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일기장
그런데 여보, '세신'은 몇 편까지 나오는 거야?
와이프가 물었다.
별로 없어. 이제 금방 바디샴푸하고 나가면 돼.
이렇다 할 자세가 별로 없어...
최대한 개방적인 자세
다시 처음의 자세로 돌아가 보자. 나는 벌거벗은 채 물방울이 굵게 맺혀 매달려 있는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다. 숨겨지거나 겹쳐진 곳이 있으면 안 되므로, 최대한 개방적인 자세를 취한다. 이제 세신사는 아플만큼 강하지도 간지러울 만큼 약하지도 않은 절묘한 압력으로 '이태리 타월'로 몸의 전면부를 훑는다. 존재 자체를 숨기고 있던 때는, 매복했다가 신호에 따라 우르르 일어나는 것처럼, 타월이 지나간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 때 나는 오늘의 세신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낼 것인지 알 수 있다. 누워서 지그시 눈을 감고, 몸의 전면부와 그 부속 측면 일부를 능숙하게 훑는 타월의 타격감을 즐기고 있노라면, 옆으로 떨어지는 때의 대략적인 양을 추측할 수 있다. 이 첫 번째 자세에서는, 너무 창피하게 국수처럼 뽑아지지는 말고, 성실하게 땀흘리며 살았음을 증명하는, 그러면서도 당연히 시원한 정도의 때가 나와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세신사의 책임인가 나의 책임인가?
이 자세에서, 준비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판가름난다. 세신사는 거들 뿐, 때를 제대로 불리는 것은 닦이는 자의 몫이다. 하지만 몇 분 정도를 불리고 와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도, 정해주지도 않는다. 세신 구역 입구에 [30분 이상 불리지 않으면 세신 서비스가 불가합니다] 같은 것은 없다는 얘기다. 나의 세신 히스토리 상에서 몇 회 전, 유독 때가 나오지 않아 불안 & 불만스러워하는 나에게 어느 인사이트 있는 세신사는 말했다. "그냥... 시원한 맛에 미는 거죠." 그리고 덧붙이기를, "바디로션 쓰시죠? 바디로션 쓰면 때 잘 안 밀려요." 그러니 안내문에는 이것도 추가해야 한다. [평소 바디로션을 쓰시는 분은 시원한 맛만 보장합니다]
이를테면 세차기를 통과해 나오는데, 아직 보닛에 새똥이 남아 있다면 그걸 세차기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셈이랄까? 자동세차기는 그저 주어진 시간을 돌아가고, 세팅된 수압으로 내뿜어 줄 뿐, 차가 깨끗해지는지 마는지는 책임지지 않으니. 세신을 한다는 것도 그와 같다면, 인간세신기를 통과해 나왔을 때, 때가 남아 있거나 혹은 '거의'라고 할 만큼 때가 나오지 않거나 하는 것은 세신사의 책임으로 돌리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다. 특히나 "때를 잘 불리셨어야죠"라거나 "요즘 바디로션 쓰시죠? 그러면 때 안 밀려요"라는 말을 듣게 되면, 얼른 자기최면을 걸어야 한다. "때가 무슨 상관이겠어. 나는 그저 시원한 맛을 원했을 뿐이야. 좋은 세신이었다."
좋은 세신이었다
세신사의 손길이 복부를 압박할 때,
나는 문득, 정신을 맑게 하면서 장기들의 상태와 기분을 살피게 된다. 1초 전까지 이전에 우주에 존재하지 않았던 형태와 질량을 가진 것들이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신비로운 경험에 약간의 황홀감을 느꼈다면, 불쑥 내과적 건강에 대한 염려가 떠오르는 것이다. 세신사가 복부를 밀 때 내부 장기를 자극하는데, 그게 약간 의사의 촉진과 닮았다. 의사 말고는 내 스스로조차 복부를 눌러보며 건강을 점검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세신사의 손길에서, 갑자기 그럴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유방암은 남편이 '만져서' 점검해줘야 한다는 것도 떠오른다. 다행스럽게도 복부는 딱딱한 부분 없이, 고통 없이, 세신사의 손길을 받아들여 주고 있었다. 세신이라는, 매우 실용적이고도 기계적인 일 속에 내 몸을 되돌아 볼 요소가 있다는 것은, 세신의 시간을 통해서 내가 매우 스펙트럼이 넓은 생각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파트 원의 마무리로서 세신사가 따뜻한 물을 내 몸에 끼얹을 때, 나는 초여름의 따뜻한 햇살을 받을 때처럼 차분한 마음이 되면서, 분명 나를 때렸으나 나를 감싸안는, 적대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물의 질감을 즐기게 된다. 지저분하던 베드는 다시 깨끗해지고, 흥건하게 남은 물들도 여전히 따뜻함을 간직한 호의적인 느낌으로 찰랑거리고 있다.
소시민적인 숙면의 자세
좌우를 번갈아가며 옆으로 눕는 자세가 그 다음이다. 차려자세를 하고는 균형을 유지할 수 없으니, 팔과 다리를 앞으로 좀 구부린 상태가 된다. '태아자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약간 웅크린 채 손을 모으고, 고개는 자연스럽게 바닥쪽으로 떨구고 있으면, 다소간 죄를 지었거나 체념했거나, 토라진 느낌이 든다. 한편으로는 인생의 고단함을 몸으로 표현하며, 절망하지는 않지만 피로하기는 한 인생, 피로하지만 지금 당장은 꽤 편해서 푹 잘 수 있을 것 같은 찰라를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옆구리의 표면적은 작으니,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엎드려 세신 받기
마지막 자세는 엎드리는 것. 드디어 나는 조금은 덜 부끄러운 자세가 된다. 나의 급소는 엄폐되었다. 베드에 난 구멍에 얼굴을 박고, 여전히 손등이 보이도록 해야 하는지 손바닥이 보여야 하는지 간을 보며 엎드린다. 이 자세는 세신사에게도 훨씬 마음 편할 것이다. 급소에 목격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제야 가장 탄력적이고 굴곡이 적은, 때밀기 딱 좋은 신체부위를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보면 등이 판판한 건 모두에게 이득이다. 가족 간에 그렇게 하든 낯선 사람에게 부탁을 하건, "등을 밀어달라"고 하는 것은 다른 부위를 밀어달라고 하는 것보다 얼마나 마음이 편한가! 달려 있는 것도, 피부가 약한 부분도, 굴곡이 진 부분도 없는 곳이 마침 내 손이 닿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서비스
등과 엉덩이, 다리 뒤쪽의 때를 밀어주던 세신사는, 나처럼 발 뒤꿈치에 각질이 견고하게 자리잡은 발을 보면, 면도기 같은 것을 들고 와서 각질을 벗겨준다. 감자를 깎는 것과 똑같은 동작인데, 그 때마다 나는 내 몸에서 가장 건조한 지대인 발 뒤꿈치가, 두세 달에 한 번 맞는 정화의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한다. 내 몸의 무게를 다 감당하면서, 등에 맨 백팩의 무게까지 감당하면서 그걸 견디려고 두꺼워진 뒤꿈치. 주저 없이 깎아 내는 세신사의 손동작을 통해서 1밀리미터쯤은 얇아지며 숨을 쉰다.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면도기 같은 그것이 얼마나 예리한지는 잘 모르겠다. 발 뒤꿈치와 복숭아뼈의 각질을 함부로 긁어 내다가 여러 번 피를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긴장되기도 하는 순간인데, 잘 불려 놓아서 그런지 날의 디자인이 잘 돼 있어서 그런지, 세신사의 전문성이 그 정도는 돼서 그런지, 늘 피보는 일이나 아픈 법 없이 잘 마무리되곤 했다.
세신사는 이제 어깨를 감질나게 주무르고는 머리에 샴푸를 바르고, 몸에는 샤워젤을 바르고 일을 마친다.
세신을 받은 자의 당당함
온몸에 거품을 묻히고, 열쇠를 받아들고 세신구역을 벗어난다.
이제 나는 어쩔 수 없고도 갑작스런 노출의 상황들, 예를 들어서 심전도를 받는다든가 처음 간 검도장에서 도복 입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탈의실로 함께 온 사범이 "팬티까지 다 벗으세요"라든가 급히 따뜻한 나라로 떠나 헐벗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 두렵지 않게 된다. [나의 아저씨]에서 송새벽이 "나는 팬티 만큼은 꼭 좋은 걸 입어. 좋은 팬티를 입지 않은 날은 죽을 수 없어. 사고를 당해서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팬티가 더럽거나 낡았으면 죽으면서도 쪽팔리잖아"는 뜻의 대사를 한 것과 비슷한 감정인 것이다.
나는 깨끗해져서 다시 세상 안으로 던져졌고, 그 깨끗함을 이룬 것은 팬티 혹은 반바지를 입고 열심히 나를 벗겨 준 세신사의 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