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동안 100킬로미터를 걸었었지

J&C의 2025 산티아고 프랑스길 순례일기 / 여담

by DK

12월의 100km 행군


단기사병(방위)이어서 군생활을 '빡세게'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딱 한 가지. '고생했다 싶은' 게 있었는데 100킬로미터 행군이었다.

무게가 꽤 나갔던 구식 모포까지 매단 완전군장을 하고,

K2 소총을 들고, 군생활 내내 몇 번 신어보지도 못한 딱딱한 군화를 신고 24시간을 걸었다.

사복을 입고 근무하는 보직이다보니

군복도, 군장(배낭)도, 소총도, 군화도

'내것'이 주는 익숙함이나 오래 써서 서로 닳아 얻어지는 편안함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급하게 남의 것 얻어 입은 듯한 불편함까지 한껏 더해서 시작한 행군이었다.


아침 8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8시까지 꼬박 24시간을 행군하는 거였고, 12월이었다.

식사 시간 두 시간을 빼면 22시간이니 평균 시속은 4.54킬로미터.

50분을 걸으면 10분을 쉬었다.

군장을 벗거나 소총을 손에서 놓을 수 없으니 걷던 자세 그대로,

군장을 침대 삼아 길가에 벌러덩 누웠다.

10분은 충분히 잠에 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10분을 한데서 자고 일어나면 얼굴에 살짝 서리가 꼈다.

눈썹에도 서리가 끼어 할아버지처럼 하얘졌다.

짧은 단잠을 자다가 조교들의 고함이 들리면 언제 잤냐는 듯이 금새 말똥하게 눈을 떴다.

마른 세수를 해서 서리를 떨어 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물집이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행군 일정이 나오면서 선배들로부터 갖은 조언을 들었다.

생리대를 어깨에 대면 피부가 까지는 일은 피할 수 없다는 식의.

특히 발에 물집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노하우를 많이 들었는데,

여성 스타킹을 신고 양말을 신으라거나, 거기에 비누를 칠하라거나,

양말은 꼭 두 겹을 신으라거나,

쉴 때 피곤하더라도 꼭 군화를 벗고 발을 말려야 물집이 안생긴다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물집이 생겼을 때의 대처법도 몇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그냥 두라'에서부터 '

바늘에 무명실을 꿰어 갖고 다니다가 물집이 생기면 통과시켜 물을 빼라',

'의무병한테 가면 그냥 부푼 피부를 잘라내고

벌겋게 드러난 속살에 약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준다.

그 방법이 제일 빠르게 낫긴 한다'까지 다양했다.

각자 마음에 꽂히는대로 따라 하긴 했지만 거의 모든 인원들은 물집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행군할 때 물집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는 결론에는 대부분이 동의했다.


물집이 생기고 터지고를 반복하면서

끈끈한 체액 때문에 양말이 발에 붙어 버린 병사 하나가,

양말을 벗으려다가 발바닥 전체가 홀라당 벗겨져 실려갔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행군할 때 나는 사고 중에 제일 가벼운 것이었다.

행군에서 부대장이 제일 걱정하고,

실제로 많이 일어나는 사고는 졸면서 걷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거나

우수관으로 떨어져 골절을 당하는 것이 하나,

그리고 행렬을 이탈하거나 부주의한 운전자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이 하나였다.

이런 사고들은 사망사고로 커질 수도 있어서,

조교들은 24시간 내내 앞사람 발 뒤꿈치를 놓치지 말고 뒤쳐지지 말고 따라가라고 주문했다.

다행히 그날 우리 부대의 행군에서는 발바닥 박피 병사의 사고가 제일 큰 것이었다.




100킬로미터 행군은 그 얼마 후에 없어졌다고 한다.

당시에도, 현역들로 구성된 다른 부대들조차 40킬로미터 행군만 했었다.

미군들은 한술 더 떠서, 도보 행군 자체가 '패전'을 의미하는 것이며 2차 대전 때 얘기라서,

20킬로미터 (공격용) 행군만 있다고 했다.

특공대였던 1년 후배가 400킬로미터 행군을 했었고,

그 훈련은 아직 남아있는 듯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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