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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Dec 17. 2022

안경 토끼와 신비한 밤의 여행

1회 - 똑똑한 안경 토끼를 만난 이야기

송이는 요즘 기분이 아주 나빴습니다.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안경을 쓰니까 안경테가 닿는 코랑 귀도 자꾸 아프고, 얼굴도 이상해 보이는 게 참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안경을 쓰게 된 지 딱 일주일째 되는 토요일 오후, 송이는 언짢은 기분으로 마당에서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고 있었어요. 안경을 벗으면 나무들이 한데 뭉친 것처럼 동글동글하게 보였다, 다시 쓰면 제 모습을 찾곤 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얘, 너 드디어 안경을 썼구나. 그럼 이제 내가 보이겠네! 나 좀 봐!"

그러더니 나무 뒤에서 송이와 똑같은 안경을 쓴 작은 토끼가 깡총 뛰어 나왔습니다. 토끼는 토끼인 주제에 안경을 쓰고 빨간 옷까지 입고 있었어요.

"나야, 나. 똑똑한 안경 토끼!"

놀란 송이는 소리쳤어요.

"안경 토끼? 그게 뭐야?"

그러자 안경을 쓴 토끼는 못마땅한 듯 앞발을 탁탁 구르더니 말했습니다.

"똑똑한 안경 토끼라고 말해 줘. 안경 토끼는 안경을 새로 쓰게 된 아이에게만 보이는 토끼야. 그 아이한테 나타나 이것저것 도와주지."

그 말을 듣자 송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어요.

"그럼 다시 내가 안경을 쓰지 않게 해 줘!"

"그건 미안하지만 안 돼.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거든. 그렇지만 대신 이 '똑똑한 안경 토끼'가 앞으로 널 도와줄게. 지금부터 날 따라와!"

말을 끝낸 안경 토끼는 송이 앞에서 폴짝폴짝 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머뭇대던 송이도 안경 토끼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어요.

안경 토끼가 송이를 데리고 간 곳은 동네에 있는 공원이었습니다. 공원은 5월의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요.

"눈이 나빠져서 안경 쓰는 건 물론 싫은 일이야. 코도 아프고 친구들이 놀리기도 하고."

안경 토끼의 말이 무척 마음에 와 닿은 송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세게 끄덕였습니다. 내 마음을 저렇게 잘 알다니 진짜 '똑똑한 안경 토끼인가 봐'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그래도 꼭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야."

안경 토끼는 작은 발로 안경을 벗더니 말했습니다. 안경 토끼가 안경을 벗으니 그냥 평범한 토끼처럼 보였어요.

"여기 앞에 있는 나무 보이지. 그걸 자세히 보면서 천천히 안경을 한번 벗어 봐. 뭐가 보이니?"

다시 안경을 쓴 안경 토끼가 물었습니다. 하지만 송이 눈에는 희미하게 변한 세상만이 보일 뿐이었어요.

"안경 벗으니까 또 아무것도 안 보여."

"흠흠, 제대로 잘 안 봐서 그래. 나뭇잎 사이를 잘 보면서 안경을 벗어 봐. 다시 한 번! 자아!"

송이는 다시 한 번 안경을 벗었습니다. 이번엔 안경 토끼 말대로 나뭇잎 사이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안경을 벗었어요.

안경을 벗기 전에는 평범하게 보였던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던 햇빛이 이제, 동그란 나팔꽃 무늬로 번져서 더욱 예쁘게 보였어요.

"햇빛을 잘 살펴봐. 그 사이사이에 뭔가 보이는 게 있을 거야."

송이는 안경 토끼의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그러자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요. 나팔꽃 무늬 사이사이에 작게 날아다니는 무언가가 잔뜩 있었습니다. 정말 눈이 좋을 때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풍경이었어요.

"저것들은 뭐지?"

"뭐가 더 보이니?"

송이는 신이 나서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빛 사이사이를 작은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있어. 그리고 너처럼 옷을 입은 토끼들이 같이 뛰어다녀.”

에헴, 하고 기침을 한 안경 토끼는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원래 눈이 좋을 때는 내 모습도, 내 친구들 모습도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거든. 근데 눈이 나빠지면 가끔 이렇게 다른 세상의 친구들을 볼 수 있게 되는 아이가 있더라고.

그게 바로 너 같은 아이야. 안경을 쓴다고 해도, 눈이 나빠진다고 해도 꼭 모두 그럴 수 있는 건 아닌데. 정말 운이 좋은 줄 알라고."

신이 난 송이는 냉큼 대답했습니다.

"정말 고마워! 나도 널 만나게 돼서 정말 기쁜걸!"

안경 토끼는 그 말을 듣더니 쑥스러워진 듯 귀를 쫑긋쫑긋하고 아래와 같은 말을 남긴 채 나무 뒤로 다시 폴짝 뛰어가 버렸습니다.

"그럼 나중에 또 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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