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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바다에 누워 Jul 17. 2021

샤머니즘에 일희일비 하는 맛

문래동 기획회의 08.



2020년 03월, 타로&사주



2020년 2월, 6년을 다닌 회사를 퇴사했다. 당시 대구 신천지에서 코로나가 대유행될 시점이었고 나는 2월 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해외여행의 막차에 올라탔다. 유럽을 여행 하는 내내 ‘유럽와서 살면 진짜 잘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아.’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엄청 솟구쳤었다. 심지어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도 했었다.(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워킹홀리데이 지원서는 써보지도 못했음) 그렇게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가족들에게는 6년을 소처럼 일했는데 딱 3개월만 놀아보겠다는 큰 소리를 떵떵 쳐놓기도 했다. 주말 어느 날에는 엄마와 점심을 먹는데 엄마가 타로점을 한번 봐보지 않겠냐는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엄마도 나도 약간 그런 미신에 귀 얇은 편) 엄마의 지인이 그 타로점을 봤는데 아주 용하다더라, 타로 뿐만 아니라 사주까지 다 봐주는데 퍽 잘 맞힌다. 는 이야기를 해왔다. 놀고 먹고 믿을 구석은 퇴직금 하나 뿐인 백수가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바로 예약을 했다.


파주였고, 아주 고오급 아파트였다. 그냥 평범한 옷을 입은 아주머니가 딸 아이의 공부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아이의 공부 책상에 나란히 마주보고 앉자마자 아주머니는 타로카드 셔플을 하셨고 내게 카드를 뽑아 보라고 했다. 카드를 몇 장 선택하고 내가 선택한 타로 카드가 책상 위에 나란히 펼쳐졌다. 아주머니는 타로를 보더니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좀 불안한 상태인데, 괜찮아요. 곧 풀릴 거라고 하네요.”


뭐가 좀 모호했다. 내가 어떻게, 뭐로 인해 불안한지, 어떤 게 풀릴 거라는 걸까? 하고 직장운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주머니는 내가 선택한 카드를 뒤집었다.


“평강 씨는 한 직장에서 일은 오래 하는데 돈은 많이 못 버는 것 같아요. 다른 직장에서는 돈을 좀 벌 수 있을 거라고 나오는데 어디 가기로 한 곳이 있어요?”


있을 리가 없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그 친구에 대한 마음을 알 수 있을까요?”


아주머니는 내 질문에 옳거니 하고 선택한 카드를 뒤집었다.


“평강 씨가 좋아하는 남자는 평강 씨에 대해서 마음이 없어요. 그냥 친구 정도, 그리고 평강 씨에게 심적으로 많이 의지를 하는 정도? 타로에서는 지금 연애운이 올해 하반기 정도로 나오네요.”


순간 안 되는 놈은 뭘 해도 안 되나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더 이상 딱히 물어볼 만한 게 없었다. 내가 좀 쭈뼛 거리자 아주머니는 카드들을 거두고 종이를 펼쳐 내 생년월일, 생시를 물어보았다. 흰 종이 위에 내 정보들이 적혀졌다.


“평강 씨는 물 사주네요. 선생님, 사회복지사, 간호사 같은 직업을 했으면 더 좋았을 거구. 평강 씨는 개띠, 소띠, 용띠 남자와는 잘 맞지 않아요. 남자 쪽 직업은 아무래도 회계, 재무나 세무, 연구원...같이 약간 돈을 만지는 사람이 평강 씨와 잘 어울린다네요? 그리고 기관지랑 위가 별로 안 좋으네. 결혼은 서른 넷에서 여섯 정도에 할 것 같네요.”


이게 복채 10만 원짜리 점괘다. 타로와 사주를 같이 봐주었다고 해서.(물론 위에서 이야기 한 것보다 더 많은 내용들이 오고 가긴 했지만, 명확하게 나를 딱 설명해주는 내용은 없었다.) 고오급진 아파트 정문을 나오며 들었던 생각은 단 하나다.


‘난 K랑 뭘 해도 안 이루어지는 거구나...’ 하는 절망.

        



2020년 06월, 용산 OO철학관



그 해 1월 결혼을 한 친구가 이미 한번 다녀온 철학관이다. 무지 신통방통 하다고, 덕분에 자기가 결혼해서 잘살고 있는 것 같다고 무한신뢰를 했던 곳. 용산역 주변 오피스텔이었고, 예약 시간보다 10분 정도 빨리 도착해 미리 연락을 드렸다. 얼마 후 꽤 날이 선 듯 한 회신이 왔다.

 

[11시 예약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11시에 딱 맞춰 올라오세요.]


좀 까칠하시네 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인상에서도 까칠과 예민 아우라가 몹시도 많이 뿜어졌다. 개량 한복을 입고 까까머리를 한 40대 정도의 아저씨였다. 인상이 얼마나 날카롭고 무서운지 친구는 눈도 못 마주칠 지경이었다. 친구가 먼저 사주를 보기로 했다. 이미 작년에 한번 봤던 친구라 아저씨는 인상과는 다르게 상당히 온화하게 친구와 친구 남편의 사주를 읊어주었다. 관건은 나였다.


내 사주를 종이에 줄줄 쓰시더니 내 동공을 뚫을 듯한 눈빛으로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맘속으로 ‘왜 저따구로 쳐다보는 거지.’라고 했음) 한참 나를 째려보더니 입을 떼며 말했다.


“평강 씨는 사주가 아주 틀어져 버렸네? 아, 틀어졌다는 건 사주가 30대부터 완전히 바뀌었다는 거야.”


사실 그 말에 격하게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20년도, 그러니까 서른 한 살의 평강에게는 정말 둘도 없는 해였기 때문이다. 고난, 역경, 풍파 등등 사람을 갱생 시킬 수 있는 모든 환경적 요인이 내게 작용했기 때문에 저 말을 듣고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평강 씨는 관이 약해. 그건 무슨 뜻인 줄 알아? 직장이 높으면 남자 운이 없고, 남자 운이 높으면 직장이 힘을 못 써. 평강 씨는 남자 없이 살 사주야. 정 남자를 만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으면 시차가 있는 남잘 만나요. 외국 남자를 만나던가, 아니면 장거리 연애를 한다던가 뭐 그런 거. 하반기에 남자가 들어오긴 하는데 영 별로야.”


사주는 뭐 명리학, 학문적으로 그런 거 아니었나. 왜 마치 신점을 보듯이 보는지 이해는 되지 않았는데 거의 나노급 팔랑 귀인 나는 거의 70%정도 홀린 상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거 하나 조심해요. 평강 씨는 서른 다섯에 멀리 떠나야 할 사주야. 그렇지 않으면 평강 씨 주변 사람들이 다 다쳐. 해를 입어요. 가족들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고, 가족이 아니면 친구들이 죽거나 다칠 수 있어. 한국을 뜨면 좋겠는데 코로나가 재앙이잖아? 멀리 비행기 타고는 못 가니까 일단 지방 어디라도 가서 떨어져 살아야 돼. 가족들도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아야 하잖아. 그치? 더 베스트는 이거지, 평강 씨가 외국인이랑 결혼을 해서 이제 외국에 나가 사는 거. 시차가 있는 남편도 만나고, 평강 씨 주변 사람들도 다치지 않고. 그치?”


절망에 가까웠다. 아니, 절망적이었다 라는 게 더 맞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친구는 내 눈치를 봤고, 나는 한숨과 욕을 번갈아 했다.


사주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절망의 날


그날 이후로 내 목표 하나가 뚜렷해졌다. 서른 다섯까지 결혼을 못하면 한국을 떠야겠다. 하고.




2021년 06월, 경기도 안산 OO신당



친구의 동생네 부부가 다녀온 곳이라고 했다. 친구 동생과 그 남편에 대해 상당히 적나라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했고, 친구와 카톡을 주고 받다가 예약을 하게 된 건 불과 단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1시간30분이 걸리는 경기도 안산까지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경기도 안산 월피동의 신축 오피스텔이었다. 7평 정도 되는 신당이었고 어두운 조명과 화려한 신당 분위기와는 다르게 인기 드라마 OST가 흐르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잠시 대기하는 동안 점을 봐줄 무당 아저씨가 깃발을 하나 뽑아 보라고 했다. 파란색 깃발을 뽑았다. ‘파란색? 내가 물 사주라 파란 깃발을 뽑았나?’ 했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집에 혹시 물에 빠져 죽은 사람 있어요?” 라고 했다. 순간 머리를 아주 먼 과거까지 돌리고 돌려 생각을 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가족, 친척은 없었다.


“없는데...”

“모르는 걸 수도 있지”


너무 당당하게 말하기에 정말 내가 모르는 가족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했다. 친구의 점사를 먼저 보고 친구의 점사는 참담했다. 결혼을 왜 이렇게 빨리 했냐, 남편 사주가 단단히 꼬였다. 사주풀이를 해야 한다(돈 500만 원을 내고...) 라면서.


한 시간 정도 후 내 차례가 되었고 아저씨는 말했다.


“앞에 친구꺼 보다가 평강 씨를 보니까 너무 재미없다. 직장 잘 다닐거고, 돈도 많이 벌거고, 결혼은 서른 셋, 넷 정도가 좋겠는데요?”


흰종이에 검정색 글씨를 쓰더니 흡족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평강 씨는 좋은 땅이네. 평강 씨는 아무 씨앗이나 받아 들이지 않아.”


순간 작년 6월, 철학관에서 봤던 사주에 대해 귀를 씻은 기분이었다. 함께 갔던 친구도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했다. 친구는 조금 찜찜한 기분으로,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작년과는 또 다른 온도차를 겪으며 우리는 안산 고잔동에서 즉석 떡볶이를 먹었다.


고잔동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먹었던 떡볶이


+) 내가 본 점이 사기에 가까운 거였구나를 깨닫게 된 건 딱 한 달만이었다. 친구 남편, 그리고 선배의 남편 점사가 모두 다 동일했다는 것. ‘물이 부족하다, 물이 부족해서 여자, 돈, 도박(주식/부동산) 등에 빠질 수 있다. 부동산 공부를 해야 한다, 직업적으로 사주가 아주 많이 꼬여있다, 사주풀이를 해야 한다(500만 원), 사주풀이가 부담된다면 1년 동안 기도를 올려줄 수 있다(140만 원), (여자들에게 대부분)좋은 땅이고 (남자에겐)좋은 나무다 등과 같은 레퍼토리.


점이든, 사주든, 타로든 보고 나오면 거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이런 말들에 흔들리지 말자, 그냥 우리는 우리 삶을 살면 돼!”


라고 하지만 가장 일희일비하는 나새끼는 유튜브로 종종 타로점을, 주간 월간 별자리 운세를 보고있다.

아마 내년에도 어딘가를 또 찾아가고 다시 위와 같은 말들을 반복하지 않을까. 다시 일희일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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