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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an 09. 2019

국가 부도의 날(2018)

한국 영화=(평면적 캐릭터와 이야기+선과 악의 이분법) X 감정 과잉



감정 과잉이란 한국 영화의 전형성





무리수




만약 IMF를 반대하는 김혜수의 논리에 대한 정당한 반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IMF를 반대하긴 하지만 자신의 주장에 대한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처절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있었다면? IMF를 받아들이는 조우진이 회장 아들과 밤에 술이나 마시러 다니고 무조건 대기업의 편에 서는 모습이 아니라 정말 국가의 미래를 위해 IMF가 필요하다고 믿는 인물이었으면 어땠을까? 선과 악으로서의 대립이 아니라 국가의 회생이란 공동의 결승점를 향해 내달리지만 서로 다른 경로를 추구하는 인물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마찰이었다면 어땠을까? 훨씬 더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이야기와 캐릭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엄효섭(전 경제수석)과 권해효(한국은행 총장) 캐릭터가 선과 악 사이에서 이렇게 무의미하게 소비되지 않아도 됐다. 재벌과 기득권을 대변하는 인물이 필요했다면 김홍파(새 경제수석) 정도면 충분했다. 그의 개입으로 극은 한층 더 역동적으로 움직였을 것이다.



적어도 조우진은 입체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대한민국은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그 스스로도 몇 번 대사를 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입체적인 인물이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기획 의도 자체가 부패한 국가와 재벌을 고발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조우진 캐릭터는 부패한 국가를 상징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의 대사는 이중성을 띌 수 없다. 결국 이 영화는 IMF에 대한 영화를 표층적으로는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지난 정권과 재벌 부패'라는 틀에 갇혀 있다. 이 또한 지난 수 년간 한국 영화에서 질리게 보고 또 본 소재이다.


이 영화는 충분히 좋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획부터 세워진 제작 의도가 영화라는 세계 안에서 맘껏 뛰어 놀아야 할 캐릭터들을 새장 속에 가둬버렸다. 새장 속에 갇힌 주요 캐릭터들은 종이인형처럼 평면적이고 재미없는 인물이 되어 버렸고, 유아인, 김홍파, 엄효섭, 송영창, 권해효 등 너무도 많은 인물들이 극을 추동시키지 못한 채 그저 의미없이 소모되어 버렸다. 이 모든 것은 제작 기획 의도에서 출발한다.



IMF사건이 지닌 복잡성,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 그리고 IMF 개입의 불가피함
IMF 사태는 한국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뿌리째 변화시킨, 한국 현대사에 있어 한국전쟁 이후 가장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자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 사건의 원인, 전개, 결말에는 수 많은 면들이 존재하며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훨씬 다층적이고 복잡한 사건이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IMF 사태가 아무 문제없이 잘 나가던 한국 경제에 어느 날 갑자기 외환보유고가 줄어들어 생긴 즉흥적 사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지금 당장 빌린 돈을 갚을 여력이 없으니 지금만 넘기면 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말이다. 21세기가 막 시작될 무렵까지도 여전히 1960년대 산업화 시대의 경제와 산업 모델을 고수하던 낡고 썩은 한국 경제와 사회. 그래서 안에서부터 서서히 썩어들어가던 한국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썩어 문들어져 그 시스템이 더 이상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없음을, 한국 사회의 경제시스템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가장 비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IMF 사태이다. 한 나라의 기업 순위 1,2위를 다투는 거대 기업이 동네 구멍가게처럼 총수가 없으면 아무 것도 돌아가지 않고 제대로 된 재무구조 조차 파악이 안 되는 말이 안 되는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마불사'란 이름으로 국가로부터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그런 구조, 대기업 뿐 아니라 작은 기업까지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든 그런 낡고 비정상적인 시스템 개혁을 우리 스스로 하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비극이기도 하다.


그런 역사의 거대한 순간에서 만약 우리가 IMF의 간섭을 받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 사회는 90년대 후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낡고 비정상적인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세계 환경은 급변하는데 한국만 구태를 유지할 순 없다. 고름은 언젠가는 터트려야 한다. 고름이 고이는 기간이 길수록 더 큰 고통과 상처가 남는다. 한국이 구시대적이고 비정상적 시스템을 더 오래 끌었다면 한국은 IMF 때보다 더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을 차치하고 애초에 우리나라는 작은 국토와 적은 인구, 거의 없다시피한 자원, 수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기 때문에 IMF를 거부했다면 경제 자체가 파탄이 났을 것이다. 모든 나라가 강하게 연결된 국제 경제 질서 속에서 IMF를 거부하고도 영속할 수 있는 국가는 러시아처럼 거대한 땅덩어리와 부유한 지하자원을 가진 국가 밖에 없기 때문이다. 1997년 상황에서 IMF를 거부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란 슬픈 국가에게는 테이블에 있을 수 없는 카드이다.


IMF 그 후

너무 거대한 변화가 너무 짧은 시간 내에 이뤄졌기에 정말 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지만 그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제때 개혁과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던 것에 대한 값비싼 영수증이었던 것이다. 그 비싼 영수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다시 구태를 고수하고 있다. IMF 이후 생겨난 왜곡된 부분을 교정하려 하지 않고, 이미 수명이 지난 과거의 산업에 여전히 천착하고 있다. 과연 지금의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과 다른가? 얼마 전 직접 본인의 입으로 한국 경제의 미래는 그래도 제조업에 있다고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내 귀와 눈을 의심했다. 개혁하겠다고, 그래서 믿고 뽑은 대통령이 아닌가. 그런데 그가 하는 경제 정책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 소프트뱅크와 우버가 이끌어가는 미래의 자동차 세계에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이제 발을 디딜 틈이 없다는 게 현재 업계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획기적인 정책과 발상, 그리고 드라이브가 절실한 지금,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란 '택시 합승'이다. 택시와 관련된 정책에 있어선 여론이 택시 업계에게 부정적이기에 정부가 정말 과감한 정책을 펴면 택시 업계를 누룰 수 있는 상황에서도 '택시 합승'을 내놓는 이런 땜질식 정책들. 외부의 환경에 맞춰 변화하지 않고 근시안적이고 보신적인 납땜만을 하는 모습은 그 동안 정권에 상관없이 봐왔던 모습이고, 지금의 기형적인 한국은 좌나 우 정권에 상관없이 수 십년 간 이어진 납땜들의 결과물이다.

영화는 시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며 마무리 짓는다. 과연 그 깨어있다는 말의 정의는 무엇인가. 우린 무엇에 대해 깨어있어야 하고, 무엇을 감시해야 하는가? 부자들, 정부 고위직의 낙하산 인사들만 감시하면 되는 것인가? 재건축을 미루며 납땜으로만 일관하는 한국 사회를 감시해야 하는가? 영화는 그 접근과 현상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일차원적이기에 뜬구름 잡는 두루뭉실한 답 밖에 내놓을 수 없다.

결론
영화 내적으로 <국가 부도의 날>은 영화 시나리오 작법에 있어서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인 캐릭터 구축과 캐릭터 변화를 전혀 이루지 못했고 그저 원초적으로 사건을 나열하는데 그쳤다. 연대기적 사건의 나열이 건조한 태도를 보였다면 그나마 좀 나았을 텐데 감정은 너무나 지나치게 과잉 됐다. 영화 외적으로는 주제을 대함에 있어 일차원적이고 이상적인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애초에 이 영화는 기획 자체가 전 정권을 비판하고 교훈을 말해야겠다고 작정하고 앞뒤 안 보며 달린 영화이다. 오직 심각함과 감정만 매미의 허물처럼 남은 '전형적인 한국' 영화.


아쉬움, 그리고 바람

담담한, 문학적인, 간접적인, 상징적인 묘사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시나리오. 심각하고 자극적인 민낯 그대로가 아닌 다층적인 시나리오. 살아있는 캐릭터들의 역동적인 관계. 그런 것들이 살아있는 '영화'를 보고 싶은 건 한국 영화에게 너무 큰 바람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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