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

Papa Francisco

by 조세피나

2025년 4월 21일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오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 소식이 전해졌다.

88세이시지만, 최근 건강이 안 좋으셨지만,

그래도 갑작스럽다.

사람의 마지막은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어제 바티칸 광장의 부활절 미사에 나오셔서 강복을 주셨다고 들었는데 하루 만에 이렇게 가시다니..

마치 가까운 친지를 잃은 것처럼 잠시 멍하다. 먹먹하고..

집안의 큰 어른이, 세상에서 더없이 보배로운 큰 존재가 이 세상을 갑자기 떠나간 기분이다.

채팅방에 교황님의 선종 소식을 공유하고, 성호경을 긋고 잠시 기도를 드렸다.+

사제, 수도자들의 휴일인 월요일임에도 명동 성당 저녁 6시 미사에 사제단이 공동으로 미사를 드린다. 신자들도 평소보다 많이 왔다.

모두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음이 느껴진다..

내 뒷자리에 앉은,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청년 둘이서 간간히 소리를 내며 울고 계속 훌쩍거린다.

이 청년들이 교황님과 무슨 인연이 있기에 아버지라도 잃은 사람들처럼 우는 것일까?

맞다. 가톨릭신자들에게는 교황님이 아버지 같은 분이시구나..!

담담히 미사를 드리려고 했던 나도 전염이 되었는지 눈물이 고인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누구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를 하는가?

우리의 크신 아버지를 잃은 듯하다.

4월 22일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아침 미사를 주례하신 신부님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마지막 강론을 낭독해 주셨다.

가슴이 뛰는 살아있는 강론이다!

교황님께서는 이 강론을 남겨주시려고, 마지막으로 신자들에게 부활 강복까지 주시려고,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셨던 것이다.

교황님만이 쓰실 수 있는, 그분만이 전해주실 수 있는 보석 같은 강론이다.

주님 안에 계시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하시기 때문에 가능하셨던 것이다.

지하성지에 교황님의 빈소가 차려졌고,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하러 오기 시작했다.

일행과 잠시 바깥에서 기다렸다가 들어가 교황님 사진 앞에 서서 기도를 드렸다.

교황님을 위해서 기도하러 왔는데, 교황님의 평화의 안식을 비는 기도 보다 나 자신을 위한 기도가 나왔다.

앞으로 '주님의 자녀로서', '주님의 자녀답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라고, 기도해 주시라고..

장례미사가 봉헌되기 전이지만, 교황님은 이미 주님 곁에 계신 것 같다.

그래서 주님의 곁에 계신, 이미 성인이 되신 분께 나를 위한 중재 기도를 부탁드리는 것이다.

교황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한국 천주교회에, 정순택 베드로 교구장님께

2027년 WYD(World Youth Day Seoul 2027)를 충실히 준비해서 잘 치러 달라고 당부하셨었다.

나도 WYD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겠다.

“교황님, 저도 27년 WYD가 잘 치러지도록 돕겠습니다.”

교황님 사진 앞에 서서 다짐하듯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

어제는 우리가 기댈 수 있는 큰 나무 같은 분을 잃은 것 같아서 잠시 슬펐지만,

오늘은 다시 마음이 환해졌다.

그분께서 이미 천국에서 성인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기도해 주실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하다.

살아계실 때보다도 더 가까이 느껴진다.

그리고 교황님이 진심으로 부럽다..

어떻게 그렇게 마지막까지 사랑의 사명에 충실하게 사실 수가 있으셨을까?

선하게, 품위 있게, 아름답게.

난민들, 약한 이들, 가난한 이들을 도우시고, 평화를 위해서 역동적으로 일하셨다..

고위 성직자로서, 교황으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마다하시고, 단순하고 검소하게 사셨다.

입관 때 교황들은 전통적으로 착용하는 붉은 구두가 있다고 하는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생전에 늘 신고 다니신 “낡은 구두를 그대로 신으시고" 하느님께로 가셨다.

교황님의 남은 재산은 100달러라고 한다. 은행 계좌도, 투자도, 사적 소유도 없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떠나셨지만, 우리 안의 환한 빛으로 남으실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마지막 미사 강론 말씀 번역문

2025년 부활 주일 낮미사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강론

(안젤로 코마스트리 추기경 대독)

성 베드로 광장, 2025년 4월 20일, 주일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의 돌이 치워진 것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알렸습니다. 깜짝 놀란 두 제자도 길을 나서는데, 복음서에 따르면 “두 사람이 함께 달렸다”(요한 20,4)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달리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달린 이유가 주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걱정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리아 막달레나, 베드로, 요한의 서두름은 마음의 갈망, 곧 예수님을 찾고자 하는 내면의 태도를 드러냅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더 이상 죽음의 포로가 아니시며, 수의에 감싸여 계시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단지 옛이야기 속의 인물로, 고대의 영웅으로, 박물관 속 조각상으로 가두어 둘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일어나서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삶 속에서, 우리 이웃의 얼굴 속에서, 일상적인 일 속에서, 무덤이 아닌 모든 곳에서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쉬지 않고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부활하셨기에, 이제 어디에나 현존하시며,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가 만나는 형제자매들과의 길 위에서,

일상의 평범하고도 뜻밖의 순간들 속에서

당신 자신을 감추시기도 하고 드러내시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살아 계시며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통해 함께하시고,

우리 각자가 행하는 작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 삶을 아름답게 하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부활 신앙은 안락한 “종교적 위안”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활은 우리를 행동하게 합니다. 막달레나와 제자들처럼 달려가도록 우리를 재촉합니다.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살아 계신 예수님,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보다 앞서 가시며,

우리를 놀라게 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보도록 말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우리는 매일 주님을 잃는 듯한 경험을 할 수도 있지만, 매일 다시 그분을 찾아 달려갈 수도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반드시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당신을 발견하게 해 주실 것이며, 당신 부활의 빛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 주실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우리 삶의 가장 큰 희망입니다.

우리는 이 가난하고, 연약하고, 상처 입은 삶을

그리스도께 의지하여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죽음을 이기셨고,

우리의 어둠을 이기시며,

세상의 그늘까지도 이기셔서

기쁨 가운데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오로가 말한 우리의 목표입니다.

“뒤의 것은 잊어버리고 앞의 것을 향하여 달려” (필립 3,13-14) 나아가는 것이지요.

마리아 막달레나, 베드로, 요한처럼

우리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갑시다.


희년은 우리 안에 희망의 선물을 새롭게 하라고 초대합니다. 우리의 고통과 근심을 희망 안에 맡기고, 길에서 만나는 이들과 희망을 나누며,

우리 삶의 미래와 인류 가족의 운명을 희망 안에 맡기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덧없는 것들에 만족해서는 안 되고, 슬픔에 굴복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기쁨으로 달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해 달려갑시다. 그분의 친구가 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은총을 다시 발견합시다. 그분의 생명과 진리의 말씀이 우리 삶을 비추게 합시다.


위대한 신학자 앙리 드 뤼박이 말했듯이,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그리스도교는 곧 그리스도다.

아니, 진정으로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다.”

(앙리 드 뤼박, 「오늘날 세상에서 가톨릭의 교리적 책임」, 파리 2010, 276쪽)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신 이 ‘모든 것’이 우리 삶을 희망으로 열어줍니다. 그분은 살아 계시며, 오늘도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죄와 죽음을 이기신 주님께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이 축일에 저희도 새로워질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이 영원한 새로움의 체험에 이르게 해 주십시오. 습관의 슬픈 먼지와 피로, 무관심에서 저희를 정화하시고, 매일 아침, 놀라움으로 눈뜨게 하소서. 이 아침만의 새로운 빛깔을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주님. 아무것도 예전과 같지 않으며, 아무것도 낡은 것이 없습니다.” (아드리아나 차리, 「마치 기도처럼」)


자매 형제 여러분, 부활 신앙의 경이로움 안에서,

평화와 해방에 대한 모든 기대를 마음에 품고,

우리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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