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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403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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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바다에 누워 Jan 14. 2022

내 행복의 모양은요

편지 일기 02.


최근에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Shape of water>를 다시 보았어. 극장에서 두 번을 봤던 영화인데 디즈니 플러스 가입해 놓으니 그냥 오래도록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은 거 있지. 좋아하는 건, 오래 간직해서 문득문득 꺼내어 보는 게 내 즐거움이야.


ⓒThe Shape of Water



영화는 궁극적인 목표와 그에 대한 결론 같은 건 보여주지 않아. 그저, 제목에 충실할 뿐이야. 그래서 그들이 하고 있는 사랑의 모양은 이렇고, 너희들이 하고 있는 사랑의 모양은 어때?라는. 그와 반대로 일라이자와 그 남자가 하고 있는 사랑의 모양에는 형태가 없음을 알려주기도 해.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곰곰하게 생각을 해보았어. 각자의 사랑에는 모양이 있을 수 있는데, 그렇다면 행복에도 모양 같은 게 있을까 하고.



씻으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나는 이럴 때 행복했던 것 같아.


  

     주말 아침, 옷도 양말도 모두 단단히 챙겨 입고 집 안 창문을 모두 활짝 열고 청소를 시작해. 겨울 찬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올 때, 그리고 그 바람이 모든 걸 다 쓸고 가는 기분이 꽤 좋아. 청소기를 돌리고, 스팀 청소기로 바닥 청소를 마무리해. 티비, 침대 헤드, 곳곳에 쌓인 먼지를 이제 털어내고 그 상태로 5분 정도 오들오들 떨면서 환기를 마무리하는 거야. 보일러를 틀어 놓고 집 안이 따뜻해질 때까지 추위에 떨긴 해야 하지만 그동안에 마시는 커피 맛은 정말 최고인 것 같아.   


     좋아하는 사람이 내 머리를 쓰담쓰담해줄 때. 그 기다란 손 끝에선 ‘많이 힘들지’라는 무한한 위로가 느껴져. 무심코 내 손을 잡고, 어깨를 꾹꾹 주물러주고, 말없이 안아줄 때. 나의 서운함과 분노가 저 먼 칠레까지 닿아있는 길이였다면 그 순간에는 그런 게 있었나 싶게 눈 녹듯 사라져 버려. 그날은 신기하게도 오래 잠들 수 있는 날인 거야.   


     문득 편의점에서 발견해낸 나의 과자. 기간 프로모션으로 CU편의점에서 사또밥 2+1 행사를 하더라고! 사또밥 3 봉지를 손에 들고 털레털레 집에 들어가는 길이 행복해. 해가 드는 테이블 앞에 앉아서 사또밥과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보는 드라마란. 짜릿해!   



이렇게 보면 내 행복은 울퉁불퉁한 모난 모양은 아닌 것 같아. 생각보다 단순해 보여. 그런데 J, 내 행복을 떠올리면서 지금의 나는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어. 모든 걸 털고, 정리하고 도망쳤기 때문일까.


다니던 스타트업 팀을 나오기로 결심했어. 어쩌면 나로 인해 팀이 분리된 건지도 몰라. 내가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지친다고 했기 때문에. 이 결정을 하기까지 내가 엄청 잘한 것도 없는데 말도 안 되는 자위를 한 게 많아. ‘나 최선을 다 했어!’ 같은 거 말야.


작년,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겠다 마음먹고 집에 돌아오며 눈물 바람이었던 그날로 딱 1년 째야. 그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나는 결국, 눈물을 꾹꾹 누르며 더 이상은 힘들다고 이야기했어.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거지? 참을성도 없고, 인내심이 부족한 거지 내가? 그 말을 내뱉으면서도 나는 내 생각만 한 거야. 내 동료는 나의 그 말들을 다 들으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우린, 그렇게나 행복 타령을 해댔어. 행복해지자고. 내 좋은 에너지를 나눠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우리가 가진 에너지를 탈탈 털어서 맹목적으로라도 행복해져 보자고.

오늘 주고받은 이 메시지가, 나는 아주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아.



- 조히라도 좀 행복합시다



내 행복의 모양과 크기는 이렇게나 단순하고 소박한데, 슬픔은 왜 그보다도 모나고 더 큰 걸까.


J, 오늘 너무 많이 운 것 같아. 내일 내 눈은 3 _3 이렇게 되어 있겠지.

이제 자야 할 것 같아. Honne의 free love(dream edit)는 그만 들어야겠어.




조제 |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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