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저는 알콜 중독인 아버지와 우울증인 어머니 그리고 오빠의 학대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런 깊은 상처와 살아오면서 얻어맞은 것들 때문에 성인이 되어 우울과 공황장애, PTSD에 시달리다가, 업무 스트레스까지 합쳐져 더 이상 회사에 다닐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참 젊은 나이에 번아웃이 된 것이지요. 한방에 나가떨어지게 되면서 오랫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아지기 위해 좌충우돌하면서 여기저기 다니기 시작했어요.
지금 와서 그때를 생각하면 먼저 좋은 정신과를 찾아 약을 먹으면서 증상을 다스리고 심리상담을 했다면 더 좋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전의 저는 약에 거부감이 컸고 처음 가본 정신과가 별로 좋지 않았기에 심리상담에 더 방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을 독자분들은 이해하고 앞으로 제가 소개하는 심리상담 경험들을 읽어나가길 바랍니다.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우울이나 불안 증상이 심하다면 먼저 정신과에 가서 증상을 다스리고 심리상담을 받는 게 좋습니다. 만약에 그 정도로 힘들지 않다면 그냥 심리상담을 받는 것도 괜찮을 수 있습니다.
회사에 출근만 하면 과호흡이 오고 우울이 심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한동안 방에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대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뛰쳐나와 처음으로 접한 심리상담이 집단상담치료였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좋아 보이는 심리상담센터에 가보니 상태가 심각하다고 했습니다. 너무 사람과 접촉이 없어서 지금 현실 인식 능력이 떨어졌다고 저를 진행되고 있는 집단상담에 바로 집어넣었습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처음 받은 심리치료였던 셈인데 아주 효과가 좋았습니다. 상담 선생님의 말대로 저는 그동안 인간접촉이 너무 없었고 그전에도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사람과 마음을 열고 유의미한 접촉을 제대로 못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모임에서 저는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접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집단상담치료란 무엇일까요? 저는 처음에 이걸 받을 때 궁금해서 책까지 사서 보았습니다. 모든 일을 시작할 때 책 먼저 보는 게 제 버릇이지요. 그때 본 책의 이름은 어빈 얄롬의 <쇼펜하우어 집단심리 치료>라는 책으로 심리학자가 집단치료에 대해서 소설로 쓴 아주 재미있고 도움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집단심리치료란 상담자의 인도하에 여러 사람이 모여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프로그램을 짜서 그 프로그램대로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집단치료에서 이야기할 때는 대개 별칭을 쓰고 익명성과 특별한 자리라는 생각 때문에 다른 곳에서 이야기할 때보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솔직히 반응하게 인도됩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의 약한 곳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사람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심을 많이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느낍니다.
집단상담을 하면서 저는 겁나서 다른 사람에게 솔직하게 해보지 못 했던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이런 이야기하면 이상하지만 여러분들이 저를 싫어하실 거 같아요."
이 말은 너무 속내를 다 드러나는 거 같아서 그리고 진짜 싫어한다고 하면 어쩌나 싶어 쉽게 못 했던 말인데 용기를 내서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저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싫어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진짜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았고 사람들은 진짜라고 몇 번이나 대답해주었습니다.
또 하나 물어보았던 건 "내가 이상해 보이지 않나요?" 였습니다. 이 말도 돌아올 대답이 무서워서 일상생활에서는 물어보지 못 한 말입니다. 대답이 솔직해도 무섭고, 솔직하지 않아도 무서웠지요.
돌아온 대답은 이상해보이지 않는다, 가 많았고 한 분만 필요 이상으로 겁에 질려 보이지만 이상하진 않고 안타깝다, 라고 말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집단상담은 상담 선생님의 인도 하에 이루어지고 서로 솔직하고 지켜주기로 약속한 모임이므로 저는 다른 곳에서보다 좀더 용기내고 솔직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몇번이나 마응속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는 질문을 했고 대답을 받았고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이 제 생각보다 저를 싫어하지 않으며 제가 너무 신경쓰지 않으면 이상해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씩 믿게 되었습니다. 너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게도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말과 행동을 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대인기피는 차근차근 나아졌습니다.
한 번의 집단치료가 좋았던 저는 기회가 되는 한 이곳저곳의 집단치료를 찾아 경험해봤는데 운 좋게 며칠 동안 숙박하면서 연속으로 하는 성폭력 생존자 집단치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진행자분의 인도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아주 극적인 경험을 하나 하게 되었습니다.
다들 자기의 성폭력 경험을 이야기하는 시간에 저는 성폭력 경험보다 어릴 때 엄마가 내게 했던 한 행동이 계속 생각이 났습니다. 별일 아닌 것 같은데 너무 계속 생각이 나서 “이거 큰일은 아닌데 자꾸 생각이 나요.” 하면서 말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했는데 제 이야기를 들은 진행자 상담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그건 아이에게 정말 아픈 일이에요. 별일이 아닌 게 아니에요. 정말 슬픈 일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몇십 년을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에잇, 별일도 아닌데 왜 자꾸 이러지?’ 했는데 제 눈앞에서 마치 저 대신 울어주시는 듯 선생님이 울고 있는 것이었어요.
저는 놀라서 사람들을 둘러보며 “제 얘기가 정말 슬픈가요? 제가 아파해도 되는 일인가요” 하고 물어봤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내 편을 들어줬습니다. 그럼요, 그럼요. 하면서. 나는 그때야 얼어붙어 있던 감정의 자유를 일부 찾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알콜중독인 아빠와 사는 것 때문에 불쌍하게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엄마를 나는 조금도 좋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이유 없는 죄책감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저의 어린 시절 굉장히 아팠던, 그러나 아픈지도 모르고 있었던 경험을 말하고 그것을 경청 받고 수용 받았던 일.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부정되었던 자신의 감정을 내가 받아들이는 첫 물꼬가 되어주었습니다. 혼자서는 아마 하기 힘든 작업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집단상담치료는 이렇게 마음이 많이 얼어붙어 있고, 다른 사람의 온기가 필요한 상태일 때 집중적인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일대일로 상담할 때도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의 지지와 수용을 받는 게 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들으면서 자신을 돌이켜보기도 하고 타인을 지지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다 다른 것처럼 집단치료도 집단에 모인 사람이나 진행자의 역량에 따라 분위기나 효과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받은 심리상담 중 집단상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모쪼록 마음에 상처가 있고, 힘들어 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저의 경험담들이 도움이 되고 안내가 조금이라도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