왔거든요. 수풀집의 지나간 계절을 성실하게 기록하고 구독자분들과 소통한 기억들은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아요. 



내년의 미리 님은 무엇을 하고 싶나요?

내년에는 독립출판으로 새 책을 출간하고, 책을 매개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고요. 보다 긴 호흡의 목표는, 유기동물과 길 위의 동물들을 위해 작은 손길을 보태는 활동을 시작하는 거예요. 반려묘 소망이와 함께 살면서 동물권에 관심을 갖게 되었거든요.


시골에서는 아무래도 ‘환경’이랑 바짝 곁에서 살게 되잖아요. 미리 님은 시골 생활을 하면서 변한 일상 습관이 있나요? 아니면 최근에 좀 관심이 생긴 라이프스타일도 좋고요.

‘덜 사고 덜 버리기’를 실천하고 있어요. 저는 두 집 살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물건을 2개씩 구매해요.


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주방용품도, 위생용품도 전부 두 벌씩은 필요하게 되네요.

네, 맞아요.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당연하고 환경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거예요. 또 이런 물건들을 관리하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도 많이 들고요. 그래서 꼭 필요한 것에 한하여 구매하고, 너무 많은 양을 소유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어요. 


너무 많은 양’의 기준이라는 게 참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쓰임이 비슷한 물건을 들일 때, 기존에 가지고 있던 건 나누어주거나 판매해서 제가 소유하는 물건의 총량을 지키려고 노력해요. 일단 덜 사고 덜 버리면서,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환경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미리 님의 ‘소유의 총량’에 그린클린 제품이 들어가 있다는 게 정말 기뻐요. 특히 마음에 드는 제품은 뭔지 궁금해요. 

요즘은 조르단 그린클린 체인지라는 제품을 애용하고 있어요. 저는 평소에 100% 재생 플라스틱 핸들을 사용하는 그린클린 울트라소프트를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는 친구가 칫솔 헤드만 교체해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더 줄일 수 있는 제품이라면서 추천해줬거든요. 그런데 구입해보니 환경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칫솔모도 부드럽고 디자인도 예뻐서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려고요.


왠지 친구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하겠는걸요. 저희 슬로건이 ‘Made for every smile’이거든요. 미리 님의 삶에서 미리 님에게 미소를 주는 건 어떤 거예요?

아침 이슬을 밟으며 마시는 모닝커피. 흙냄새 가득한 텃밭. 앞집 할머니의 다정한 전화. 난로가에 앉아 마시는 차가운 맥주. 땅을 박차고 나온 가을 무의 하얗고 널찍한 이마. 반려묘 소망이의 사랑스러운 뱃살. 이런 사소한 것들이 저를 미소 짓게 만들어요.

따스함과 행복이 느껴지는 그 순간들이 모여 미소가 되는 거라고,



그럼 방금 말씀하신 내용에 이어서 물어볼게요. 미리 님에게 ‘미소’란 어떤 의미인가요?

와, 지금까지 받은 질문 중에 가장 어려운 질문이에요. 미소라는 건 내 마음이 괜찮다는, 마음의 신호등 같은 게 아닐까요? 저는 마음이 힘들면 아무리 좋고 멋진 것을 보아도 미소가 지어지지는 않더라고요. 반대로 마음이 평안하면 아주 사소한 것에도 미소가 지어지고요. 아, 말을 하고 보니 일상의 순간마다 내 얼굴과 마음이 미소 짓고 있는지 살피면서 지내야겠어요. 




[Jordan Smile Talk Project]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일상의 ‘미소‘, ‘웃음’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프로젝트입니다. 작은 미소들이 모여 큰 웃음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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