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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an 08. 2019

아쿠아 맨(Aquaman, 2018)

볼거리가 이야기를 집어삼키면


영화 역사엔 뛰어난 기술력과 화려한 볼거리를 전면에 내세웠다가 망해버린 영화들이 셀 수 없이 많다. 화려한 볼거리는 처음에는 관객의 눈을 사로잡지만 그것도 잠시 뿐, 야속하게도 관객은 새로움과 화려함에 금세 익숙해진다. 관객의 관심을 계속 붙들기 위해선 더 새로운,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지만 러닝 타임 내내 끊임없는 자극을 줄 순 없는 노릇이다. 결국 영화는 스토리 텔링이다. 화려한 비주얼은 이야기를 진행하는 도구일 뿐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쿠아 맨>은 어디선가 본 듯한 화면와 이야기의 콜라주였다. 빛이 발광하는 바닷속 배경은 <아바타>를, 왕의 자리를 두고 벌이는 싸움은 <왕좌의 게임>, <블랙 팬더>를 그대로 따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의 잘못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잃고, 그 죄책감 때문에 마땅히 안아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플롯은 항상 반복되는 클리셰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 영화가 단순히 익숙한 조각들의 콜라주라고 해서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DC히어로 물에게 어떤 실험적인 영화적 미학을 기대하지도 않으니까. 다만 과정이야 어떻든, 여기저기서 모아 놓은 익숙한 이미지의 콜라주, 그 최종 결과물만을 놓고 보면 <아쿠아 맨>은 좋은 영화, 재밌는 영화가 아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우선 도식적이고 뻔한 이야기 전개. 이 영화는 마치 눈에 빤히 보이는 목적지를 정하고 그곳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느낌을 준다. 예상을 빗나감이 전혀 없다. 아쿠아 맨의 고뇌와 망설임은 이미 그가 아쿠아 맨이 되어 악당을 무찌를 것이란 것을 알기에 그저 영화적 장치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그저 기획에 따라 도식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기승전결이 깔끔하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악당이 두 명이 등장하는데, 생각해보면 아버지를 잃은 '블랙 만타'는 삭제해도 전혀 이야기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않는 불필요한 캐릭터였다. 오직 드는 생각은 애초 기획 단계에서 긴 러닝타임을 정하고 그 긴 러닝타임을 소비하기 위해 악당을 두 명 등장시킨다는 것 정도. 여기저기 온갖 불필요한 씬들과 매끄럽지 못한 이야기 전개 때문에 이 영화는 마치 3~4개 각기 다른 TV 드라마 에피소드 블럭 기계적으로 쌓은 인상을 준다. 그렇기에 기-승-전까지 긴장을 응축시켜 결말에서 폭발시키는 카타르시스가 없다. 쓸데없는 악당과 액션 씬들 때문에 이야기의 힘은 여기저기서 질질 새며 분산된다.

또한 <아쿠아 맨>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모두 평면적이다. 마치 종이 인형처럼 누구 하나 매력적인 캐릭터, 애착이 가는 캐릭터, 뒷 이야기가 더 알고 싶어지는 캐릭터, 의도가 궁금한 캐릭터, '나'를 발견하게 되는 캐릭터가 없다. 이 영화에서는 누구 하나 영화라는 세계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느껴지는 이가 없다. 모두가 계획한 대로 꼭두각시처럼 정해진 대로 움직이며 일 뿐이다.

이렇게 영화의 스토리텔링의 큰 축을 담당하는 스토리와 캐릭터 둘이 모두 정상이 아닌 상태. 그 상태에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드는 압도적 비주얼은 러닝타임 내내 이어진다.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아쿠아 맨>은 정신없이 비주얼을 토해 낸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비주얼은 다만 이야기 진행을 위한 도구일 뿐 그 목적 자체가 될 순 없기에 입이 떡벌어지게 만드는 그 엄청난 비주얼 향연은 이내 지루하고 불필요한 사치로 느껴진다.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점입가경으로 이어지는 비주얼을 마주하는 내 솔직한 심경은 급기야 '자원 낭비'에 이르렀다. 이 엄청난 그래픽 작업에 투여 됐을 천문학적 시간과 돈, 그리고 재능있는 인력들의 에너지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좀이 쑤시고 지루해 이리저리 뒤척이는 나는 자원의 존재론적 질문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아쿠아 맨>에 대해 또 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다름 아닌 프로덕션 디자인이다. 프로덕션 디자인이 이토록 크게 몰입을 방해하는 영화는 참으로 드문 것 같은데 (특히 <아쿠아 맨>처럼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대형 영화에서는 더욱)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들의 복장과 무기는 마치 예전 80년대 일본 전대물 속 악당 들을 보는 듯 해서 그들이 나타날 때 마다 심하게 몰입이 깨졌다. 주요 캐릭터들의 복장 역시 이상하게 연극 속 인물들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할까, 진짜 아틀라스 속 인물들의 모습이 아닌 지구인 배우가 가발과 의상을 입은 느낌. 그런 면에서 핍진성이 전체적으로 심하게 훼손됐다. 프로덕션 디자인 책임자의 무능이었을까 아니면 예산이 그래픽에 몰빵된 탓일까. 어쨌던 이런 대형 영화에서 B급의 냄새가 솔솔 나는 참 드는 경험이었다.

안 그래도 매년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비현실적이고 뜬구름 잡는 히어로 영화에 심하게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아, 이젠 그만. 난 이제 더는 못 하겠어'. <아쿠아 맨>은 나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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