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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an 09. 2019

쥐라기 월드:폴른 킹덤(2018)


전 전편 쥬라기 월드 1을 기대 없이 봤다가 극장에서 생각 외로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이번 <폴른 킹덤>에도 별 기대를 하진 않았습니다. 쉬는 날이고, 영화 한 편은 가볍게 보고 싶은데 볼 만한 영화는 딱 하나. (여담이지만 배급사가 작년에 <미이라>를 현충일에 개봉해서 기대 이상의 쏠쏠한 성적을 낸 후 올해 이 <폴른 킹덤>을 현충일에 맞게 개봉하기 위해 전 세계 개봉보다 약 2주? 정도 앞당겼다고 하더군요. 그 작전은 대성공이었습니다. 기획자 칭찬해에..)


누가 봐도 가볍게 즐기는 팝콘 영화. 이런 영화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최대한 열린 마음과 관대함으로 러닝타임 동안 세상의 시름(!)을 잊고 재밌게 즐기다 오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액션 영화에 과한 개연성의 잣대를 들이대거나 작품성을 논하는 건 번짓수를 잘못 찾은 것입니다. 논외로 누군가는 뻔한 영화라서 재미없다고 하던데 할리우드 상업 액션 영화의 플롯이나 문법, 장치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쥬라기 공원>, <더 록>, <에일리언>, <배드 보이즈>, <분노의 질주> 등등등 시금석이 되는 영화들의 등장 이후로 굳어진 지 오래됐습니다(<유주얼 서스펙트>와 <식스 센스> 이후 '반전'이란 코드가 추가되긴 했지만 그 또한 문법화 되어 그때만큼 쇼크를 주진 못하죠). 관객은 압니다. 주인공은 결국 악당을 소탕하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란 걸. 거기에 고생과 역경이 추가되고, 여러 장치가 추가되지만 결국 그 모든 요란의 끝은 같습니다. 해피 엔딩. 하지만 일찍이 1960~70년 일련의 아메리칸 뉴시네마라 불리는 일군의 영화들이 이 관습에 반기를 들긴 했더랬죠.



뻔하지 않은 영화를 찾습니까? 그럼 제가 장담합니다. 상업 영화 중 볼 수 있는 영화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이 문법을 피해 가는 영화도 가끔 있습니다. 악당이 이기거나, 주인공이 죽는. 하지만 극히 드뭅니다. 왜냐하면 관객은 본능적으로 새드 엔딩을 불편해하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가는 상업 액션 영화에서 높은 수익을 올려야 하는 배급사는 관객이 불편해하는 영화는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 뻔하지 않은 영화를 찾으십니까? 아트 하우스 영화 쪽으로 가보십시오. 그곳에는 듣도 보도 못한 무궁무진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다만 당신은 뻔하지 않음을 얻는 대신 재미를 잃게 될 것입니다. 세상만사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상업 영화를 보는 관객의 접근은 마땅히 "뻔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피 엔딩을 만드느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린 뻔히 보이는 영화를 보냐. 문제는 과정입니다. 뻔한 문법, 즉 관습화 된 이야기, 즉 클리셰로 누군가는 몰입감과 박진감 넘치는 영화를 만들고, 누군가는 식상하고 재미없는 영화를 만듭니다. 의미 있는 요소는 해피 엔딩이냐 아니냐, 뻔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떻게' 즉 '연출'의 방식입니다. 사실 대부분 뻔합니다. 다만 재미있으면 그렇게 느끼지 않고, 재미없으면 그렇게 느끼는 것뿐이죠.


어쨌든, 저에게 <폴른 킹덤>은 그냥저냥 나쁘지 않았습니다. 독특하게도 이 감독은 장르를 섞었더군요. 섬 탈출 전까진 액션, 그 이후부턴 스릴러적 요소를 여기저기 많이 넣었습니다. 특히 섬 탈출 전까진 굉장히 몰입감 있게 잘 봤습니다. 볼거리도 굉장하더군요. 그 이후부턴 뭐랄까 스릴러적 요소가 흥미 있긴 했는데 MSG를 많이 넣은 느낌, 특히 몰입감을 배가시켜야 하는 배경 음악이 필요 이상으로 과하고 웅장해서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뭐 이 정도면 팝콘 무비로 나쁘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폴른 킹덤>의 최대 단점은 바로 손녀의 존재를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DNA를 통해 만든 존재가 공룡만이 아니라 손녀도 있었다는 설정은 사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오싹하면서 충격적인 반전입니다. 그런데 영화 속 인물들은 이것을 크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앗!!!!! 그래?!?!?!" 했다가 곧 잊고는 다들 자기 할 일하기 바쁩니다. "짠!!! 대반전!!! 자, 충격 대반전 잘 봤지?" 하곤 금세 다시 일과로 돌아가는 모양새가 마치 고속도로에서 잠깐 쉬하러 휴게소 들렀다 다시 고속도로 가던 길 가는 것처럼, 뭔가 해결해야 할 일을 처리했다는 인상을 줬달까요. 이 영화는 손녀를 설정에 넣은 이상 이렇게 가볍게 다뤄선 안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손녀가 복제된 존재라는 설정을 빼는 게 훨씬 깔끔합니다.


사실 <쥬라기 공원>을 시작으로 한 이 일련의 '쥬라기 시리즈'의 화려하고 짜릿한 액션 스릴러 뒤에는 항상 DNA 조작에 대한 묵직한 경고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생명체를 마음대로 만들고 조작하는 일에 대한 권리가 과연 인간에게 있는가. 그 생명체를 과연 우리가 완벽히 관리할 수 있는가. 궁극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다 만들어도 되는가'에 대한 생명과 윤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인 거죠. 제가 <폴른 킹덤>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화산 폭발로 멸종 위기에 있는 공룡을 과연 살려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갈등하는 설정이었습니다. 인간이 만든 공룡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그들에게도 생명체로써의 권리가 있으니 살려야 하는가 아니면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는 게 맞는 것인가. 우리가 그들을 만들었으니 그들을 죽게 만드는 권리 또한 우리, 창조주에게 있지 않은가. 사실 이 질문과 갈등은 <쥬라기 공원 1편>이 던졌던 질문 "우리가 생명을 창조할 권리가 있는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며, 이 질문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만들어낼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에 대해 진지하게 인류가 답해야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섬을 탈출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섬을 바라볼 때 탈출하지 못하는 공룡 한 마리가 불길에 휩싸이는 그 장면은 단순히 죽어가는 공룡에 대한 안타까움을 넘어 여러 감정과 생각을 들게 한다는 점, 그것을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훌륭한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다시 단점이었던 손녀 이야기로 돌아가서, 손녀를 복제한다는 이 설정은 그래서 전편에 비해 진일보한 질문인 동시에 진일보한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저만 이 설정이 소름 끼쳤나요? 전 이 반전을 보고 에일리언 4편에서 리플리와 에일리언을 합치는 과정에서 실패한 샘플들, 그 기괴한 모습의 생명체를 리플리가 마주할 때의 그 소름 끼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 핵심 설정이자 반전은 시나리오에 화학적으로 녹아들기보단 단순히 기계적으로 끼어있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 점이 가장 안타깝더군요. 마치 "야, 이거 만으로는 좀 심심한데, 반전 좀 넣어봐"해서 끼워 넣은 게 손녀의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설정을 살리면서 시나리오적으로 잘 풀어냈다면 훨씬 더 좋은 영화, 생명 윤리에 대해 무거운 질문을 할 수 있는 영화가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가스로 죽어가는 공룡들을 안타깝게 보는 주인공들, 그 누구보다 공룡을 사랑하는 그들이기에 공룡들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그 양가적 감정을 보여주는 씬도 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진 좋은데 그 후,,, 내가 복제된 존재이니 쟤네도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며 공룡들을 방출해버리는 손녀,,, 만약 손녀 설정이 시나리오에 더 잘 녹아있었다면 이 씬은 상당히 묵직한 울림을 관객에게 주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전에 손녀 캐릭터가 잘 구축 되질 않은 채로 이 일이 벌어지니 손녀의 공룡 방생이 참 뜬금없게 보이더군요,,, 그리고 그 무책임한 손녀를 대하는 주인공에 대한 연출 실패,,, 전 손녀의 반전을 둘러싼 이 부분이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시나리오의 큰 구멍이었어요.


전 세상으로 나간 공룡들을 보면서 <28주 후>의 엔딩씬이 생각났습니다. 어쨌건 지금까지 '쥬라기 시리즈' 속 공룡들은 그래도 관리가 가능한 영역 안에 속해있었는데, 세상 밖으로 나갔으니 이제 어찌 되려나 속편이 궁금해지기도 하더군요.


장점도 단점도 있지만 어쨌거나 적당히 재밌게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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