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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Dec 24. 2022

키티 자석을 대신 모아준 언니

책박스 정리하다가 헬로우키티 자석을 모아둔 소중한 컬렉팅 앨범을 찾았다. 살살 쓰다듬으니까 다시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든다. 이거 첨 가졌을 때 얼마나 감격했던지!


난 키티매니아이다. 그래서 세븐일레븐에 간간히 하는 키티 이벤트를 상술에 놀아나면서 참 좋아라 하는데 언젠가는 키티 쿠션을 갖고 싶어서 참 엄청나게 키티 쿠폰을 모으러 다녔다. 편집부 사람들의 간식 심부름을 도맡아가며 전폭적인 응원을 받아 드디어 쿠폰북을 다 채우고 키티 쿠션으로 교환했을 때의 그 감격이란!


어쨌든 그다음 해에도 세븐일레븐에서는 간특한 키티 이벤트를 벌였는데 그것은 바로 키티자석 모으기! 세븐일레븐에서 4,000원 이상의 상품을 구입하면 헬로키티자석(마그네틱)이 들어있는 헬로키티 패키지를 주는 거였다. 그 기간이 5월~7월까지였는데 평소 컨디션 같았으면 세븐일레븐에 수억 쏟아부으면서 키티자석모으기에 매진했겠지만 그 시기가 딱 내게 3차 우울삽화가 강림한 바로 그 암흑의 시기였던 것이다. 


밥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그냥 깨어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는데 키티자석 모을 여력이 있을리가 없지. 모든지 둔감해지고 무감각, 무기력해 점차 세상이 회색빛으로 변하던 그 시기에 내 뇌에도 이 소식이 스쳐지나갔지만 잠깐 "아..."하고 말았었다. 아무리 키티라도 그당시 내 마음에 조금의 생기도 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와 오래 알고 지낸 k언니는 내가 키티를 어마무지하게 좋아하는 것도, 그리고 내가 그때 당시 엄청난 우울함에 삼켜지고 있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k언니는 외부와의 연락을 모두 피하는 내게 간간히 연락도 하고 만나자는 말도 했지만 모든게 무채색으로 빨려들어간 난 그누구도 만날 힘이 없었다.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배은망덕하게 귀찮기까지 했다. 혹은 '타인'이라는 대상을 만나는 게 두렵기도 했다. 그게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지금은 이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좀 그럼;)


그런 나의 상태를 잘 아는 k언니는 연락 자체도 피하고 만나자고 약속했다가도 힘들어져서 못 나겠다고 울먹울먹하며 두문불출하는 날 강제로 끌어내려고 하지 않고, 언니 나름대로 날 위해 '모종의 일'을 하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나대신 키티자석을 모으는 것! 아아... 원래 k언니는 키티 좋아하지도 않고 세븐일레븐을 잘 이용하지도 않는다. 쿠폰 모으기 같은거? 절대 안 한다. 하지만 그런 언니가 편의점에서 4000원어치 물건을 맞춰서 사고 키티자석을 1개, 2개 열심히 모았던 것이다. 가히 성자(?)의 마음이다.


그뒤 8월에 몇달 간의 우울삽화에서 간신히 회복되어 너덜너덜해진 정신으로 오랜만에 언니를 만났을 때, k언니가 주섬주섬 꺼낸 비닐봉지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백만개의 별같은 35개의 키티자석들! 그것들을 보고 나는 너무 놀라고 감동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잠시 말을 하지 못 할 정도였다. 물론 너무 귀엽고 이쁜 키티자석들이 많아서도 좋았지만, k언니의 마음이 너무 잘 느껴지고 고마워서 더 감동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게 이 35개의 키티자석들이 350개의 보석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언니는 조금이라도 내가 회복이 되어 혹시 만날 수 있게 되면 내가 아주 작게라도 기뻐할 일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그랬다고 한다. 절 근처에 있는 돌 쌓는 돌탑처럼; 우울증에 허덕이는 **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키티자석 모으기 정도뿐이 없었으니까 그거라도 하면서 나아지길 기원했다나.


그 말을 들으면서 도대체 왜 날 위해 그렇게까지 했을까! 정말 신기하다! 하는 생각으로 외계 생물체를 보는 심정으로 언니를 새삼스레 찬찬히 살펴보았었다. 원래 인간이란 이런 것일까? 이렇게 따뜻한 생물인 것일까? 아, 너무 눈부셔, 이상해!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좋구나. 아아. 마음속 얼음이 조금 녹는 소리가 들린다. 파직.


흔히 아이를 사랑하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그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고 어른의 기준이 아니라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는 것을 해주라고 한다. k언니는 바로 그것을 내게 실천해 준 것이다. 자기가 좋아보이는 게 아니라, 나의 눈높이에 맞추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받으면 기뻐할 만한 것 남들이 보기에는 별거 아니겠지만(언니 눈에도 사실;ㅎ) 내게 만큼은 무척 소중한 것, 하지만 정성으로 발품을 팔지 않으면 구할 수 없는 것들을 모아서 내가 준 것이다.


나는 사실 세상에 태어나서 받은 선물 중에 이것만큼 마음에 든 선물이 없다. 사진이라도 올리고 싶지만 요샌 카메라를 만지기가 싫어져서 언젠간 이 마음도 나아지겠지. 조금씩.


너무 오버한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게는 정말 120% 진실한 그런 마음이다. 마음이 많이 마비되어 인간관계도 잘 맺을 줄 몰라 서툴고 잔정도 그리 없는 편인 내게 먼저 다가와주고 사귐에 어색한 내 행동과 말에도 '조제는 원래 그러겠거니~' 하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함께 웃어주고 재미있게 놀아준 k언니. 앞으로 로봇 같은 내가 많이 인간화가 되어서 보답을 할 수 있음 좋겠다. 


미래는 예측불허이니 앞으로 우리 사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혹은 바쁜 인생사에 밀려 멀어지게 되더라도 나는 이 '궁국의 감동 키티자석 35개 대신 모아주기 선물 사건' 만큼은 절대 잊지 않고 죽을 때까지 기억하고 고마워하고 기뻐하고 기념할 것이다.


이 키티 앨범은 꼭 끌어안으면 왠지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한장, 한장 넘기면서 키티자석들을 쳐다만 봐도 너무 좋 귀엽 이뻐서 입이 절로 헤 벌려진다. 


k언니, 정말 고마워.

간직된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 했으니 잊지 않기 위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로 기념비를 만들어 간직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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