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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Feb 12. 2020

이미경 부회장의 수상 소감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한국에서 이미경 부회장의 수상 소감이 꽤 시끄러운가 봅니다(뭐 이제 한국은 쇠똥구리가 쇠똥만 굴려도 욕먹는 사회이니 그러려니 합니다만), 아카데미 시상식의 특성이나 이미경 부회장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작품상 수상 소감에 봉준호도 가만히 있는데 웬 이상한 머리의 아줌마가 나와서 난리냐고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결론부터 말해봅시다.


통상적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은 감독director이 아닌 제작자producer가 수상소감을 말합니다. 이미경 부회장은 <기생충> 크레딧에 executive producer로 크레딧이 올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producers는 배정된 예산으로 영화 촬영과 관련한 모든 일, 즉 제작을 총괄하는 사람입니다. 거기에는 크루를 고용하고 계약을 하고 일정을 짜고 어떤 장비를 쓰고 하는 등의 모든 일이 수반됩니다. Executive Producer는 주로 예산과 관련된 업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획'이란 으로도 많이 불립니다. 예산을 따오기만 할 수도 있고, 좀 더 적극적으로 프로덕션에 깊이 관여할 수도 있습니다. 작품상 수상 소감은 executive producer가 아닌 producer가 하는 게 관례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미경 부회장 역시 크레딧에 프로듀서로 올라 있기 때문에 관례에서 벗어난 일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아주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에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관례'에 집착하면서 여전히 이미경 부회장을 비난한다면, 아카데미가 92년 간 유지하던 관례를 깨고 <기생충>에 작품상을 줬다는 사실 역시 비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미국 현지에서는 많은 이들이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에 불만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상황을 좀 "대국적"으로 너그럽게 봅시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하면 그녀의 수상 소감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 아마 당신이 이미경 부회장에 대해 좀 더 안다면 그녀는 충분히 수상 소감을 할만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이미경 부회장과 CJ ENM


모든 기업 활동은 곧 효율성의 싸움입니다. 가장 적은 비용을 들여 가장 많은 결과물을 뽑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활동, 돈은 결국 그 비용 대비 결과물이 높은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문화 산업은 모든 산업 중 그 비용 대비 결과물이 가장 적은 산업에 속합니다. 더군다나 영화 산업은 어떤 작품이 대박이 나고 쪽박이 날 지 모르는 '도박적' 성격이 굉장히 짙습니다. 연예 산업도 마찬가지죠. 배우, 가수의 작품 흥행 여부도 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기업 활동의 생명이 리스크 관리라는 면에서 문화 산업은 여러 면에서 좋은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그래서 문화 산업에 매진하는 이들 중 '수익률' 도 '수익률'이지만 '가치' 등에 역점을 두고 (남들이 이해하든 못하든) 사명감 같은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꽤 많이 있습니다.


설탕과 화학 등이 주력이던 CJ는 1993년 문화 사업부를 출범시켰고 오랜 기간 변변한 수익을 올리지 못한 채 투자를 계속 이어왔습니다. 대기업 입장에서 문화산업을 한다는 건 사실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입니다. 이번 <기생충>의 투자와 배급을 맡은 CJ 입장에서도 영화에 투자하는 인력과 시간, 비용을 차라리 만두 하나 더 만들어 파는 데 이용하는 게 '효율성'과 '수익률', '안정성' 측면에서 훨씬 더 나은 비즈니스입니다. 어쨌든 CJ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 사업을 존속시켰고, 투자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현 CJ 이재현 회장의 사무실에는 할아버지인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가 생전 했다는 말 "문화 없이는 나라도 없다"가 여전히 걸려 있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이미경 부회장은 이재현 CJ회장의 동생으로 CJ의 작은 문화사업부로 출발한 현 CJ ENM을 진두지휘하면서 오랜 기간을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한국 영화와 뮤지컬 등 한국의 문화에 수십 년 간 투자를 이어왔습니다. 그녀는 예전부터 한국의 문화를 해외에 알리고 싶다, 한국 영화를 전 세계 사람들이 보게 하고 싶다고 공공연히 알렸다고 합니다. 오랜 기간 집요하게(!) 집행된 한국 문화 산업에 대한 투자는 그녀의 신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미경 부회장은 미국에서 오래 체류하면서 주요 연예계 관계자들과 네트워크를 상당히 쌓았고(그녀의 생일 파티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올 정도(드림웍스 창업 당시 큰 투자자이기도 했지만)) 한국 영화를 알리기 위해 그 네트워크를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오래전부터 봉준호 감독을 후원해왔습니다.




<기생충>의 영화 캠페인


많은 분들이 잘 모르고 계실 한 가지. 아카데미가 단순히 영화의 내적 완성도 만을 보고 뽑는 것 같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많은 배급사들은 자신들이 미는 작품의 아카데미 수상을 위해 상당히 많은 비용을 지출합니다. 약 8,500명에 달하는 아카데미 회원들에 대한 대접, 즉 로비 명목으로 약 350억 원가량의 돈을 쓴다고 합니다. 넷플릭스가 작년 <로마> 한 작품을 위해 약 300억 원가량의 돈을 썼다고 전해지고 올해는 약 1,000억 원가량의 돈을 썼다고 전해집니다(아마존과 디즈니 등 OTT 경쟁이 심화되면서 퀄리티 높은 오리지널 컨텐츠 확보에 사활을 건 넷플릭스의 눈물겨운 투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아카데미에서의 결과는...).


<기생충>은 작년 칸 영화제를 시작으로 무수히 많은 해외 영화제와 GV에 참석했고 그 여정의 목적지는 아카데미였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그 지난한 여정에 대해 "작은 봉고차를 타고 전국을 유랑하는 극단"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송강호 배우는 쌍코피가 터지고 그랬다죠. 봉 감독은 "우리는 그들(미국의 메이저 배급사)만큼 돈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몸으로 때운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생충> 팀은 작년 하반기부터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주로 북미에 체류하며 <기생충>을 알리는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 그들 곁에는 언제나 이미경 부회장이 함께 있었습니다. 봉 감독이 자신들은 돈이 없다는 '앓는 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여러 매체에 의해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기생충> 팀이 해외에서 체류하며 쓴 돈은 약 100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기생충> 팀이 먹고 마시고 지내며 쓴 그 모든 비용을 부담한 사람이 바로 CJ ENM의 이미경 부회장입니다. 




결론


프로듀서가 아닌 투자배급 담당자가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소감을 이야기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은 봉준호 개인의 수상인 동시에 지금까지 오랜 기간 축적된 한국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현상에 대한 인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오랜 기간 손해를 감수하면서 한국 문화에 투자를 집행하고, 해외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기생충>에 아낌없이 돈을 쏟은 이미경 부회장은 수상 소감을 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사족,


다른 영화도 아닌 계급 갈등을 비판한 <기생충>의 제작과 아카데미 수상 쾌거까지 재벌 기업의 후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란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경 부회장과 관련해서는 외국의 기사도 많이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아래의 링크도 한번 읽어보시고 다른 기사들도 읽어보시길.


https://www.abc.net.au/news/2020-02-11/who-is-miky-lee-oscars-south-korea-godmother-parasite/1195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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