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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an 09. 2019

한 솔로:스타워즈 스토리(2018)

본격 스타워즈 덕후를 위한 서비스


우선 오리지널 트릴로지와 다르게 좀 더 미시적 시선에서 스타워즈 세계의 이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스핀오프 시리즈들을 좋아합니다. 누군가는 제다이도, 라이트 세이버도 안 나오는 스타워즈가 스타워즈냐고 반문하지만 전 오히려 그 이유 때문에 스핀오프 시리즈가 제다이 중심의 거대 영웅 서사를 벗어나 좀 더 다채로운 이면들을 보여줌으로써 스타워즈 세계관을 확장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이 결정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테고 용단을 내린 디즈니에 박수를 보냅니다.



 스타워즈의 오랜 팬으로서 영화 <한 솔로>를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재미있었습니다. 아주 재밌고 훌륭한 팝콘 무비였습니다. 첫 시작부터 한이 제국군 소속으로 싸우고 열차를 탈취하고 케셀 런을 통과하는 씬까지 이 영화는 쉼 없이 관객을 빨아들입니다. 한 솔로는 스타워즈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특히 제가 팬이란 점을 차치하고도 열차 탈취와 케셀 런, 이 두 시퀀스는 근래에 본 액션 시퀀스 중 가장 큰 쫄깃함을 선사한 시퀀스 중 하나였습니다. 두 시퀀스가 시작됨과 함께 제 괄약근은 의지와 상관없이 바짝 쪼여졌죠. 아니, 전 제 그 긴장을 의식 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시퀀스가 끝나고 나서야 그곳 근육이 풀어짐을 느끼며 "아, 내가 쫄리고 있었구나" 의식하게 됐더랬죠.



 '케셀 런' 시퀀스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케셀 런을 12파섹으로 통과했다는 대사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I have a bad feeling about this)"와 더불어 가장 잘 알려진 한 솔로의 시그니처 대사인 만큼 스타워즈 팬이라면 케셀 런 주파는 누구나 궁금해했던 사건입니다. <깨어난 포스>에서 "당신이 정말 파셀 런을 14파섹에 주파했냐는 레이의 질문에 한은 14파섹이 아니라 12파섹이라고 정확히 집어주죠. 그만큼 파셀 런을 12파섹에 주파했다는 것은 한의 비행술에 대한 자신감과 밀레니엄 팔콘의 스피드를 단 한 문장에 압축해놓은 아주 의미가 큰 문장입니다(스타워즈 팬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 없는 말이긴 하지만요;).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그 사건을 드디어 이 영화를 통해 만났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스타워즈 팬들에게 이 영화는 아주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황홀한 미장센은 예전 <매드 맥스>에서 화면을 가득 메운 모래 폭풍 속을 질주하는 시퀀스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압도적이었죠. 아주 짧은 씬이었지만 모든 소리를 배제하고 칠흑 같은 암흑 속 화면 하단에 아주 작게 밀레니엄 팔콘의 엔진 불꽃(?)만 보여준 씬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좀 다르긴 하지만 <라스트 제다이>에서 홀도 제독이 하이퍼 드라이브로 수프리머시(맞나요?)를 찢는 씬이 생각났습니다. 그 강렬한 미장센도 침묵 속에서 진행됐었죠(설정을 떠나서 그 장면은 미장센 하나만을 따지면 모든 스타워즈 시리즈를 통틀어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생각해보면 <라스트 제다이>는 훌륭한 미장센이 가득한 영화였어요). 마치 매드 맥스에서 가솔린을 입으로 뿜는 것처럼 연료를 주입해 밀레니엄 팔콘이 부스터를 쓰고 하이퍼 드라이버 점프로 사라지는 시퀀스의 끝은 정말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습니다(사실 하이퍼 드라이브로 기체가 사라지는 씬은 언제 봐도 짜릿함을 주지 않습니까ㅠ).



 그리고 좋았던 점은 도널드 글로버가 꽤 훌륭하게 랜도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 여기서 잠깐, 영화의 제일 마지막 한이 밀레니엄 팔콘을 되찾으러 랜도를 찾아갈 때 기억하나요? 그때 한이 랜도를 겁박하다가 겁에 질린 랜도를 아주 반갑게 껴안죠. 오랜 팬이라면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바로 <에피소드 5>에서 한과 랜도가 만나는 장면에서 서로 입장만 바뀌었었죠. 랜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한이 일행을 끌고 랜도가 있는 행성으로 갔을 때, 둘이 조우하는 장면에서 랜도가 한을 무시하는 척하다가 아주 반갑게 한을 끌어안죠.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바로 츄바카입니다. 츄바카는 스타워즈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중 하나입니다. 근데 <한 솔로>에서 츄이의 귀여움은 정말 빠지지 않을 수 없죠. 그리고 한과 츄이의 케미, 둘이 투닥거리는 씬은 볼 때마다 잔잔하고 흐뭇한 웃음을 짓게 해 준 '소소하지만 행복'한 씬들이었습니다.



 물론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 이건 철저히 제 개인적인 의견인데 L3의 캐릭터 설정이 참 뜬금이 없었습니다. 억압에서 약자를 구원하려는 의도와 행동이 이야기 전반과 붙지를 않는 느낌. '여자' 로봇이 반란을 일으켜 노예를 해방시킨다는 행동 자체가 아직은 관객에게 낯선 것입니다. PC를 표방하는 디즈니의 의도가 다분히 드러나는 설정인데, 그것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행동을 관객에게 납득시키려면 더 L3 캐릭터를 구축했어야 합니다. 그녀의 동기에 자연스럽게 수긍이 되도록 말이죠. 하지만 그러질 못했습니다. 분명 L3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조연 중 하나인데 캐릭터 구축이 잘 안 됐어요. 안타까운 부분이긴 하지만 사실 이 영화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키라, 토비아스 베킷, 랜도 칼리시안, 드라이덴 보스, 츄바카까지. 그들은 모두 이야기의 큰 축을 담당합니다. 인물이 많은 만큼 이야기는 그들 모두에게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L3까지 돌아갈 지분이 너무 적었어요. 그렇다고 한다면 L3 캐릭터의 어깨에 많은 짐을 맡겨선 안 됐습니다. 너무 욕심을 많이 부렸어요. L3는 그녀 자체가 밀레니엄 팔콘의 운영체제에 녹아든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데 말이죠. 억지스러운 노예해방보다는 차라리 <로그 원> 속 K-2SO처럼 일행을 구하다 전사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고 극적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케셀 런 시퀀스 이후부턴 좀 늘어지는 감이 있었습니다. 말이 길어지고 계략을 꾸미고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그 일련의 사건들, 시나리오를 더 간명하게 쳐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베킷과 보스의 캐릭터를 좀 더 구축하려는 것, 결정적 사건의 결말을 그냥 허무하게 끝내지 않으려는 욕심(?)으로 보였지만 마지막에 소모되는 그들의 캐릭터 구축에 이야기를 쓰기보다는 차라리 키라에 대해서 혹은 키라와 다스 몰의 관계에 대해서 혹은 <로그 원>의 마지막 그 숨 막히는 다스 베이더 시퀀스처럼 다스 몰의 무서움(!)을 조금이라도 보여줌으로써 스타워즈를 잘 모르는 관객에게 다스 몰을 소개해주는 것이 어땠을까 싶더군요. 다스 몰을 모르는 스타워즈 팬은 없겠지만 스타워즈를 잘 모르는 관객은 그가 누군지 모르거든요.


어쨌건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정말 가볍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였음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가볍다'는 것.



만약 이 영화가 스타워즈가 아니었다면 여기서 그만입니다. 관객은 <트랜스포머>나 <익스펜더블>에 많은 걸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신나고 화끈하게 때려 부수면 됩니다.


문제는 <한 솔로>가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라는 것입니다. 스타워즈에는 (팬으로서) 이중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건 제 생각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골수 마니아의 강렬한 믿음(!)이기도 합니다. 방대하고 촘촘하게 짜인 세계관과 설정에 정확히 부합해야 하는 것은 기본일 뿐입니다. 필수 요소인 제다이와 라이트 세이버도 나와야 합니다. 단순한 가벼움을 넘어 클래식 스타워즈가 갖고 있는 그 무언가, 묵직한 무언가가 있길 원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들떴죠. 하지만 흥분이 가라앉고 무언가 앙금이 가라앉는 걸 느꼈습니다. 그 앙금이란 <한 솔로>가 가볍다는 것, 그리고 영화의 역사를 통틀어 손에 꼽히는 매력적인 캐릭터, '한 솔로'란 인물의 매력을 살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영화의 플롯은 단순한 몇 개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이어 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사건과 경험을 통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거나 그 캐릭터의 성장을 보여주는 등의 깊이가 없습니다. 감독이 바뀌고, 많은 장면을 재촬영했기 때문일까요? 한 솔로는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매력 있는 캐릭터입니다. 그런 만큼 이 영화는 그를 더 입체적이고 깊이 있는 인물로 다뤘어야 합니다. 이 영화에서 한 솔로는 단순하고 평면적입니다. 과연 재촬영 전의 원안은 무엇이었을까. 그 부분이 못내 아쉽습니다. 이중 잣대를 이야기한 것은 이 영화가 다름 아닌 스타워즈이기 때문입니다.


스타워즈는 무엇인가. 어떻게 즐겨야 하는가. 국민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수십 번 수백 번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며 스타워즈를 깊이 사랑했던 제가 처음으로 이 질문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니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부분 미국의 골수 마니아들은 <라스트 제다이>를 아예 부정합니다(한국도 그런 정서가 강하긴 하죠. 전 아니지만). 디즈니를 반대하며 디즈니 제작 스타워즈는 보이콧하겠다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스타워즈는 무엇인가.  



스타워즈는 상업 오락 영화였습니다. 무슨 엄청난 예술적 성취를 이뤄낸 영화가 아닙니다(영화사적인 성취는 거대하지만 말이죠). 물론 조지 루카스는 처음 스타워즈를 만들 때 일본 사무라이, 오리엔탈리즘, 도교, 그리스 신화, 나치의 제국주의까지 온갖 요소를 이 영화에 녹여냈습니다. 설정 논란을 차치하고 아마 마니아들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과거의 연장선으로서 스타워즈 세계관과 설정에 잘 부합하지만, 한편으로는 깊고 묵직한 뭔가가 있는 스타워즈 영화. 사실 지금 디즈니가 만들어내고 있는(혹은 찍어내고 있는) 일련의 스타워즈는 이전 스타워즈와 확실히 톤 앤 매너가 다릅니다. 가볍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 가벼움은 스타워즈를 한철 바짝 땡기고 사라지는, 그렇게 매년 소비되는 수많은 상업영화 중 하나란 느낌을 줍니다. 너무도 오랜 시간 동안 너무도 사랑했던 존재이기에, 평범하게 변질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건 모든 이들의 바람이겠죠.


하지만 어쩌면 스타워즈에 대해 재정의해야 할 시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타워즈를 어떻게 소비할지, 어떻게 받아들일지 말이죠. 많은 이들이 디즈니 제작을 반대하고 부정하고 있지만, 만약 디즈니가 없었다면 팬들이 몇 년간 목을 빼고 기다려온 스타워즈 후속 제작은 여전히 깜깜무소식일 것입니다. 스타워즈는 점점 소수의 마니아들이 그들끼리 설정에 대한 전문지식을 뽐내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 고인 물로 근근이 명맥만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일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합니다. 세상에 입에 맞는 떡은 없습니다.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죠. 디즈니는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며 돈을 투자해 루카스 필름을 인수했고 스타워즈 후속을 제작했습니다. 디즈니가 있기에 우린 그렇게 기다리던 새로운 스타워즈를 만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팬들이 스타워즈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저도 마니아와 똑같이 예전의 캐릭터가 그립고 묵직하고 철학적인 스타워즈가 더 좋습니다. 스타워즈만큼은 역사성을 지니고 정말 특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과거에 집착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2100년에 나올 스타워즈에도 여전히 밀레니엄 팔콘과 츄바카가 나와야 하는 것일까요?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린 과거와 이별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라스트 제다이>는 과거와의 이별을 선언한 영화였습니다. 정말 많은 이들을 등지게 할 수도 있는 용감한 결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오랫동안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 '스카이워커'를 떠나보내는 우아한 이별이자 아름다운 헌사였다고 생각합니다. <라스트 제다이> 보다 더 과거의 스타워즈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이별을 동시에 보내는 시나리오는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업 액션 영화에 아주 인색한 영화 평론가들 조차 상찬 한 이 영화를 스타워즈 마니아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며 <라스트 제다이>를 부정했습니다. 납득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모든 부정의 이유는 한 점으로 수렴된다고 생각합니다. '변화 거부'라는 점으로 말이죠. 생각해보면 이전의 스타워즈, 그 모든 세계관과 설정이 일종의 '도그마'가 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약간의 부정도, 변형도 용납이 안 되는 신성한 가치 말이죠. 하지만 과거에만 천착한 채 변화를 거부하고 그 밥에 그 나물을 고집하면 그건 스타워즈를 서서히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그럴 바엔 더 이상의 스타워즈는 없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입니다.



변화는 연연할 과거가 없는 사람이나 쉽게 수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니아들의 큰 분노는 그만큼 그들에게 잊고 싶지 않은 깊고 진한 과거가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젠 좀 더 마음을 느긋하게, 여유롭게,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무엇을 빼고 무엇을 남길 지, 끝까지 고수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변화할지를 고민하는 게 더 올바른 방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것이 무엇이든 스타워즈이기만 하다면, 개봉을 기다리는 설렘부터 컴컴하고 넓은 스크린을 통해 스타워즈 세계에 흠뻑 빠지는 즐거움까지 그 모든 과정이 마냥 행복하다고 <한 솔로>를 보며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새로운 스타워즈를 부정하며 보이콧했다면 일 년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이런 행복을 더 이상은 느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영화 티켓을 예매할 때부터 느껴지는 그 알 수 없는 긴장감, 설렘. 익숙한 팝콘 향을 맡으며 극장 직원에게 표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심장의 떨림. 상영관의 불이 모두 꺼지고 Galaxy far far away 자막이 올라갈 때의 그 전율. 그 모든 것이 스타워즈 팬이라면 일 년에 단 한 번만 느낄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하고 경험, 행복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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