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하고 있던 명치에 힘껏 꽂힌 곰돌이의 펀치 한 방
4.
영화 내내 웨스 앤더슨이 떠오른 건 나만의 느낌인가. 왜 아무도 패딩턴 2를 이야기하면서 웨스 앤더슨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인지. 다채로운 파스텔톤 색감과 중앙 집중적인 카메라 구도. 저 사진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는가!
5.
은근히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 앞서 말한 (1), (4)번과 어울어져 영화 내내 눈을 즐겁게 해줬다. 개인적으로는 자극적이고 과시적인 <아쿠아 맨> 보다 이 영화의 볼거리가 훨씬 자연스럽고 영화와 잘 결합되어서 좋았다. 감독도 그렇지만 촬영감독의 노고가 여지없이 드러난 부분. 그에게도 박수를!
6.
포스터를 보면 그저 아이들 타깃의 설렁설렁 영화인 것 같지만 이 영화에는 탄탄한 플롯과 연출력이 숨어있다. 그리고 '브리티시 B급 유머'와 '동화적 상상력'의 결탁(!)은 예상 밖으로 강력하게 내러티브 진행을 돕는다.
7.
강력한 캐릭터의 힘. (6)번, 특히 곳곳에서 나오는 동화적 상상력이 은근히 내러티브 진행 뿐 아니라 캐릭터 구축에도 크게 작용한다. 이 영화에는 그저 버려지는 캐릭터 없이 대부분 주요 캐릭터들이 모두 살아 있다. 패딩턴의 숙모는 영화 초반 아주 잠깐 등장하고 아예 등장하지 않고 영화 마지막에서야 등장한다. 하지만 패딩턴과 숙모 간 강한 유대관계에 대한 설득력이 충분해서 후반부 둘의 상봉에 자연스럽게 몰입된다. 뭐랄까 이 영화는 영화 이야기 구조의 교과서 같다. 촘촘하고 단단한 시나리오, 살아 숨쉬는 캐릭터, 끝없이 터지는 유머까지.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 없다.
1.
작위적인 씬들. 이 영화의 초현실적이고 동화적인 세계관은 인물들, 특히 조연들의 과장된 연기와 인위적인 연출과 어우러져 어느 씬에서는 <트루먼 쇼>를, 어느 씬에서는 <그랜드 부다패스트 호텔>을 떠오르게 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분명 이러한 연출은 패딩턴 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씬들이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2.
난 왜 패딩턴의 목소리가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을까.
<택시 드라이버>, <차이나 타운>, <스카페이스>에 매말라 있던 내 가슴에 단비가 되어 촉촉히 적셔준 사랑스럽고 고마운 영화.
PS. 1.
휴 그랜트는 지금껏 있었던 일련의 로맨틱 코미디를 통해 정형화된 캐릭터를 갖고 있었는데 <패딩턴 2>에서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그만의 찌질한 캐릭터를 잃지 않으면서도 정형성을 탈피한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써 휴 그랜트라는 연기자, 캐릭터의 지평을 넓혔다. 휴 그랜트의 진화라고도 볼 수 있는 이번 연기를 통해 그의 연기 인생에 변화가 일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차기작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휴 그랜트의 오랜 팬으로서 크리스토퍼 웰켄 옹처럼 오래오래 죽기 전까지 연기하는 그의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 갑자기 그의 부고 소식을 들으면 너무 슬플 거 같은 생각....
PS. 2.
위의 흑백 사진은 1920~3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전형적인 이미지 중 하나. 패딩턴 속 휴 그랜트에서 그런 약간의 괴기스러움이 언뜻 묻어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