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일기 05.
나는 안녕하고, 애쓰지 않는 하루들을 보내려고 해. 그런데 가끔 얼음땡 놀이를 하다가 술래가 다가오는 바람에 얼음! 하게 되는 순간이 있어.
회사 사람들과 월요일 점심을 먹으며 나누는 뻔-한 이야기 있잖아. “주말에 뭐했어요?”라는 그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그럴 때마다 나는 입안에서 단어들을 굴려 대곤 해. 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어려워하느냐고? 어렵지는 않아. 단지, 그 진부한 질문들이 뻔하고 싫은 거야.
나는 일요일이면 매주 이불 빨래를 하러 가니까. 그 이야기를 매주 월요일마다 ‘이불 빨래를 하러 코인 세탁소에 갔습니다.’라고 할 수 없지 않겠어? 왠지 이 말에 너는 속으로 ‘그냥 하면 되지 뭘 그렇게 어렵게 사냐.’라고 말했을 것 같아.
이쯤 되면 왜 이렇게 이불 빨래에 집착하는지 너도 궁금하겠지? 사실 집착, 뭐 그런 건 아니야. 처음엔 그저 자취생의 로망 실현 같은 거였달까. 왜 그런 거 있잖아. 빨래 돌리면서 만화책 보고, 음악 듣고, 가끔 오는 손님들과 대화 나누는 그러는 사람들. 살짝 그런 로망이라는 게 있었는데 사실 내가 가는 코인 세탁소에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
그래서 작은 소망을 실현하기엔 턱도 없지. 일주일 동안 얼굴 부비고, 몸 부비고, 그리고 우리 집 강아지가 이불에 뒹굴 거리고. 7일이라는 시간의 먼지, 나의 온갖 스트레스가 이불에 모두 들러붙어 있을 텐데 그걸 빨아내고, 건조기가 탈탈 털어내는 그 쾌감은 내게는 절대적이라고 생각해.
빨래가 돌아가는 시간에 나는 가끔 일기를 쓰고, 음악을 듣고, 그렇지 않을 땐 돌아가는 세탁기 소음에 내 생각을 묻히게 만들 때도 있어. 쉽게 말해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거지. 생각보다 큰 소음과 덜덜 거리는 좁은 7평짜리 코인 세탁소에서 나는 내 이불뿐 아니라 온갖 더러운 말들과 찐득거려서 떨어지지 않는 내 스트레스를 같이 돌려내고 있어.
건조기로 마무리된 이불을 꺼내면 시트형 섬유 유연제에서 옮겨 간 포근한 그 라벤더 향기를 잔뜩 들이마셔. 그러면 징글징글했던 내 일주일이 리셋되는 것 같아.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그 시간이 내게는 너무 소중해.
잠잘 때 빼고 우린 매일을 생각 속에 파묻힌 채 살아가잖아.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건지, 살아가는 대로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를 만큼. 세상의 모두 옹졸하고 치사하고 더러운 소음보다도 큰 세탁기가 탈탈 거리며 돌아가는 그 소음이 어쩌면 더 나은 것 같아. 가끔 나도 그 세탁기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세탁소에 가는 사람 말고, 세탁기에 들어가는 빨래가 되고 싶어. 찌든 냄새를 없애고 새 향기를 뒤집어쓸 수 있으니까. 머지않아 다가오는 주말에 나는 다시 이불 빨래를 하러 세탁소에 갈 거야. 이번엔 그곳에서 네 생각을 열렬히 하려고 해. 이런 취미를 가진 내가 궁금할 리 없겠지만 나는 네가 많이 알고 싶거든.
2020년 글쓰기 프로젝트 ‘블라인드 라이팅’ 책 <당신이라는 우주>에 실은 창작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