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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an 09. 2019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

내러티브 구조 측면에서 본 <성난 황소> 와의 유사성과 차이





<성난 황소>와 <시민 케인>은 모두 주인공의 성공과 좌절, 그리고 생에 대한 깊은 후회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두 영화가 주인공의 후회를 묘사하는 모습에서 큰 차이점을 보인다. 챔피언을 지냈다가 친구와 주변 사람을 모두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주인공이 철창에 갇혀 벽을 주먹으로 마구 치며 절규하는 <성난 황소>가 직접적으로 감정을 쏟아내는 반면, <시민 케인>은 '로즈버드'라는 알 수 없는 메타포를 통해 완곡하고 (완전히는 아니지만)열린 결말로써 끝 맺는다.


'로즈버드'의 정체를 파헤치던 신문 기자 제리 톰슨은 끝내 그것이 무엇인지 밝혀내지 못하는데, 로즈버드는 케인이 어릴 적 타던 썰매의 이름으로 그의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상징한다. 결국 로즈버드는 주인공인 케인이 부와 성공을 좇는 과정에서 타락하고 망가진 자신에 대한 후회, 어린 시절의 순수함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모든 것이 밝혀지는데, 엄청난 양의 케인의 유품 중 값어치없는 것들을 소각하는 과정에서 한 인부가 '로즈버드'라고 쓰여진 낡은 썰매를 난로에 소각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로즈버드라고 쓰여진 썰매가 소각로 안에서 타들어가는 모습 그리고 케인의 저택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를 꽤 오랜 시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불꽃 속에서 그의 화려한 유품들과 함께 로즈버드가 타들어가는 모습, 그리고 검은 연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성난 황소>가 주인공의 정서를 폭발시킴으로써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반면, <시민 케인>에서는 주인공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많지 않다. 그저 그가 남긴 한 마디 '로즈버드', 썰매가 소각로 속에서 태워지는 모습, 그리고 연기로 사라지는 모습을 담담히 보여줄 뿐.

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한 직접적 표현보다는 메타포를 통한 비유와 은유를 더 좋아하는 내 개인적 취향도 있지만, 영화 비평에서도 직접적 표현보다는 간접적 표현을 더 높은 수준으로 간주하는 측면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영화의 제 1원칙인 'Show Don't Tell'의 궁극일테니까(뭐 또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성난 황소>가 저차원의 영화인가 하면 전혀 아니다. 그저 내러티브 구조 측면에서 <시민 케인>과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성난 황소>의 진정한 가치는 내러티브의 뼈대가 아닌 그것을 전달하는 씬들 속에 녹아있는 연출에 있으니까. 어쩌면 '마틴 스콜세지'와 '오손 웰즈'가 인물의 후회에 접근하는 출발점 자체가 달랐던 것은 아닐까 싶다. <성난 황소>는 정말 날 것 그대로의 후회, <시민 케인>은 한 늙은이의 회한. 회한이란 정서가 후회보다는 조금 더 정서의 강도 면에서 희석된 형태(꼭, 그렇지도 않겠지만, 정서의 폭발이란 측면에서 본다면)일테니 두 영화의 연출은 둘 모두 저마다 효과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어쨌건 의무감(!)으로 보기 시작한 <시민 케인>은 생각보다 꽤 재미(!)있었다. 흥미로운 카메라 기법과 미그 자체로 의미가 전달되는 미쟝셴들, 무엇보다 생각치도 않았던 내러티브 구조. <시민 케인>은 작금의 '도저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처참한 한국 영화 씬(!)'에 몸서리치는 이라면 한번은 도전해볼만 영화, 의외의 재미를 발견할 수도 있는 영화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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