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새로운 형식이 탄탄한 연출력과 만났을 때
저는 <서치>가 보통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영화라는 예술이 지닌 형식과 가능성을 확장시킨 유산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더 이상의 새로움은 없어 보이던 영화의 형식을 확장시켰다는 것입니다. 코미디니, 스릴러니, 드라마니 하는 장르적 형식을 넘어서 <서치>는 영화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변하지 않은 것, 모두가 너무나 당연히 여겨왔던 것, 즉 장면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영화가 카메라를 통해 인물이란 피사체를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해왔다면, <서치>는 디바이스(컴퓨터, CCTV, 휴대폰 등)의 화면이라는 프레임를 통해 피사체를 '간접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함으로써 조명이나 카메라 앵글이 아닌 프레임이 관객의 경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혀 새로운 형식을 발견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피사체 촬영본이라고 해도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지는 프레임에 쓰이는 디바이스 종류, 팝업 창의 크기, 영상의 화질에 변화를 주는 것으로 관객에게 전혀 다른 경험을 주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 뿐 만이 아닙니다. 여러 팝업창이 중첩될 때, 그것이 텍스트와 함께 표현될 때 관객에게 어떤 경험을 전달해주는지, 각각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린 아직 모릅니다. 그 모든 것이 미답의 영역, 새로운 가능성입니다.
둘째, 영화에서 인물이 자신의 생각과 정서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전통적 방식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인물이 자신의 생각과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은 1) 침묵과 2) 몸짓(표정, 손짓 포함), 3) 대사. 이 세 가지가 전부였습니다(물론 카메라의 앵글, 배경 음악/효과, 조명 등으로도 다채롭게 전달이 가능하지만 이건 인물이 아닌 장치의 영역이니 논의에서 제외합시다). 전통적으로 그래왔죠. 너무나 당연했고, 이것에 새로울 것 따윈 없어 보였습니다. 이러한 인물의 표현 방식을 언어라고 한다면, <서치>를 통해 또 하나의 언어가 추가된 것입니다. 바로 텍스트. 기존 영화들에도 이런 장면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서치>처럼 완벽하고 적극적으로 서사 진행을 추동시킨 것은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키보드 입력 씬이 빠진 <서치>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때로 침묵이 100마디 말보다 강력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입력된 텍스트가 전송되기 전에 다시 지워지는 행위, 아무런 타이핑없이 다만 깜빡이기만하는 커서가 영화에서 이토록 강한 생각과 정서의 전달 방식이 될 지 <서치> 이전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야말로 <서치>가 이룬 놀라운 성취이자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두 가지 외형적 측면 때문에 저는 <서치>가 영화사적 측면에서 굉장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서치>를 통해 영화라는 예술이 또 하나의 눈과 언어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설레발일 수 있습니다(필패?). <서치>가 진정 영화사적 의미를 지니려면 이후로도 계속 이런 형식의 영화들이 제작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일말의 가능성 만을 제기한 채 사라진 '신선한 아이디어의 영화'로 전락할 뿐이죠. <하드코어 헨리>처럼.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금 우리는 모바일과 SNS라는 거대한 파도가 인간 삶의 방식을 근본부터 휩쓸고 지나가고 있는 변곡점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변화에 저항하는 이들과 변화를 수용하는 이들,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이들 사이에 무수히 많은 층위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 층위 내부에서 그리고 경계면에서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마찰과 충돌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마찰과 충돌은 가족과 친구의 관계에서부터 나라는 존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믿어왔던 많은 것들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최근 SNS에 대해 다루는 영화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모두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입니다. 그 중 <서치>는 SNS로 인해 변화하는 관계와 존재에 대한 물음을 그 서사와 완전히 부합하는 전혀 새로운 영화 형식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한 첫 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이와 똑같은 형식 혹은 변형을 준 유사한 형식의 영화들이 또 제작되지 않을까요.
어쨌건 이 영화의 형식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이것에 대해 아직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으니까요.
영화 <서치>에 대해 간단히 몇 가지만 더 말해보자면, 형식을 차치하고 무엇보다 감독의 연출과 시나리오가 정말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이 둘이 워낙 탄탄하기 때문에 <서치>는 지금과 같은 새로운 형식이 아니어도 충분히 재밌는 영화가 됐을 것입니다(물론 이만큼의 긴장과 정서적 경험을 주진 못 했겠지만 적어도 시간이 아깝지는 않을 영화는 충분히 됐을 겁니다). 감독의 연출에 대해 언급해보자면, 제가 언제 감독 연출 능력을 느꼈냐, 영화 시작한 지 딱 5~10분 정도 되는 시점, 즉 엄마가 죽은 시점에서 느껴졌습니다. 엄마가 죽었는데 제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아, 이 얼마 안되는 시간에 몇 컷의 이미지, 커서의 움직임, 운영프로그램(!)의 변화, 짧은 몇 개의 동영상만으로 나는 이렇게 인물과 극에 공감하고 있었구나. 기껏 5~10분 밖에 안 지났을 뿐인데 관객을 이렇게 인물에 몰입시키고 공감하게 만드는 건 정말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연출할 수 있는 감독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잠깐만 시나리오도 잠깐 언급하자면 사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수 많은 이야기 레이어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부성애와 가족애, 여러 번의 반전, SNS의 폐해, 유머 등의 레이어가 중첩되어 아주 밀도있는 시나리오를 구성하죠. 그 무엇 하나 과함이 없습니다. 특히 SNS의 폐해에 대해 건드리는 방식이 상당히 세련됐습니다. 이 글처럼 구구절절하지 않습니다. 조횟수에 목숨거는 친구, 피상적인 SNS 친구들, 가짜 뉴스 등등 SNS의 폐해를 드러내는 여러 단면들을 단 몇 컷만으로 임팩트있게 전달합니다. 이는 시나리오도 시나리오지만 또한 감독의 연출력이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죠. 감독의 연출, 밀도있는 시나리오, 새로운 언어(형식). 진정 이 영화는 세 요소의 완벽한 화학적 결합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선 하고 싶은 이야기의 반도 못 했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제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고, 그만큼 좋은 영화였습니다. 매년 100편이 넘는 그 해 본 영화 중 최고의 영화를 나름 꼽아봅니다. 서치는 여러 면에서 올해 최고의 영화 후보에 들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