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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Dec 23. 2022

굶고 싶을 때 전화해요

상담을 갔는데 엄청 울었다. 선생님이 나를 울렸다. 힘들었던 얘기를 하다가 복받쳐 나혼자 우는 일은 흔했지만, 선생님이 내게 건네 준 말 때문에 우는 일은 드물었다. 그리고 이번처럼 너무 엉엉 울어서 홍수같은 눈물에 밀려 눈에서 렌즈가 떨어져나올 정도로 운 건 처음이었다. 손에 묻은 렌즈를 보고 나조차 깜짝 놀랐다. 게다가 렌즈가 하나만 나오고, 하나는 눈뒤로 돌아가서 나중에 혼자 화장실 가서 빼내느라 애먹었다.


상담 시간이 다 끝나갈 때쯤 선생님이 갑자기 망설이더니 '고독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의 상담 스타일은 원래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거들어주는 편이고(그래서 내가 좋아했고) 먼저 대화주제를 꺼내는 일은 드물었는데 의외의 일이었다. 게다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니...


얼마전에 혼자 살던 30대 여성이 '고독사'한 기사를 봤다고 했다. 우울하고 사는 것에 지친 여성이 밥을 굶는 방식-아사-으로 죽은 게 7개월이나 지나 발견되었다고. 대학도 나오고 나름 엘리트였는데 회사도 그만두고 그렇게 되었다고.


"조제씨도 우울해지면 밥도 안먹고 그냥 침대에 가만히 누워만 있을 때 많잖아요?"


"맞아요. 전보다는 낫지만 요새도 가끔 너무 우울해지면 그렇게 되죠. 하루종일 잠만 자고 아무 것도 안 먹어도 배도 안 고프고 먹고 싶지도 않아요."


"그걸 아니까 갑자기 걱정이 되었어요. 조제씨도 가족 없이 혼자 살고 있고... 나는 조제씨가 상담에 한주 못 온다고 하거나 연락이 안 되면 걱정이 되요. 혹시 혼자 잘못되었을까봐."


나는 이 얘기까지는 그냥 고맙다는 생각만 했다. 신문기사를 보고 나를 떠올려주다니 고맙다고. 근데 선생님의 다음말이 나를 때렸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조제씨가 또 그렇게 우울해졌을 때 계속 혼자 그러고 있지 말고... 밥 굶고 싶을 때, 밥 사달라고 나한테 전화해요. 이 말이 하고 싶어서 아까부터 계속 시간을 끌었어요. 혹시라도 자존심 상해할까봐 걱정되서..."


이 말을 듣는 순간, 난 아무 대답도 못하고, 아무 생각도 못하고, 갑자기 심장을 얻어 맞은 것처럼 '헉' 소리를, 소리도 못내고 내며,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나도 모르게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도저히 스스로를 조절할 수가 없었다. 흘러나온 눈물과 흘러나온 렌즈 때문에 시야가 흐려져 선생님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나쁜 눈물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충격받고 놀라긴 했지만 따뜻한 눈물이었다. 마음속 얼음이 잠시 녹아 흘러나온 눈물이었다. 얼음의 나라에서 살던 아이는 따뜻한 물이 닿자 충격을 받고 놀라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제가 너무 놀라서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근데 너무 놀랐어요."


한참 울다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정신없이 인사를 하고 휴지로 얼굴을 문지르며 밖으로 나왔다. 꾸벅 인사를 했다. 선생님의 얼굴은 여전히 잘 안보였다. 나는 시력이 너무 나쁜 것이다. 렌즈가 돌아간 한쪽 눈도 따끔따끔했다.


하지만 나는 이순간을 잊지 않으려고 계속계속 되씹었다. 나는 선생님이 내게 '밥 굶고 싶을 때, 밥 사달라고 전화하라'는 말에 눈물이 펑펑 났다. 왜그럴까? 분석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만 쓰면 전해지지 않을까. 내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내가 왜 그랬는지.


어쨌든 나는 선생님 덕분에 고독사는 당분간 면했다. 이렇게까지 말해줬는데 하루에 두 끼는 되도록 먹어야겠다. 정말 먹기 싫을 땐 바나나라도. 물론 내 성격상 선생님에게 밥을 사달라고 전화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저 말은 내 마음 속에 겨울양식으로 꼭꼭 접혀 저장되어 있다.


- 간직해두기 위해 쓰다.나는 좋은 것은 금방 까먹으니까.


아참 요새는 그래도 하루종일 굶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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