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se Jan 08. 2019

관객을 몰입시키는 연출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터미네이터 2>의 한 부분을 이용해 사운드 편집 수업이 이뤄졌습니다.







액체 사이보그가 존 코너를 찾아 몰을 헤맨다. 미디움 샷(상체만 찍는)에 배경 소리(엠비언스)는 없다. 스코어는 차가운 기계음이 주를 이룬다. 배경과 인물을 분리하고 관객이 액체 사이보그에게서 거리를 두도록 만든다. 그리고 액체 사이보그의 차가운 캐릭터 성을 강조한다.
> 컷
아놀드 형님이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등장한다. 그에겐 약간의 엠비언스가 허락된다. 그의 등장에 나오는 스코어는 차가운 기계음이 아니다. 그를 영화 속에 좀 더 실존하는 인물이자 관객과 좀 더 가까운 인물로서 묘사하며 액체 사이보그와는 다른 존재로 차별시킨다.
> 컷
존 코너가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고 있다. 카메라는 롱 샷(전신을 찍는)에서 서서히 줌 인 들어간다. 주변엔 각종 오락 소리가 가득하다. 존 코너를 향해 들어가는 줌은 목적지가 뚜렷하다. 그 줌은 단순히 존 코너 캐릭터 전체가 아니라 존 코너의 눈과 귀를 향한다. 가까워지는 줌과 함께 존 코너가 몰입하고 있는 오락 소리가 점점 커진다. 관객은 그가 세상과 단절된 채 오직 오락에 몰입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는 동시에 존 코너란 캐릭터 자체에도 몰입된다.
> 컷
POV 샷(인물을 찍는 게 아니라 카메라가 인물의 눈이 되어 인물이 바라보는 곳을 찍는)으로 존 코너가 현재 하고 있는 오락의 화면을 보여준다. 오락 소리가 절정에 이른다. 관객이 존 코너와 하나가 되게 만든다. 그는 오락에 깊이 빠져있다.

> 컷

액체 사이보그는 오락실에 도착했다.

> 컷

존 코너는 여전히 오락에 몰두해있다. 관객은 존 코너가 두 기계인간이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전혀 모른다는 점을 머리로 알게 되는 것 뿐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존 코너에게 이입된 관객은 두 기계인간과 존 코너의 컷이 교차될 수록 불안감이 가중된다.



위의 예는 이 시퀀스에서도 극히 일부입니다. <터미네이터 2>의 모든 쇼트, 컷, 앵글, 프레임, 블라킹(배우의 움직임), 카메라 무브먼트, 음향 효과, 음악, 연기 등은 철저한 계산 하에 이뤄진 것입니다. 관객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로버트 패트릭(액체 사이보그 역)의 연기 만을 통해서 액체 사이보그의 캐릭터를 인지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영화에 있어서 연기는 해수면 위로 살짝 튀어나온 빙산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해수면 밑에는 아주아주 거대한 빙산이 존재하죠. 차가운 액체 사이보그의 등장 뒤에는 주변과 차단된 엠비언스(주변 소음), 차가운 기계음의 스코어, 관객과 인물 간 거리를 두게 만드는 컴포지션 등 매우 다양한 영화적 장치가 숨어있습니다. 그런 영화적 장치들은 영화의 룩 앤 필을 만들기도 하지만 관객의 심리를 유도합니다. 영화 수업 중 음향 시간에 유독 많이 들었던 말은 바로 '관객의 심리' 였습니다. 영화 관람에 있어 관객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들의 심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다름아닌 소리라고 말이죠. 음악 뿐 아니라 아주 낮게 깔리는 음향 효과, 배경 소리 조차 관객의 경험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화면은 소리를 만날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어떤 음악을 쓰냐에 따라 똑같은 장면도 전혀 다른 정서를 전달합니다. 관객이 팝콘을 집어먹는 것도 잊게 만드는 강력한 흡입력,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은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 많은 영화적 요소들이 결합된 결과물인 것이죠.


흔히 영화를 '시각 언어visual language'라고 부릅니다. 각각의 컴포지션과 앵글이 갖는 고유한 의미와 역할이 마치 문법처럼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한 인물을 로우 앵글로 잡으면 압도적으로 보이고, 하이 앵글로 잡으면 위축돼 보이는 것이 대표적이죠. 단어가 문법에 맞게 배열되어 문장을 이루고 그 문장이 읽는 이에게 의미로 전달되는 것처럼 영화도 문법담가따르는 조금, 아주법칙에 맞게 배열되어 관객에게 의미로서 전달됩니다(많은 경우 그 법칙을 무시하고 변칙적인 카메라 조작을 하긴 하지만).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아니 시작에 불과합니다. 똑같은 언어로 쓰여진 화면도 어떤 소리sound가 붙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거든요.


세상에 존재하는 그 많고 많은 영화 중 왜 유독 극소수의 영화만이 블랙홀과 같은 흡입력을 가졌을까요. 오랫동안 저는 그 이유의 대부분을 내러티브 구조, 플롯이라고 생각해왔었습니다. 스토리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사운드 편집 시간을 통해 그 이유를 정말 정말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넓은 태평양 속에 머리만 담궈 아주 조금,아주 아주 조금 확인한 느낌입니다. 너무 구식인 말이긴 하지만, 영화의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정말로.



매거진의 이전글 한 솔로:스타워즈 스토리(201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