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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an 09. 2019

시카리오:데이 오브 솔다도(2018)

시카리오 흉내내기


영화 중엔 그런 영화가 있습니다.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잠깐 보게 됐는데 결국 끝까지 다 보게 되는 영화. 심지어 이미 5번, 10번을 봤는데도 이상하게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


개인적으로 시카리오 1편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가 그런 영화 중 하나입니다. 어디부터 보게 되던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 블랙홀처럼 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영화.


 스코어라기 보단 음향 효과에 가까운 배경 음악, 극단적으로 건조한 분위기, 사실적인 액션, 그 독특한 버드 아이 뷰(그 오묘한 느낌이란!)로 대표되는 뛰어난 촬영,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시나리오, 이 모든 것의 완벽한 조화. 결국 감독의 훌륭한 연출이란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제가 주목하고 싶은 건 캐릭터입니다. 닳고 닳은 이들의 세계, 욕망과 대의가 뒤섞여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한 거대한 아수라도의 한가운데에서 벌어지는 그 모든 살육과 위법들이 '적법한 법 집행'임을 입증할 도구가 된 여인. 그렇게 도구로 전락한 채 무기력하게 사건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캐릭터. 그렇게 관객의 시선을 대변하는 케이트(에밀리 블런트). 군부대는 물론 FBI 사무실에도 늘어진 셔츠에 꼬질한 카고 바지, 쪼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남자.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어느 자리에서도 축 늘어진 채 여유 있게 유머를 던지는 산전수전 백전노장 CIA 요원 맷(조쉬 브롤린), 언제나 구석에 웅크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가장 최소한의 단어만을 내뱉는 비밀의 남자. 자신의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아군에 대한 사격을 주저하지 않는 차가운 사내. 피아의 개념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차디 찬 캐릭터. 알레한드로(베네치오 델 토로).



시카리오 1편은 맷과 알레한드로가 케이트(이자 관객)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영화입니다. 영화 후반부 잠깐 케이트는 그 압도적 상황을 스스로 반전시켜 보고자 몸부림을 치지만 맷과 알레한드로 앞에서 그녀는 미약한 존재, 너무도 쉽게 무력해집니다. 관객은 케이트에게 빙의되어 멱살 잡힌 채 그저 이리저리 끌려다닐 뿐입니다. 그렇다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있죠.


맷과 알레한드로는 제가 지금껏 본 영화를 통틀어도 찾기 힘든 캐릭터였습니다. 맷은 분명 아군이지만 작전에 방해가 된다 느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인물, 알레한드로는 그가 아군인지 조차 확신할 수 없는 모든 게 비밀에 싸인 인물. 그 두 인물의 목표지향적이고 불안정한 면은 그들이 언제 무슨 짓을,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는 거대한 불확실성으로 관객에게 다가옵니다. 자연히 관객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들의 캐릭터에 사로잡혀 영화 내내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죠. 맷과 알레한드로는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는 건조하고 차가운 인물입니다. 다만 맷은 능구렁이 같고, 알레한드로는 무거울 뿐이죠. 그런 그들의 에지 있는 캐릭터에 대한 제 느낌은 아주 검디 검은 잉크와 같았습니다. 물이란 1ml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검정의 잉크.




드니 뷜레브는 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에서 이런 완벽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에 대한 제 전반적인 느낌은 시카리오 특유의 건조한 느낌, 음향 효과와 다를 바 없는 사운드, 시카리오의 시그니처와 같은 자동차 행렬 씬, 사실적인 액션 등 시카리오 1편의 모든 요소를 그대로 차용하긴 했지만 시카리오의 흉내에 머물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수많은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맷과 알레한드로, 그 순수한 검정 잉크에 물을 섞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날카로움은 무뎌지고, 진함은 희석되었습니다. 시카리오 2편이 1편 보다 못한 이유, 그저 평범한 액션 영화로 전락한 가장 큰 이유, 적어도 제겐 그 이유가 가장 큽니다. 특히 맷의 캐릭터가 정말 심각하게 흔들리더군요. 그의 캐릭터를 망치는 대사들은 차치하고 조시 브롤린의 연기가 불안정했습니다. 대체 무슨 정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 밋밋한 연기가 너무 많더군요. 이건 전적으로 감독의 디렉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 이거 뭔가 애매할 것 같다"는 낌새는 영화 초반부부터 느꼈습니다. 처음 테러리스트를 심문하는 시퀀스. 그 시퀀스 내내 테러리스트는 연기를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당혹, 슬픔, 분노, 좌절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태블릿으로 지인의 사망을 보여주는 씬, 심문을 하는 자와 당하는 자의 감정이 격렬히 부딪쳐야 하는 씬, 시퀀스에서 가장 격렬해야 하는 그 씬이 그냥 밋밋하게 스쳐 지나가버리더군요. 심문받는 테러리스트 눈 앞에서 내 주변인이 죽었으니 "이 상황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구나"하는 좌절감이나, "이 자들은 보통내기들이 아니구나"하는 공포나, "이 개 x 끼들아!!!!!" 하는 분노나, 아니면 모든 걸 포기하는 무력감, 뭐라도 느껴져야 하는데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건 감독의 연출에 의한 의도적인 건조함이 아닌 '연기 없음'이었습니다. 그 심문을 진행하는 맷도 너무 전형적이고 기계적으로 연기하더군요. 킁킁. 뭔가 냄새가 났습니다. "아 이거 불안한데". 정말 좋은 영화는 단 한 씬, 단 한 프레임도 그냥 넘어가질 않는 법이거든요.




영화는 감독 놀음입니다. 밋밋한 배우의 연기는 감독의 디렉팅이 부족한 탓입니다. 태블릿 협박을 보여주는 그 몇 초의 짧은 씬, 거기서 느껴지는 밋밋함. 모두 감독의 연출이 부족한 탓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압니다. 이 영화는 전반에 걸쳐 쓸데없는 대사와 장면, 밋밋한 연기 등을 끊임없이 노출시켰습니다. 이 모든 잘못은 곧 하나로 귀결됐습니다. 전편에서 완벽하게 구축된 캐릭터가 무너진 것이죠. 영화 초반 알레한드로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넣고 쓰러진 상대에게 손가락을 와리가리(!)하며 총격을 갈기는 씬. 적어도 <시카리오 1편>에서의 알레한드로라면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가장 과묵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몸을 쓰며 명확히 작전을 실행하는 인물입니다. 권총 방아쇠를 손가락으로 와리가리치며 80년대 홍콩 누아르에서나 나올 법한 '후까시'를 잡으며 요란하게 상대를 죽이는 인물이 절대 아니란 말입니다. 이런 씬 하나, 어쩌면 그저 지나칠 수도 있는 작은 씬 하나가 캐릭터 구축을 망칩니다. 캐릭터 구축은 일관된 방향으로 명확히 이뤄져야 합니다. 알레한드로는 이미 전편에서 완벽히 캐릭터 구축을 쌓은 인물입니다. 이러한 불필요한 씬들은 검정 잉크에 물을 붓는 것입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전 이 영화를 보면서 끊임없이 몸을 뒤척였습니다. 그 말은 곧 이 영화가 제 멱살을 잡는데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시카리오 흉내를 낸 영화. 이렇게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요즘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단순히 다음 시리즈를 위한 발판(떡밥)으로 전락하는 영화들을 적잖이 보게 됩니다. 전 이런 영화를 싫어합니다. 제작사가 시퀄을 준비하던 말던 그건 제작사의 기획인 거고, 모든 영화는 그것 자체로 완결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은 그런 영화를 볼 권리가 있습니다. 좋은 영화는 영화 한 편으로 완결성을 가지면서 충분히 다음 편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처럼 말이죠. 한 편의 영화가 다음 편의 예고편으로 전락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 싫습니다. 그들의 장삿속에 우롱당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런 다분히 제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가 더 실망스러웠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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