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나의 음악노트 / 바로크 / 비발디

1. 비발디 Antonio Lucio Vivaldi(1678-1741)

by 조세피나

안토니오 비발디는 가톨릭 사제였다.

그는 사제로서 죽었다.

비발디는 신부이면서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인기 있는 작곡가로서 활발하게 음악활동을 했기에 오해와 음해를 수없이 받았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사제의 직함을 지켰다.

“사제에게 성공이란 사제로 죽는 것이다.”


안토니오 비발디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 중에서

바흐, 헨델과 함께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작곡가다.

(1685년생 동갑내기인 바흐와 헨델보다 비발디가 7살 연상이었다.)


*바로크(Baroque)는 17~18세기 유럽의 미술, 건축, 음악 등을 포괄하는 예술 양식을 뜻한다.

포르투갈어로 '이지러진 진주'라는 뜻이다.


비발디 하면 흔히 ‘사계’(Le quattro stagioni / The Four Seasons)를 떠올릴 것이다.

클래식 음악에 입문할 때 가장 많이 듣는 곡도, 추천받는 곡도 여전히 비발디의 사계다.


필자도 오래전에 이 무지치(I Musici : 이탈리아어로 ‘음악가들’이라는 뜻의 이탈리아 실내악단)의 사계 CD를 사고서 흐뭇해했던 기억이 있다.


*사계 : 비발디가 1725년에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표제 음악의 표본이며, 클래식 음악에 입문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연주곡.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정취를 표현한 작품으로 시대를 아울러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으로 후대에서도 사랑받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고,

사계를 구성하는 네 개의 협주곡은 각 계절을 잘 묘사하고 있다.

사계에는 작가를 알 수 없는 시(소네트)가 계절마다 붙어 있어 곡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 소네트는 비발디 자신이 썼다는 설도 있다.)


1678년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비발디는 서양 고전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시도한 인물로서,

사계를 비롯해서 라 폴리아 변주곡, 오라토리오 <유디트의 승리>, 오페라 <다리우스 왕의 대관>, 현악기와 통주저음을 위한 협주곡, 트리오 소나타, 신포니아, 바이올린 협주곡, 비올라 다 감바 협주곡, 바순 협주곡, 플루트 협주곡, 비올라 협주곡, 만돌린 협주곡, 첼로협주곡 등 기록상으로는 760여 곡에 이르는 다작을 남겼지만, <사계> 외에는 일반 대중에게 사랑받는 곡이 별로 없다.

그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으로 콘체르토 양식을 확립했고, 오페라, 종교 음악, 기악 협주곡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작품을 남겼다.

그의 음악은 후대에도 영향을 끼쳐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등에서도 비발디의 영향이 보인다고 한다.


음악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였으며 ‘붉은 머리의 사제’라고도 불린 가톨릭 사제이면서 음악가로서 살았던 그의 이력이 궁금하다.


그는 사제가 되기 위해서 15세에 신학교에 들어갔다.

비발디는 건강문제 때문에 신학교에 기숙하지 않고 집에서 통학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는데,

대신에 다른 사제 지망생들보다 오랫동안 수련을 받았다고 한다.

보통 6~7년 정도 걸리는 사제 양성 과정을 비발디는 10년 만에 마치고, 25살인 1703년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건강이 좋지 못해서 사제직을 수행하기가 어려웠다.

몸이 약하고 숨이 차서 미사를 올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사제직보다 음악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천식으로 인해 미사 중에도 기침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사제라면 미사를 집전하고, 사목을 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건강과 체력이 많이 부족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사제이면서 작곡과 음악교육에 몰두했는데, 나중에는 본연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았고, 교황청은 아예 비발디의 성사 집행권을 박탈해 버리고 미사를 집전하지 못하게 했다.

이 조치는 처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음악가로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 놓고 하라’고 풀어준 것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는 정직을 받았지만 면직을 받지는 않았다.)

서품을 받아 사제가 되었음에도 보통의 사제들처럼 생활을 못한다는 것이 개인에게는 고난이었겠지만,

대신에 그는 음악에 몰입해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고, 후대에까지 길이 기려지는 위대한 음악가로 남게 되었다.

유약한 몸으로 작곡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기도하고 신에게 매달린 덕이 아니었을까?


그는 작곡할 때를 제외하고는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미사를 게을리해서 ‘신앙심이 없는 사제’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사제직을 망각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작곡과 연주는 나름의 ‘신께 바치는 봉헌제물’이었을 것이다.

음악가로서 맘껏 활동하고 성공도 거머쥐었던 비발디였지만, 말년에는 자신의 오페라 공연과 관계된 투자 실패로 궁핍과 시련을 겪었다.

어려움 중에 있던 비발디는 은인이었던 카를 6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카를 6세가 사망하는 바람에 그의 위치도 함께 불안정해졌다.

실의에 빠진 비발디는 지병이었던 천식이 악화되어서 빈에서 객사한다. 향년 63세였다.

오스트리아 빈의 슈테판 대성당에서 그의 장례미사가 치러졌는데, 이때 슈테판 대성당의 소년합창단 단원이었던 요제프 하이든이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전해진다.


97년에 개봉한 스콧 힉스 감독의 영화 샤인(Shine)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전설적인 무대를 남겼던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의 이야기이다.

필자는 현란하고 초기술적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보다, 이 영화에 나온 비발디의 모테트(Motet- 중세 유럽에서 기원한 다성음악 양식으로 가사를 가진 다성 음악. 중세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했던 성악곡의 하나)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Nulla in mundo pax sincera RV630)가 더 기억에 남는다.


- 이 곡은 작자미상의 라틴어 종교시에 음악을 붙인 것으로 주제곡으로 쓰인 첫곡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전체 3곡으로 구성된 소프라노를 위한 모테트이다. -


비발디의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가 흐르는 가운데 트램펄린 위를 아이처럼 날아오르는 헬프갓의 모습은 더없이 자유로워 보였고, 따뜻한 햇살(Shine) 같았다.

이 장면은 영화 샤인을 대표하는 장면이 되었다.

너무나 어려워 '악마의 곡'이라고 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은 그의 재능을 최대한 끌어올렸지만, 그에게 심한 압박감과 고통을 가져왔다.

반면에 비발디의 이 노래는 아픈 그에게 치유와 자유를 준 것 같았다.


세상에 참 평화가 있을까?


2022년 2월 24일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침공한 후 25년 10월인 현재까지도 잔악한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치명적인 전쟁이 되었다.

러시아 측에서는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하는 이 침략전쟁으로 수십만 명의 군인 사상자와 수만 명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부차와 마리우폴에서의 학살, 민간인 시설에 대한 폭격, 겨울철 에너지 그리드 공격은 실로 끔찍하고 인간성의 끝을 보여준다.

한참 배우고 커나갈 나이에 전쟁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우크라이나의 아이들, 공습경보가 일상이 된 불안한 삶, 폭격을 피해 방공호에서 숨 죽이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러시아의 마리우폴의 산부인과 병원 폭격으로. 만삭의 임산부가 큰 부상을 입고는 “차라리 죽여달라!”라고 고통에 울부짖는 모습이었다..

(누군가 목숨을 걸고 찍은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었다.)

지금도 참으로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전쟁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모두의 고통이 되는 것이다.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국가가 연결되어 있어서 그 피해는 지구 전체에 미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농업시설 공격으로 인해서 곡물가가 올랐고, 인플레가 발생했고,

환경이 파괴되고,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은 전쟁의 위협에 두려움을 느끼고, 물가 상승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이 더 비참해졌다.


23년 10월 7일 유대 안식일 새벽에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많은 사람을 죽이고 인질로 잡아갔다.

이스라엘은 곧바로 보복폭격과 가자지구 전면 봉쇄에 나서면서 ‘전쟁’을 선포했다.

세계가 2개의 큰 전쟁을 겪다가 최근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겨우 휴전이 되었지만, 여전히 긴장감이 돌고 있다.


가자지구는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다..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까?

영양실조로 죽어간 어린이들과 굶주림의 고통에 내몰린 사람들, 주거지를 잃은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가난, 절망적인 현실은 너무나 큰 슬픔이다..


우리나라도 75년 전인 1950년에 6.25 전쟁으로 많은 국민들이 죽고 나라가 초토화되는 침략전쟁을 겪었다.

왜 인류는 전쟁을 거듭하는 걸까?

인간이 잔혹한 이유는 인간이 ‘동족을 살해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쟁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세상에는 참 평화 없어라.’

신을 섬기던 사제였던 비발디도 간절히 평화를 원할 것이다.

“세상에 평화가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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