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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Dec 27. 2018

조제의 심리치료 과정

1. 인간에겐 사랑이 왜 필요하죠?

"사랑의 결핍이 정신병의 주요 원인이 된다는 것과,

사랑의 실재가 결과적으로 정신치료에 있어서 기초적인 치료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은

암암리에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 스캇 펙



집단상담 중 나는 선생에게 "도대체 사람에게는 왜 사랑이 필요하죠?" 라고 물어보았다. 스스로도 너무나 바보같은 질문이라 느끼면서, 하지만 내게는 절실한 의문이었다. 얼마전까지 난 사랑을 모르면서 혹은 못 느끼면서 자라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여겼기 때문에. 그리고 얼마전에야 어쩔 수 없는 필요(이러단 미칠 거라는 두려움)때문에 내게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에 승복했으나 여전히 의문이 끈질기게 남았던 것이다.


선생은 "그건 인간에게는 왜 다리가 2개죠? 사람은 왜 밥을 먹죠? 라는 것과 비슷한 질문이에요." 라는 말을 해주었다. 너무나 당연한 거란 말일까. 답답해서 한번 더 물어봤다. "사람의 육체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활동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정신도 사랑을 먹어야 한다는 건가요?" "그렇죠."그렇게 당연한 '사랑'을 나는 모르고 살았구나. 제길.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지만 완전히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말 사랑이 내게 얼마나 필요했는지를 바로 이 집단에서 몸으로 마음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부인할 수가 없었다. 2박 3일의 집단상담 전날까지 나는 굉장힌 불안과 우울과 공포에 시달리며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집단상담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선생의 인도로 함께 마음을 열고 외부 세계에서보다는 참으로 안전하게 느껴지는 분위기에서 진실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마음나눔과 대화, 공감, 수용, 연결을 통한 사랑을 받고나서 바로 그 나를 괴롭히던 증세들이 싹 줄어들었다. 사랑의 링겔주사처럼 말이다.


그것은 응급요법이었으므로 오래 약효가 남아있긴 어렵지만 지금도 난 그때의 느낌이 아스라하게 마음속에 남아있다. '연결되었고 사랑받았었다'는 그 느낌이. 아무런 조건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자신으로. 그리고 그 경험이 다시 혼돈의 지옥 속으로 빠지려는 나를 몇번이고 구하고 있다. 아직까지. 놀랍지 않은가. 그들과 나는 그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사이다.


비폭력대화 워크샵을 하면서 잠깐 느꼈던 그 놀라움을 나는 다시 이번에 아주 강하게 느꼈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열고 진짜 소통하면 우리는 서로 거의 사랑할 수 있다는 그 놀라운 경험. 이런 경험을 자주 하게 되면 길을 다니는 타인들이 정말로 기계적인 타인이 아니게 느껴질 것 같다. 정말 마음을 열고 이야기한다면 사랑하긴 어려워도 적어도 서로 이해할 수는 있는 그런 사람들로 보이지 않을까? 경쟁하고 밟고 죽이고 밀어내야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이다.


가족에게서 그런 사랑을 온전히 느끼고 자란 사람이라면 "왜 사랑이 필요하죠?"라는 의문조차 떠올리지 않겠지. 사랑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왜 사랑이 없죠? 라고 물어보겠지, 오히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런 '사랑'을 진짜 받고 자란 사람들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렇게 다들 힘들고 슬픈지도 모른다. 사랑이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져서 폭력적이고 무감각해진다. 그리고 함께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랑'이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될까? 연인간의 가족간의 독점적 사랑과는 좀 틀린 것 같다. 확실히. 인류애를 개인간의 연결을 통해 실제감으로 느낀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계속 탐구할 것이다. 한번 '사랑'의 맛을 봤기 때문에 그걸 잊을 수 없고,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이런 사랑을 나는 처음 느낀 것이 '생존자 말하기 작은 모임'에서였는데 그땐 비슷한 입장의 여성들끼리니까, 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참가했던 집단상담은 전혀 배경도, 나이도 다른 타인들의 모임이었다. 그러니 참, 신기하지도 하지. 사람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일까? 진실로 서로를 알려고 하며, 소통하고자 한다면? 어렵지만?


이런 사랑을 돈을 내고 참여하는 '집단상담'에서야 처음으로 느끼고 배우게 된 내가 참으로 좀 슬프긴 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가족과 연인과 친구를 두고도 이러고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경험으로 느끼고 배워야 하는데 참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내가 경험하기엔 여태까지 '좋은 심리상담자' 뿐이 못 봤다.


그 사랑은 계속 관계를 유지하기엔 좀 어렵잖아. 가까이 있는 사람들끼리, 자주 만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사랑하는 법을 함께 배우고 서로 경험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경쟁하고 돈 벌고 이런거 말고 말이야. 학교에서 난 '사랑하는 법' 따위 배우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것 같애. 이 세상 어디에서도 공짜로 경험하게 해주고 가르쳐준 사람은 없었어. 내가 돈 내고 들어간 이 곳 말고,


또하나 알게 된 것은 어쩌면 여태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 내게 진짜 사랑을 주었던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내가 이렇게 집단상담이라는 강한 충격파를 맞기 전까지는 그 사랑을 받으면서도 사랑을 받는 줄 모르고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사랑을 느끼고 온전히 받을 수 있는 것도 능력인 것이다. 이것은 상담 과정 중 일어났던 일련의 일들로 확인하고 알게 된 가슴 아픈 일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 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비유이겠다.


어쨌든, 사랑의 탐구는 계속 될 것이다. 중이 고기맛을 알 듯 나는 한번 살짝 사랑의 맛을 봤으므로. 내가 미치지 않기 위해선 필요하다. 그리고 그탐구는 여태까지처럼 '책'으로만은 절대 안 되고, 경험과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젠 알겠다. 왜냐고는 아마도 계속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필요하다는 것조차 부인하진 않겠다. 없었고 몰랐다는 게 슬프긴 하지만.


이런걸 더 알기 위해 사랑의 주고받음의 인큐베이터라고 할 수 있는 안전감이 드는 집단상담을 주기적으로 하는 게 내겐 필요할 듯 하다. 현재로서는 사랑의 인큐베이터로 이것 외엔 알지 못한다. 돈이 좀 들긴 하지만. 외국은 1년이상 유지되는 집단상담이나 12단계 프로그램 공동체도 있다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쪽은 좀 드문 듯. 아쉽. 더 찾아봐야지. 그리고 연습하면서 외부 세계에서도 조금씩 걸음마를 해봐야겠다.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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