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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이 Jan 28. 2021

동네놀이

더위가 한풀 꺾인 주말, 남편과 나는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구읍배터로 차를 타고 가고 있다. 주말인데도 거리가 한산하다. 창문으로 잠자리가 날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잠자리를 보니 곧 가을이 올 것 같다. 어릴 때 보았던 새빨간 고추잠자리가 생각나고, 몸통이 가늘가늘하던 실잠자리도 생각난다. 

창문으로 아빠와 아들이 하나의 킥보드를 타고 가는 다정한 모습도 보인다. 아들과 잘 놀아주는 좋은 아빠이고 가장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구읍배터에 도착해보니, 월미도행 여객터미널 건물이 있고 바로 옆으로 직진하면, 배를 탑승할 수 있는 구읍배터가 나온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운항하는데, 매시 30분에 출항한다. 계절별로 운항시간은 변경될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팔각정이 있는 공원에 가기로 하고 산책로를 걷기 시작한다. 매미 우는 소리가 시끄럽다. 매미는 땅속에서 유충으로 7년을 살다 세상 밖으로 나온다. 마음에 드는 짝을 빨리 찾아 짝짓기를 해야 하고 종족을 번식시켜야 한다. 기한은 한 달, 한 달 밖에 살 수 없는 매미들. 짝 찾느라 목청 터지게 부르는 맴맴 소리가 이제는 슬프게 들린다. 며칠 사이에 낮에는 매미가 울고, 밤에는 귀뚜라미가 운다. 가을이 오고 있다.

남편은 그늘이 있는 긴 의자에 누워 윤민수, 장혜진의 히트곡 ‘술이 문제야’부터 여러 곡의 노래를 듣고 있다. 예전에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던 남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잔소리를 퍼붓던 내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는다. 남편 누워 있는 모습이 안쓰러운 걸 보면 이제 나도 철이 들어가는 건지…….

앞쪽에는 야외공연장이 있는데, 한 남자가 트럼펫으로 설운도의 ‘누이’를 연주하고 있다. 관중이 우리까지 네 명, 흥이 많은 여자 한 분이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크게 치고 휘파람까지 휙 휙 분다. 한 사람이 열 사람 관중처럼 호응을 하니, 더위에 지친 트럼펫 연주자도 그나마 힘이 날듯 하다.

구경을 하다가 우리는 팔각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팔각정 앞에는 바다가 보이는데, 지금은 물이 빠져 뻘밭이다. 멀리 보이는 인천대교는 해무에 가려져 윤곽만 희미하게 보인다. 지금 보는 인천대교 모습은, 다리가 여러 개 달린 거대한 지네를 보는 느낌이다.

팔각정에서 단청을 바라보던 나는, “사다리 놓고 올라가 단청 작업하려면 힘들었겠다.”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이 어이없어한다. “미리 나무에 단청을 입혀서 가져와 나무에 홈과 홈을 맞춰 끼워서 만든 팔각정이야.” 면박을 준다. 정확한 말인지는 모르겠다.

글을 읽은 지인이, “나도 사다리 놓고 올라가서 직접 그린 줄 알았어.”라고 말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어서 웃음이 난다.

팔각정에서 내려와 점심은 구읍 나루터 근처에서 먹기로 했다. 찾아간 식당은 깔끔하다. 남편은 들깨 감자옹심이를 시키고, 먹는 데 욕심이 많은 나는 메밀 물막국수와 메밀전병을 시켰다. 배가 부른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식당을 나와서 근처에 있는 바닷가 모레 사장을 걷는다. 예쁘고 특이한 돌을 주워 담는 신사가 보인다. 키가 크고 훈훈한 외모에 지성미까지 엿보이는 남자가 궁금해졌다. 나는 옥같이 초록빛이 도는 작은 돌 하나를 주워 그에게 내밀었다. 그가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 그의 옆에 있는 작은 플라스틱 통속에는 예쁜 돌과, 모래와 파도에 쓸려서 뭉툭해진 반투명 초록빛 소주병 조각들이 있다. 그걸 갖고 뭘 만들 생각이란다. 상상을 해본다. 그의 섬세한 손길에 돌과 소주병 조각들이 작품이 되어가고 있는 모습을…….

‘내가 준 돌 하나도 그에 작품에 쓰이겠구나!’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걷다가 영종 역사관으로 들어왔다. 더위도 피할 겸, 영종 역사에 대해 들을 겸. 토요일 2시와 3시에는 영종역사관 해설사로부터 해설을 들을 수 있다. 

1층 전시실은,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영종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다.

2층 전시실은,

조선 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영종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다. 남편은 사진을 찍고, 나는 들었다. 기억은 새처럼 날아갔지만.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내가 사는 동네를 여행하며 관찰하다 보면, 색다른 사람을 만나보는 재미도 있고, 보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이제는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야 한다. 저녁은 맛있는 김치찌개로 메뉴를 정하고, 생고기를 사러 마트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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