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혼자 엄마를 기다리던 진희는 설거지를 했습니다. 힘들게 일하고 온 엄마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엄마는 말했습니다.
"설거지를 다 하고 나서는 주위에 튄 물도 닦아야지."
'내가 더 잘 했어야 하는데 잘못했나 보다.'
진희는 시무룩해졌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한 진희는 받아쓰기에서 한 개뿐이 안 틀렸습니다. 엄마가 칭찬해 줄 거라고 생각한 진희는 시험지를 들고 부지런히 걸어 집에 왔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말했습니다.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백점을 맞는 건데 아깝구나."
이번에도 칭찬은 없었습니다.
'내가 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데 잘못했구나.'
진희는 실수한 자기가 미웠습니다.
이렇게 계속 계속 진희는 칭찬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무엇을 하든 진희는 엄마에게 완벽하지 못하고 실수쟁이 아이였습니다. 그런 매일이 지나고 진희의 마음속에는 '야단치는 소리기계'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진희를 꾸짖지 않아도 스스로 혼내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진희에게 했던 말들을 이제 진희는 스스로에게 합니다.
그치만 진희는 자기 마음속에 그런 기계가 생겼다는 것을 까맣게 모릅니다. 어느날 부턴가 마음에서 들리는 야단치는 소리들이 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인줄 압니다. 그리고 점점 마음이 무겁고 어두워져만 갔어요.
오늘도 진희는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에게 야단을 맞고 눈물을 똑똑 흘리며 놀이터에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바보야. 또 수학 문제를 한 개 틀리고. 엄마 말대로 좀 더 조심했으면 백점을 맞았을 텐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하얀 색으로 칠해진 버스가 진희 앞에 멈춰서더니 머리에 하얀 색 간호사 모자를 쓴 다람쥐가 진희에게 말을 했습니다.
“마음 예방주사 놓으러 왔습니다! 다들 마음 예방주사 맞으러 오세요! 앗! 당신은 지금 예방주사를 맞아야 할 때가 아니라 빨리 치료를 받아야겠네요. 어서 올라오세요.”
진희는 자기도 모르게 병원차에 올라갔습니다.
병원 차 안은 진희가 매일 가는 병원과는 다르게 알록달록 곱게 꾸며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주사를 맞으러 줄을 서있는데 이상하게 학교에서 예방주사를 맞을 때처럼 겁내거나 싫어하는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주사 아프지 않아?”
“별로 안 아파. 맞을 때 굉장히 시원하고 안심되는 기분이 드는 걸?”
줄이 점점 짧아서 마침내 진희가 맞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청진기를 진희의 가슴에 댄 의사 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오진희씨는 예방주사 말고 응급처치를 받아야겠어요.”
“제가요? 왜요?”
“심장 속에 ‘야단치는 소리 기계’가 들어있어요!”
“그게 뭐에요?”
진희는 깜짝 놀라서 물어봤습니다.
“언제부턴가 자기 자신을 야단치고 혼내는 말을 하지 스스로에게 하지 않았나요?”
“맞아요. 근데 그건 다 제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요?”
의사 선생님은 진희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에요. 진희씨가 항상 잘못해서 그런 말이 들리는 건 아니에요. 다 심장 속에 ‘야단치는 소리기계’가 들어있어 거기 녹음되어 있는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계속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진희씨 마음이 점점 어둡고 힘이 없어질 거예요.”
진희는 깜짝 놀라서 말했어요.
“그럼 선생님, 어떻게 하면 되죠? 저 좀 고쳐주세요.”
“제가 고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소리기계는 심장에 한번 생기면 없앨 수가 없거든요.”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의사 선생님은 작은 기계 하나를 하나 서랍에서 꺼냈습니다.
“이걸 야단치는 소리기계와 연결해 사용하면 됩니다. 머리 부분에 있는 첫 번째 단추를 누르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야단치는 소리기계와 연결이 돼요.”
진희는 의사 선생님이 준 기계의 단추를 눌렀어요. 심장 부분에 우웅우웅 울림이 있더니 따뜻해졌습니다.
“이 기계를 사용하는 법을 알려 줄게요. 이건 녹음기에요. 야단치는 소리 기계가 진희씨 마음에 해를 끼치지 않게 하려면 그 기계에 다시 새로운 좋은 말을 녹음해서 전에 있던 나쁜 말들을 없앨 수밖에 없어요. 자신에게 나쁜 말을 하고 싶어질 때마다 녹음기를 켜고 스스로에게 계속 좋은 말을 해주세요.”
“얼마나 녹음을 해야 되는데요?”
“그건 진희씨가 하다 보면 알게 되어요.”
“만약에 엄마가 제게 나쁜 말을 하면요?”
의사 선생님은 슬픈 얼굴이 되었습니다.
“어렵겠지만 듣지 않으려고 노력해봐요. 그리고 언젠가는 다른 방법이 생길 거예요.”
진희는 의사 선생님이 손에 쥐어진 녹음기를 꼬옥 잡아 보았습니다.
“치료비는 야단치는 소리기계가 효력이 없어진 날 우리가 받으러 갑니다.”
“저는 돈이 없는데요?”
의사 선생님은 싱긋 웃더니 말했어요.
“돈으로 치료비를 받는 병원이 아니에요. 그리고 혹시나 또 우리 병원에 와야 될 친구가 눈에 띄면 놀이터에 와서 ‘아이들의 병원 버스 나타나라!’라고 계속 생각하라고 전해주세요."
진희는 그날부터 매일매일 녹음기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에 진희가 자신에게 하는 나쁜 말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서 잠이 들 때까지 무언가 실수만 하면 진희는 자신에게 “이 바보야!”라거나 “너는 왜 하는 것 마다 잘못 하니?”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자동으로 그 말이 나왔어요. 의사 선생님 말대로 야단치는 소리기계가 심장에 있다는 게 참말인 듯 했습니다.
진희는 이제 그렇게 자기를 야단치는 말을 하고 나면 녹음기를 켜서 다시 좋은 말을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아니야. 실수할 수도 있지. 다른 건 잘 했어.” 라든가 “한 번도 안 해본 일인데 용기내서 해봐서 잘 했어.” 같은 말들을 해주었어요. 그러다보니 재미가 있어져서 문방구에서 ‘참 잘했어요.’ 도장도 사서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도장을 찍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는 일기장에 ‘오늘은 뭘 실수했고 뭘 잘못했다. 나는 왜 이럴까.’라는 말이 가득했다면 이제는 그러지 않습니다.
야단치는 소리기계에 연결된 녹음기에 좋은 이야기를 녹음해 주기 위해 자신을 작은 일 하나에도 칭찬해주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진희의 일기장은 이제 칭찬 일기장이 되었어요. 칭찬 일기장에 하나씩 하나씩 자신에 대해 좋은 말을 적고 녹음할수록 진희는 점점 마음이 가볍고 즐거워졌습니다. 녹음을 하는 게 효과가 있나 보아요.
어느 날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녹음기에 “오늘도 수업시간에 졸렸는데 안 졸고 수업 잘 들어서 잘 했어, 진희야”하고 녹음을 하고 있는데 친구 열매가 말을 걸었습니다.
“진희야, 너 지금 뭐하고 있어?”
“열매야, 이건 비밀인데. 내 심장 속에서 야단치는 소리기계가 있대. 그래서 그동안 마음이 어둡고 무거웠어.”
“야단치는 소리기계?”
“응, 그게 심장 속에 있으면 맨날 자기를 스스로 혼내고 구박하고 그런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지 몰라. 그런데 어떤 의사 선생님이 고치는 방법을 알려줬어.”
열매는 이 이야기를 듣더니 눈이 둥그레졌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진희야, 사실 나도 그래. 나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너도 그랬구나. 뭘 하든 마음속에서 ‘에잇! 바보야. 왜 이렇게 못 하고 실수만 하냐?’ 이런 소리가 들려서 항상 너무 힘들었어. 나는 내가 맨날 실수만 하니까 당연한 건줄 알았는데 그런 소리를 없앨 수 있다 말이야?”
진희는 열매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어요. 진희도 자기만 혼자 그런 소리를 듣는 줄 알았거든요.
“너도 그동안 진짜 힘들었겠다. 내가 의사 선생님한테 나같은 아이를 보면 알려주라는 말을 들었어. 지금 이야기해줄 테니까 그대로 해.”
진희는 열매에게 귓속말로 속닥속닥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열매는 고개를 끄덕끄덕 했습니다다. 그뒤로 열매는 주희에게, 주희는 현호에게, 현호는 지선이에게 아이들을 위한 병원 이야기를 해주었답니다. 그래서 그애들은 모두 자기 마음속에 있는 야단치는 소리기계와 싸우기 시작했어요.
그 아이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에서 말하고 이제 다시 진희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점점 스스로 칭찬을 많이 해준 진희는 이제 마음이 많이 밝고 가벼워졌습니다. 녹음을 하지 않을 때에도 자기에게 나쁜 말을 하지 않았고 좋은 말을 하게 되었어요. 실수를 했을 때엔 실수했다는 걸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자신을 구박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을 보내고 있는 진희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진희의 엄마였어요. 진희의 엄마는 지금까지도 계속 진희을 야단치고 칭찬해주지 않았습니다. 진희는 엄마가 자기에게 왜 그럴까가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자기 마음에 좋지가 않았거든요.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는데 왜 그렇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엄마가 야단치는 걸 계속 견디던 진희는 결심을 했습니다.
엄마에게 왜 내가 잘한 건 하나도 칭찬해주지 않고 못 한 것만 야단치는지 물어보기로요. 막상 결심은 했지만 엄마에게 그걸 물어보는 건 정말 힘든 일이였습니다. 진희는 여태까지 항상 야단만 치는 엄마에게 기가 많이 죽어있었거든요. 그래도 이제 야단치는 소리기계에 녹음을 하면서 마음에 조금 힘이 생겼으니까 기운을 내보려고 했습니다.
그날도 엄마는 진희가 엄마가 오는 걸 기다리면서 청소해 둔 걸 보면서 야단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를 하면 말끔하게 해야지. 네가 하면 별로 청소한 것 같지도 않아.”
진희는 엄마의 말에 마음이 따끔따끔해졌습니다. 이제는 때가 된 것입니다.
“엄마! 엄마는 왜 내가 뭘 하든 칭찬을 하지 않고 야단만 쳐?”
“아니,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러니? 난 그냥 네가 하는 일이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 하니까 그런 거지.”
“그렇지만 엄마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마음이 아팠어. 그래서 내가 아무것도 잘 못하는 아이 같이 느껴져서 속상했다고. 내가 그렇게 뭘 하든 잘 못 해?”
“아니야. 엄마는 네가 더 잘 하라고 그렇게 말한 거야. 너 잘 되고 도움되라고.”
진희는 엄마와 계속 말해도 말이 안 통할 거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손에 들고 있던 녹음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이게 뭔지 알아? 내 심장 속에 야단치는 소리기계가 생겨서 그걸 치료하려고 아이들 병원 의사 선생님이 준거야. 나는 이게 없었으면 마음이 계속 무섭고 어두워서 힘들었을 거라고.”
엄마는 그 녹음기를 보더니 깜짝 놀라 보였습니다.
“아니, 네가 이거 어디서 났니? 나 어릴 때도 본 건데.”
진희가 엄마 말에 더 깜짝 놀라 물어보았어요.
“엄마도 이거 봤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
“나는 녹음을 많이 하지 못 했어. 아버지가 내가 녹음하는 걸 보고 녹음기를 빼앗아서 버리셨거든. 그 뒤에 아이들 병원을 다시 찾아보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다시 찾을 수가 없었어.”
진희는 엄마말을 듣자 갑자기 엄마가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럼 엄마도 심장 속에 야단치는 소리기계가 있고 그걸 지금까지 가지고 살아온 거잖아요?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요.
“엄마, 나는 이 녹음기 많이 써서 이제 필요 없을 것 같아. 내가 사용법을 알려 줄 테니까 엄마 심장에 있는 야단치는 소리 기계를 이제라도 못 쓰게 만들자. 나는 엄마도 즐거웠으면 좋겠어.”
엄마는 진희의 말을 듣더니 눈가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진희는 녹음기를 엄마의 손에 살며시 쥐어주었어요. 이제 진희네 엄마도 좋은 말을 많이 녹음할 수 있겠지요. 그러다보면 진희에게 더 이상 나쁜 말을 하지 않게 될 날도 올 것입니다. 아마도 틀림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