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던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밤 12시 잠자려고 누웠는데 어디선가 뚝뚝 굵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남편에게 안방 화장실 쓰고 왜 물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느냐며 핀잔을 줬다. 물이 떨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한 남편이 거실에 있는 공용화장실 문을 열었다. 화장실 천장에서 굵은 물방울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관리실에 얘기했지만 '내일 새벽에 가 보겠다'는 귀찮아하는 답변만 들었다. 나는 위층집으로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자초지종을 말하니 아주머니도 이사 온 지 며칠 안돼 몰랐다고 말한다. 공용화장실을 고치는 동안만은 욕실 물을 안 쓰기로 얘기가 마무리되었다. 화장실 천장에 물 떨어지는 뚜껑을 열어보니 고여있던 물이 후드득 쏟아지고. 나는 고치는 날까지 뚜껑을 끼우지 않기로 했다. 혹시 다시 물이 새서 고일까 무서웠고 고치고 나서 확인하기 위서 서다. 그러지 않아도 피곤한 몸이 남아있던 물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지 더 힘들었다. 이틀 뒤 몸 등 쪽에 빨갛게 수포가 생겼다. 그다음 날 보니 더 여러 곳에 무리 지어 피어 있었고 통증도 더더 심해졌다. 대상포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근처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가 상태를 보자마자 '대상포진이네요!' 5일분 약을 받아와 하루 먹었지만 좋아지기보다 등에서 배까지 빨간 띠가 더 여러 곳으로 번졌다. 거기서 모든 안 좋은 일들은 끝나야만 했다.
대상포진 걸린 지 3일째 되던 날. 아픈 몸임에도 에너지가 많은 금동이를 위해 산책을 시키고
집에 들어왔다. 산책할 때 이상한 것은 한번 토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사료를 씹지 않고 삼키는 아이라 토하는 일은 자주 있었고 토하고 나면 시원한지 금방 기분이 좋아 장난감 같고 놀기도 하고 간식도 잘 먹던 아이였다. 그래도 산책하며 토한 적은 없기에 이상하다는 생 각은 했다.
남편이 2시간 후면 퇴근하니 같이 병원 좀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힘없이 누워있다가도 조금씩 돌아다니기도 했다. 남편이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있는 도중 금동이가 거실에서 한번 토했다. 그리고 두 번째 토하려고 애쓰다 쓰러졌다. 남편과 나는 금동이를 차에 태우고 5분 거리에 있는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금동이가 갑자기 숨을 거칠게 쉬기 시작했고, 나는 금동이 등을 쓰다듬으며 '병원 다 와가니 이젠 괜찮을 거야 조금만 참자'라고 울부짖다시피 했다. 병원을 들어서자 오늘 진료가 많아서 접수를 안 받는다고 했다. 나는 울며 소리쳤다 '그래도 한 번만 봐줘요! 어떻게든 해봐요 제발.'소리쳤다.
큰 소리가 나서 그런지 의사가 나오고 금동이 상태를 살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며 청진기를 가져와 가슴에 댔다. 지금 심장은 뛰는데 쇼크가 온 것 같다며 빨리 큰 병원으로 가 보라고 주소를 주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차는 퇴근시간이라 막혔다. 애타는 마음을 어찌 다 글로 쓸까...! 품에 안긴 아이는 점점 더 거칠게 숨을 쉬었고 나는 울부짖었다. '다 와간다 조금만 견디자.'라고.' 한순간, 사지를 떨고 있던 금동이가 목을 뒤로 젖히며 '꽥'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거친 숨소리도 몸의 움직임도 없다. 심장박동하면 살아날 수도 있을 거야! 병원에서는 먼저 연락을 해 놓아서 그런지 모든 게 준비가 돼 있었다. 도착하자 심장박동이 시작되고 몇 분 후 의사가 보호자 들어오란다. 심장을 박동하면 그때만 잠깐 약하게 뛰고 꺼진다며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의사는 그 조그만 가슴을 눌러댔다. 금동이가 아파할 것 같아 '그만하셔도 된다. '라고 나는 울며 말했다. 금동이가 상자에 담겨 나왔다. 직원이 장례식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지만. 나는 금동이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아 생각 좀 해 보고 연락드리겠고 하고 병원문을 나왔다. 병원을 나오자 상자를 열고 금동이를 품에 안았다. '아이고 내 새끼 아침 점심 간식까지 맛있게 먹었던 아이가 어이없게 숨을 거두다니.'이제 7살인데. 집으로 돌아와 나는 거실에 요를 깔고 강아지와 마주 보고 누웠다. 금동이는 왼쪽눈을 뜨고 죽었다. 나는 금동이와 눈 맞춤하고 손으로는 귀와 머리와 등과 꼬리와 배 등을 쓰다듬었다.' 이 이쁜 아이를 어떻게 보내지!. ' 내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 베갯잇이 흥건히 젖었다. 딸이 소식을 듣고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금동이를 부르며 운다. 딸과 나는 거실에서 금동이를 가운데 두고 소중하고 슬픈 밤을 보냈다. 다음날 금동이 장례식장을 예약했다. 내일 아침 아홉 시. 금동이와 나에게 또 하루의 시간이 생겼다. 금동이 곁에 누워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 눈을 맞추고 또 맞추고 무한 반복을 했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눈물이 뚝뚝. 빨래를 널면서도 뚝뚝. 마르지 않던 눈물들...
아침은 밝았고 7시 30분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상자에 담긴 금동이는 딸이 고이 안고 있다. 출근시간이라 차가 많이 막혔지만 일찍 출발한 덕분에 9시 5분 다행히 도착했다. 장례절차에 따라 우리는 금동이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남편도 서울에 사는 조카도 도착했다. 금동이 가는 길이 조금은 덜 외로웠으리라 믿어본다. 금동이 염하는 모습을 봐도 괜찮다고 직원분이 얘기했다. 금동이를 깨끗하게 닦으시더니 마자막 인사를 하란다. 아이의 동그랗게 뜨고 있는 눈을 직원분이 손바닥으로 살며시 쓸어내렸다. 잠깐 감긴 듯하더니, 금동이가 눈을 번쩍 떴다. 가족을 더 보고 가고 싶은가 해서 애처롭고 슬펐다. 가족 모두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직원이 금동이에게 한지 옷을 정성껏 먼저 입힌다음
삼배옷을 한번 더 입혔다. 장시후 생화로 예쁘게 테두리를 두른 관이 왔다. 금동이를 꽃관에 뉘었다, 우리들이 금동이에게 쓴 편지와 좋아하던 간식도 관에 같이 넣어주었다. 추모실에서 금동이와 마지막 인사를 한번 더하고 화장하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차마 볼 수 없어 금동이 이름만 확인하고 나왔는데 조카와 딸은 다른 아이와 바뀔지도 모른다며 잠시 지켜보고 오겠다고 했다. 화장장에 금동이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딸이 또 서럽게 울었다. 딸과 조카가 출근 때문에 먼저 떠나고 나와 남편만 남았다. 12시에 화장이 끝날 거라고 했는데 12시 30분에 끝이 났다. 염을 정성껏 해주던 직원이 유골함을 예쁜 보자기에 싸서 갖고 나왔다.
유골함을 들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앉으면 잘 보이는 곳에 유골함과 금동이 발 사진을 두었다.
서로 자주 볼 수 있게. 금동이가 엄마 실컷 볼 수 있게. 그리고 한달후, 유튜브에서 사람유골함이든 강아지유골함이든 집안에 두는 것은 좋지 않으니 죽은 아이가 자유롭게 뛰어놀도록 수목장을 해 주던가
잘 다니던 곳에 뿌려 주는 게 좋단다. 밖을 워낙 좋아하던 녀석이라 금동이엄마와 형제들이 지금도 살고 있는 시골집에 양해를 구하고 그 집 나무 밑에 유골함을 묻어 주었다.
나도 가끔씩 금동이에게 찾아가 인사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래도 요즘은 위안을 받는다. 경치 좋고 닭 친구 고양이 친구. 금동이를 낳아준 엄마, 똑같이 생긴 깜장 푸들 형제도 둘이나 있고 이뻐하던 먼저 보호자 가족도 곁에 있어주어서다. 가끔씩 누워있다 보면 등에서 금동이의 체온이 느껴진다. 팔에서도 배에서도 금동이가 느껴진다. '이 녀석 엄마 보고 싶어서 왔구나! '하고 토닥토닥해준다. 언제든지 엄마 보고 싶으면 오렴! 나는 영원한 너의 엄마야!
'금동아 좋은 인연으로 우리 꼭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