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겠습니다"
서른이 되던 즈음 겨울, 나는 회사에 퇴사를 통보했다. 그동안 내색은 하지 않았기에 동료들도 적지 않게 당황했던 걸로 기억한다. 다들 못내 아쉬운 눈치였지만, 나는 결정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사실 예정된 퇴사이나 조금..., 아니 빨리 앞당겨졌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어를 공부하고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면서 스스로 내린 결정은 3년 내에 대만 대학원에 도전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빠의 퇴직기념으로 출발했던 대만 여행으로, 더 이상 회사에 출근할 마음이 사라졌다.
직장 생활을 하는 모두가 그렇지만, 업무가 적성에 맞진 않았다. 늘 해왔던 업무를 반복적으로 처리하는 기계적인 일상, 매일 퇴근 시간만 바라보는 내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이 1년, 2년 아니 5년이 지나도 그대로 일 것 같았다.
그래도 한 때는 '요즘 세상에 자기 적성대로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다 그렇게 현실에 순응하면서 산다. 그래도 밥벌이는 하고 사니까 다행이 아닐까?'라고 스스로를 다그쳤지만 어느새 마음의 관절이 나가 버린 것 같았다. 나를 가장 가까이서 봤던 동료가 내가 날이 갈수록 점점 '시들어'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만 여행에서는 달랐다. 오랜만에 해외여행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동안 공부했던 중국어를 써먹을 수 있음에 설렜었나? 무엇인지 모르겠다만 여행 내내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좀비처럼 멍하니 사무실 천장만 바라보는 게 아닌, 오늘은 어디를 갈지 그리고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소소한 과정 하나하나가 너무 즐거웠다.
대만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음을 알게 됐다. 그리곤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나는 일단 대만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했다.수중에 많은 돈이 있지 않기에 생활비를 벌면서 중국어 공부를 하고 내년 대학원 입학을 도전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퇴사도 했으니 지금 당장 떠나면 좋을 거 같지만 아직 원룸 계약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이 들어가 반년 뒤인 8월을 출국일로 잡았다.
본가로 내려가지 전 약 6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다.그 시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정도로 돈이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대만에 떠날 때 땡전 한 푼도 없을 예정이라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다. 약 4년 만에 아르바이트 애플리케이션을 열어봤다. 기대와는 달리 단기 아르바이트는 구하기가 어려웠다. 통장의 잔고가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때 즈음 청소 아르바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원룸에서 멀지 않은 거리이고 단기로도 지원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지원하고 하루 뒤에 연락이 왔던 것 같다. 담당자는 이력서를 봤는데 그동안 사무직 업무를 담당한 것 같은데 '청소' 하는 걸 알고 지원한 게 맞는지 체크했다. 나는 어떤 업무인지 알고 지원했고 충분히 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후 합격 통보는 없었다.
그날이 있고 나서 2~3일이 지났을 무렵, 해당 담당자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고용했던 아르바이트생이사정상 일을 못하게 됐는데 출근이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정황상 아르바이트생이 도망을 친 거 같았다. 그래서 잠시 고민했지만, 나도 별다른 대안이 없기에 출근한다고 했다.
새벽 일찍 청소할 건물에 도착하니 업무를 교육시켜주실 선임이 도착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다른 지점에서 일하시는 분인데 교육을 하기 위해서 어제오늘만 이쪽에서 근무하신다고 했던 것 같다. 선임분은 친척누나와 나잇대가 비슷한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동생을 대하듯 업무를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신기하게 청소 알바를 시작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과외 아르바이트와 주말 아르바이트도 잡히게 되었다.나는 그렇게 평일 새벽~오전은 사무실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 1~2회 평일 저녁에는 과외, 주말은 박물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생활비가 안정되자 중국어 공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2.5잡을 하고 남는 시간에 중국어를 공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조금 힘들었지만, 내가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매일매일 너무 행복했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게 되었다. 주말 박물관 전시 아르바이트는 특별전이 끝나면서 자연스럽게 종결되었다. 과외도 예정된 진도를 끝내게 됐고, 청소 아르바이트는 담당자에게 근무가 가능한 일자를 알려주었고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마쳤다.
원룸 방의 짐을 정리해서 방을 빼고 본가로 내려갔다. 그렇게 한 달을 쉬면서 숨을 골랐고 모처럼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사실 퇴사를 결정하고 말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주변에는 결혼을 했거나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다들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았는데, 나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해외에 나간다는 맞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계속 되물었다.
하지만 가끔 그때 퇴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러면 지난 1년 반 동안 겪은 소중한 경험, 추억들이 없었을 것이고, 지금 대만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나도 없었을 것이다.
인생의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 나는 그동안 많은 일들을 결정했고 선택했다. 그리고 늘 후회했다. 하지만 대만 유학을 결정한 이 선택만큼은 절대 후회 하지 않는다.
그렇게 여전히 더운 8월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대만에 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