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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이 Jan 25. 2021

방게 이야기

돌팍을 있는 힘껏 팍 뒤집으면, 쏜살같이 달아나는 놈들이 있다. 바로 방게들이다. 손톱만 한 방게부터 5백 원짜리 동전만 한 어른 방게까지 있다. 어떤 돌을 뒤집으면 다양한 크기의 여러 마리 방게들이 숨어 있다가 깜짝 놀라 도망간다. 어떤 돌을 뒤집으면 겨우 한두 마리가 달아난다.

돌집마다 방게는 대가족을 이루거나, 혼족, 두세 마리의 단출한 가족도 있다. 혈연 가족인지, 어쩌다 모여든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우리 삶도 대가족도 있고, 핵가족도 있듯이 방게도 그런가 보다. 가족이 여럿이면, 재미도 있지만 부대끼며 살아야 하고 일도 많아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 나 혼족이나, 가족이 한 명이나 두 명이면, 간섭이 덜하고 자유로울 수 있으나 외로움이 덤으로 올지 모른다. 물론 외로움이 덤이 아닌 사람들도 있겠다.

돌 밑에 여러 마리 모여 있는 방게들은, 왠지 재밌어 보이고 활기차서 좋아 보인다. 돌 밑에 한두 마리 방게는 이상하게 쓸쓸해 보인다. “사람인 나는 이런 감정인데, 방게 너는 어때?” 하고 묻고 싶다. 쓸쓸해 보이는 방게는, 내 생각과 정반대일 수도 있다. “자유롭고, 부딪히지 않고, 크고 넓은 집이 있어서 좋은데 왜 그래? 그건 네 생각이야.”라고 방게는 말할지 모른다. 그래, 내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나는 돌 밑에 살고 있는 방게들을 ‘단독 주택 사는 방게’라 부른다.

바다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는데 이곳에도 요놈들이 산다. 좁은 바위틈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나는 안전하다. 잡을 테면 잡아봐라.” 하는 표정이다. 대놓고 바위틈에 가까이 있는 나를 곁눈질로 쳐다보고 있다. 나는 이 커다란 바위틈에 사는 이놈들을 ‘아파트에 사는 방게’라 부른다.

갯벌이 많은 영종도. 햇살 좋은 날, 가끔씩 물 빠진 바다를 넓적한 석축에 앉아 바라본다. 갯벌 위에는 동그란 구멍이 송송 뚫려있고, 구멍 옆에는 집주인 방게들이 두발 달린 집게로 오른손 왼손 순서대로 열심히 먹이를 먹고 있다. 마치 사람들이 숟가락 젓가락 들고 밥을 먹듯이 말이다. 뻘 한가득 동그란 구멍들. 똑같은 크기의 방게들이 집게발을 움직여 연신 입으로 넣는 모습은, 마치 잘 짜인 군무를 보는 듯 황홀하면서도 우스웠다. 소년이 작은 돌멩이 하나 던지면, 깜짝 놀란 방게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집으로 사라져 뻘에는 송송 뚫린 구멍만 남는다. 뻘 구멍에 사는 이놈들을 나는 ‘원룸 또는 지하벙커에 사는 방게’라 부른다.

나는 몇 번 방게를 잡은 적이 있다. 그 빠른 방게를 어떻게 잡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첫 번째 방법. 겨울이나 이른 봄에는 방게 움직임이 둔하다. 돌을 뒤집어도 가만히 있거나 느릿느릿 기어가 잡기가 수월하다. 두 번째 방법. 적당한 크기의 줄에 생 삼겹살 한 점이나, 생 오징어 한 점을 매달아 석축 사이 바닷물이 들락날락하는 곳에, 줄에 매단 먹잇감을 놓아둔다. 2~5분 기다리면, 방게가 돌 사이에서 기어 나와 먹잇감을 집게발로 따 먹기 시작한다. 조금 더 두었다가 줄을 들어 올리는데 약은 놈은 들어 올리는 순간 먹이를 놓고 도망간다. 그런데 미련한 놈은 먹잇감에 취해 들어 올리는 중에도 계속 먹고 있다. 통속에 ‘툭’ 던져지고야 잡힌 걸 안다.

먹으면 살이 찌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먹고 있는 나를 보면서 미련한 방게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날이 좋은 날 가족과 함께 갯벌에 나가보자. 바다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방게들 모습도 관찰해보는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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