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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May 03. 2020

더 헌트

끝내주는 정치 풍자 고어 스릴러 액션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본 리뷰를 읽기 전 영화를 먼저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겟 아웃> Vs, <더 헌트>


거두절미. 이런 끝내주는 정치/사회 풍자극은 <겟 아웃> 이후 참 오랜만입니다. 연출의 세련됨이나 코미디와 호러 간 장르 구분을 파괴하면서 그 안에 직접적이지 않게 정치 사회 풍자를 섞은 <겟 아웃>과 비교하면 <더 헌트>의 풍자는 결이 꽤나 직접적입니다. 그런 면에서 <더 헌트>는 <겟 아웃>에 비해 풍자가 조금은 조악하고 거칠기는 하지만 대신 장르적 쾌감은 확실히 더 주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좋은 영화는 그저 각자 좋은 영화로 자존할 뿐, 괜히 누가 더 나은지를 비교하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한 가지 <겟 아웃>보다 <더 헌트>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부분은 바로 용기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헐리웃은 진보주의자들이 득세하는 세계입니다. 헐리웃 뿐 아닙니다. 누가 뭐래도 전 세계 영화산업은 진보주의자들의 세계이며 그건 한국의 충무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충무로는 조금만 보수주의적인 체취가 묻어나도 쉽게 영화가 제작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 영화 제작은 투자와 스태프를 구하기 상당히 힘듭니다. 그리고 그런 제작이 진행돼도 참여한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는 왕따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 어느 곳보다 진영 논리가 판치는 옹졸한 곳. 한국의 영화계죠. 어쨌든, 진보주의적인 '정치적 올바름'으로 가득한 영화계에서 우아한 백조 같은 겉모습 뒤 숨겨진 그들의 모순을 깨부수는 이런 영화를 만드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물론 이 영화가 진보만 비판하냐? 그건 아닙니다. 진보와 보수 양쪽을 모두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지만 영화를 보신 분은 알 겁니다, 어느 쪽을 더 세게 때리고 있는지.



트럼프 Vs. 힐러리: 지지층에게서 멀어지는 미국의 민주당




<더 헌트>를 말하기 앞서 현재 미국의 정치 상황 이야기를 잠깐만 해보겠습니다.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다는 미국의 민주당은 지금 그들로부터 지지를 상당히 잃고 있습니다. 그 살아있는 증거가 바로 트럼프의 당선입니다. 


지역 갈등이 마치 한국만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지역 갈등은 전 세계 도처에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북부와 남부, 베트남 남부와 북부, 독일의 서부와 동부 등등..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적으로 동부와 서부의 해안지대는 민주당, 중부와 남부 지대는 공화당의 고정 텃밭입니다. 그리고 그 외 출마 후보와 시대 상황에 따라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지는 몇몇 주들 '스윙 스테이트'라고 부르는 주들이 있죠(우리나라도 따지면 충청, 강원 같은). 결국 미국의 대통령 당선은 이 스윙 스테이트를 누가 가져가냐로 결정되는데, 지난 대선에서 이 주들을 가져간 사람이 바로 트럼프였습니다. 지지난 대선에서 오바마를 지지했던 6개의 스윙 스테이트(플로리다, 아이오와,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위스콘신)가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트럼프 당선이 선거 부정을 저지르거나 백인 우월주의자, 반이민주의자, 부자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트럼프로 인해 그런 과격하고 위험한 세력이 더 힘을 얻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을 내버려 뒀죠. 그것은 잘못을 넘어 국가 지도자가 해선 안 되는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유럽에서 일고 있는 극단적 우파 혹은 과격주의 세력의 재등장에서 보듯 미국에서 부상하고 있는 백인우월주의 등의 세력이 등장하는 원인이 트럼프 한 명 때문은 아닙니다. 미국의 부를 일구던 전통적인 1차, 2차 산업의 상당수가 신흥국으로 이전되면서 관련 지역(러스트 벨트)이 쇠퇴하고 그런 시대 변화에서 낙오된 수많은 백인들이 일자리를 잃는 반면, 교육열이 높은 이민자들이 3차 산업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면서 낙오된 백인들보다 잘 살아 보이는(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는) 현상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쌓인 분노가 표출되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반이민주의와 백인우월주의는 그런 산업과 사회 변화와 맥락이 닿아있습니다. 이번 민주당 대선주자였던 앤드류 양의 말대로 "트럼프는 미국이 앓고 있는 고질병이 겉으로 드러난 증상에 불과"하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잠시 여담을 하자면 트럼프는 대선 캠페인에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라는 정치 컨설팅 회사를 통해 개인 정보를 페이스북에서 빼돌려 개인화된 메시지를 뿌렸습니다(페이스북은 그걸 알면서도 넘겨줬죠. 그 일 때문에 마크 저커버그는 상원 청문회까지 가게 되고 결국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어 '대학 중퇴한 소년 천재'로서 실리콘 밸리를 대표하던 좋은 이미지가 완전히 땅으로 떨어지게 됐습니다). 관련 다큐에서 나오길 선거 관련 브로커?가 똑같은 비즈니스 제안을 힐러리 측에도 했지만 그쪽에서는 검토하지 않았다더군요. 윤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은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SNS를 활용한 선거 캠페인의 시작은 오바마의 캠페인부터 시작됩니다. 다만 오바마 측이 메타 데이터를 사용했다면, 트럼프는 더 개인화된 데이터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위선? 모순? 혹은 현실?





지난 대선에서 부자들에게 받은 돈과 지지를 놓고 보면 트럼프는 오히려 힐러리와 정반대입니다. 실리콘 밸리의 IT업계 거물들 그리고 월스트리트의 금융 부자들은 모두 힐러리에게 천문학적인 선거 자금을 쏟아부은 반면, 트럼프는 부자들 심지어 자신이 속한 공화당에서 조차 지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지난 대선 트럼프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와 같은 미적지근한 당의 지원과 부자들의 외면을 뒤로하고 홀로 워싱턴 정계의 기득권과 맞서 싸워 이겼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는 각종 인사를 단행함에 있어 눈치 볼 곳이 없습니다(그것이 또한 골치 아픈 일이기도 하지만요). 



그리고 오바마


서민과 노동자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민주당의 힐러리가 부자들에게 둘러싸인 반면 트럼프는 주류사회와 기득권에 대항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힐러리뿐 아닙니다. 지난 오바마 행정부는 역대 미국의 어느 행정부보다 유대인과 월가 출신 인물이 많았던 행정부였습니다. 영화 <빅 쇼트>에서 보면 지난 일련의 금융위기 수습과 조사 과정에서 구속된 금융인은 단 한 명, 그것도 금융위기의 주인공인 거대 은행이 아닌 아주 작은 금융사의 한 인물이라죠. 거대 주요 금융기관들은 공적자금으로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그들은 거액의 보너스를 지급하며 돈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시민이 원하는 개혁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월스트리트에게서 엄청난 선거 자금을 받고 그들이 보낸 이들에게 둘러싸인 대통령이 월스트리트를 개혁하기를 바라는 것이 어불성설이겠죠. 얼마 전 제가 자주 듣는 팟캐스트에 뉴저지 주지사가 나와서 코로나와 관련해 인터뷰를 했는데, 뉴욕 주지사 쿠오모만큼이나 꽤나 신뢰가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바마 행정부 시절 독일 대사였는데 대사로 임명되기 전 골드만 삭스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었더군요.



러스트 벨트 그리고 뜬구름 잡는 진보 엘리트


아무튼 미국 정치 지형에 밝지 못한 많은 이들은 여전히 트럼프가 어쩌다가 대통령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런 이들에게 책 <힐 빌리의 노래>를 권해드립니다. '힐 빌리'는 '레드 넥'과 함께 백인을 낮춰 부르는 대표적인 단어입니다. 흑인에게 '니거' 혹은 '니그로'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 책은 과거 중공업으로 흥했던 북서부 지역, 하지만 이젠 공장들이 가동을 멈춰 '녹슨 지역(러스트 벨트)' [밑의 이미지 참조]이라 불리며 산업 기반을 잃고 수많은 이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한 지역에서 사는 이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살면서 가난을 대물림하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서민을 위한다는 민주당이 집권해도 그 지역의 실업률과 빈곤율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진보주의자들은 입바른 말만 하면서 오히려 노동자와 빈곤층에게서 멀어져 갔죠.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진보주의 페미니스트들에 의하면 이 세계는 억압하는 남성과 억압받는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죠. 하지만 시몬 보부아르가 페미니스트 운동의 포문을 열던 1950년대 사회와 지금의 현대사회는 그 복잡성의 양상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여성이 남성에 의해 억압받는다 주장하지만 러스트 벨트 지역(뿐 아니라 노숙인이 급증하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길거리 음식을 주워 먹거나 트레일러에서 살면서 시리얼이나 정부 보조 쿠폰으로 연명하는 남성들이 과연 수많은 기업과 정부 조직에서 일하는 엘리트 여성들을 억압한다 말할 수 있을까요? 빈곤층에게 진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억압/피억압의 이분법적 페미니즘 세계관은 현실과 동떨어진 뜬구름 잡는 주장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지배계급은 남과 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환경 문제는 어떤가요? 탄소가스 배출로 환경이 파괴된다며 공장 가동을 멈추거나 줄여야 한다고 환경론자들과 민주당 지지자들은 주장합니다.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좋은 대학을 졸업해 3차 산업과 4차 산업에 종사하는 고소득 엘리트들입니다. 그들에게 기름내 나는 공장은 남의 일입니다. 하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 입장에서 탄소가스 배출 때문에 공장을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공장 노동자 대부분은 의무교육 조차 받지 못한 이들도 많습니다. 환경론자들의 주장은 곧 저소득층, 교육을 받지 못한 계층의 생존과 직결이 된 문제입니다. 그렇게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정치인들, 부자들은 배기가스 배출이 환경에 얼마나 해로운지 주장하며 사람들에게 자전거 이용을 권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리무진과 개인용 제트기를 타고 다닙니다. 아프리카의 기아를 위한 자선 행사에서 그들은 비싼 옷을 차려입고 나타나 캐비어와 트러플, 샴페인을 마시며 아프리카에서 굶는 아이들을 동정합니다. 



'Limosine Liberal' 혹은 '강남좌파'


그렇기 때문에 취약계층, 저소득층, 서민, 노동자들이 점점 민주당에게 등을 돌리는 것입니다. 워싱턴 DC에 처박혀서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는 진보 엘리트주의자들. 반면 트럼프는 기존 정치인들의 가식과 모순이 없는 이었습니다. 정치 신인이자 후원에 목매는 것도 아니었기에 눈치 볼 곳도 없었습니다. 그는 엘리트 정치인들에게서 소외됐던 이들에게 직접 다가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언어로 소통했습니다. 각종 이해관계자들에 얽매여 서민을 위하지 못하는 대부분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속 시원한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었습니다. 그러면서 진짜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간파했습니다. 힐러리가 부자의 돈을 모금하기 위해 워싱턴과 뉴욕에서 고상한 말과 농담 따먹기를 하는 동안 트럼프는 패배감과 박탈감에 빠져있던 백인들을 만나고 다녔던 것입니다.


리무진을 타고 다니는 진보주의자. 우리나라의 '강남좌파'와 같은 말입니다. 한국의 진보는 어떤가요. 서민과 노동자, 취약계층을 대변한다,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 부의 세습은 없어야 한다면서 정작 비정규직의 권리는 무시하고 기존 정규직 노조의 권리만 비대하게 늘려가면서 결국 '귀족 노조'를 만들어내고, 권력을 이용해 재개발될 곳에 미리 부동산을 사놓는가 하면 자신들의 자식은 사교육에 해외 유학에 인턴 품앗이도 모자라 허위 활동으로 서류를 꾸며 좋은 대학에 보내고 좋은 자리에 취직시키면서 부를 세습합니다. 애초에 부자들의 부의 세습과 탐욕을 비난하며 그런 부조리한 사회를 바꾸고 서민을 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하며 국민의 지지를 받은 것이 아니었던가요?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진보주의자들 역시 고등교육을 받은 자신들이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보수주의자들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시골에서 배우지도 못하고 농사짓고 가축이나 기르면서 총기를 사랑하는 공화당원과 그 지지자들을 문명화되지 못하고 천박한 '힐 빌리' 혹은 '레드 넥'이라 부르며 혐오합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합니다. 도덕적 우월감을 언제나 내비치고 보수당 지지자들을 향해 왜 부자만 위하는 보수를 지지하냐 비꼬죠. 태극기를 드는 노인들을 향해 60살이 넘으면 노망이 난다느니 일찍 죽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공공연하게 합니다. 지금 미국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limousine liberal'이나 '강남좌파'는 그런 진보주의자들의 모순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급 떨어지는 인간들"


멀리도 돌아왔습니다. 그럼 이제 영화 이야기를 해봅시다. 한 거대 기업의 사장(아테나)이 있습니다. '진보 엘리트'인 그녀는 자신의 저택으로 사람들(보수주의자)을 잡아다가 사냥한다는 루머가 돕니다. 그리고 그녀가 직원들과 나눈 대화가 해킹당해서 밖으로 유출됩니다. 그 문자 대화에서 그녀는 보수 지지자들 향해 'deplorables'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 드러나죠. 회사의 이미지 혹은 PR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가 그녀에게 말합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그녀는 대답합니다. 그냥 재미로 한 거고 장난이었다고요. 하지만 사실 영화 속 저 단어가 상징하는 바가 굉장히 큽니다.


구글 사전으로 검색하면 deplorable : deserving strong condemnation; shockingly bad in quality. 네이버 사전으로 보면 '개탄스러운'으로 나옵니다. 저기에 s가 붙었으니 '개탄스러운 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면 저 말이 실제로 사용되는 경멸적 뉘앙스가 살지 않습니다. 좀 더 뉘앙스를 살려보자면 '급 떨어지는 인간들', 혹은 '욕도 아까운 인간들'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 말이 상징하는 바가 왜 크냐면 저 단어가 실제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가 모금 행사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을 가리켜했던 말로 큰 이슈가 됐던 말이기 때문입니다. 


저 말 자체가 민주당 지지자들 스스로 얼마나 자신들을 고상하게 여기고, 공화당 지지자들을 수준 떨어지는 저질로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저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다른 이를 내리 깔면서 원색적인 비난을 한다는 것이 스스로의 가치와 덕목을 깎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그런 모순성을 풍자하는 것이죠.  


https://youtu.be/OZHp4JLWjNw 


위에서 말한 기업의 사장, 진보 엘리트 여자 악당인 '아테나'는 다른 진보 엘리트주의자들을 데리고 인터넷에서 자신을 모함하는 공화당 지지자들 중 12명을 색출해 약을 먹여 유럽 어딘가에 풀어놓고 그들을 사냥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정의구현이라 믿으면서. 진보 엘리트주의자들은 사냥꾼, 보수 지지자들은 사냥감. 영문을 모르는 사냥감들은 사냥꾼들로부터 살아남아야 합니다. 사냥감들은 한 명씩 차례로 죽어갑니다. 하지만 그들 중 한 명, 여자 주인공 '크리스탈'은 만만한 사냥감이 아닙니다. 그녀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입니다. 그럼 영화가 진보 엘리트주의자들의 모순을 풍자하는 몇 가지 대표적인 에피소드를 한번 보죠. 



에피소드 #1

사냥터로 향하는 개인 제트기에서 사냥꾼 중 한 명이 캐비어를 권하는 스튜어디스에게 캐비어를 먹어 봤냐고 묻습니다. 먹어보지 못했다는 그녀에게 그는 "나는 어제도 먹었다"며 과시하며 말하죠. 곧 샴페인을 마시겠냐 묻는 스튜어디스에게 이런 말도 합니다. 독일 잠수함이 배 한 척을 격침시킨 적이 있는데 나중에 그 격침된 배를 인양하는 과정에서 1907년도 산 샴페인을 발견했다고, 자신들의 우두머리인 아테나가 그중 한 병당 250,000달러를 주고 세 병을 샀는데 자기는 그걸 먹고 싶다고.



에피소드 #2

노부부가 3명의 사냥감(!)을 죽입니다. 부인이 시체를 처리하던 중 한 시체의 결혼반지를 보고 미안해합니다. 그러자 그의 남편이 말하길 


"그놈은 괴물이야, 여보, 그놈은 아마 n으로 시작하는 단어(negro)도 쓸걸? 사석에서 뿐 아니라 트위터에서도 말이야. 그자들(흑인)은 400년 동안이나 쓰레기 같은 백인 주인들 밑에서 고통받았어"


부인:

"그자들?"


남편:

"미안. 흑인들(Black people)."


부인: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해야지."


남편:

"여보, 흑인이라고 하는 건 전혀 문제없어."


부인:

"누가 그러는데?"


남편:

"NPR(공영방송)에서"





에피소드#3

같은 노부부. 그들은 가짜로 꾸며진 상점의 주인으로 행세해서 사냥감들을 유인합니다. 그 상점 안의 음식들에는 독이 있어서 사냥감(!)들이 먹으면 죽게 되죠. 하지만 남편이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하나 따서 마십니다. 그러자 부인 왈


"여보, 거기 독 들어있어"


남편:

"당신 음료수에도 독 넣었어?"


부인:

"아니, 음료수 한 병에 설탕이 43그램이나 들어있다고!"


미국에서 페스트 푸드는 저소득층이 주로 소비하는 걸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중산층 이상은 페스트 푸드와 탄산음료를 거의 쓰레기로 취급하면서 기피합니다. 대신 글루텐이 들지 않고, GMO 작물이 아닌 유기농으로 재배한 음식, 특히 채식 위주로 먹습니다. 그래서 저소득층의 고혈압과 비만, 당뇨 등 만성질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죠. 얼마 전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중 미국 내 특정지역과 흑인의 비율이 유난히 높다는 사실이 큰 이슈가 됐었는데, 그 이유는 병원을 가지 못하는 것도 한 몫하지만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영화 속에서 공화당 지지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노부부는 음료에 든 설탕을 독으로 여기며 끔찍이 피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사랑스럽게 키스를 나누죠.



에피소드 #4

사냥꾼들은 벙커에 모여서 에이즈, 아이티의 가난, 낙태 등등에 관해 목소리를 높여 정치적으로 매우 올바르게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옆에서 한 남자가 그들에게 목소리 좀 낮추라고 이야기하죠. 그는 사냥꾼들이 사냥감을 더 잘 죽이기 위해 조언하도록 고용된 군인입니다.





에피소드 #5

12명의 사냥감 중 단 두 명(여 주인공 크리스탈과 남자 한 명)이 남았습니다. 그들은 위에서 말한 사냥꾼들이 모여있는 벙커에 쳐들어가죠. 여 주인공은 아프가니스탄에 갔다 온 베테랑 군인입니다. 벙커 안에 있던 이들을 모두 처리하죠. 벙커 안에 모여 있던 진보 엘리트 사냥꾼들은 모두 죽고 여자 한 명만 화살에 꽂힌 채(!) 바닥에 쓰러져 있습니다. 주인공 크리스탈이 그녀를 마무리(!)하려고 권총을 조준하자, 옆의 남자 사냥감 생존자가 외칩니다,


"이봐, 그러면 안돼, 이 사람은 여자잖아"


주인공:

"(쓰러져있는 사냥꾼에게)이 봐, 당신은 여자가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자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아니"라고 대답하는 사냥꾼에게 크리스탈은 지체 없이 방아쇠를 당깁니다.



에피소드 #6

마지막으로 악당 아테네와 주인공 크리스탈이 저택에서 대면합니다. 크리스탈이 아테네에게 묻습니다. 내가 누군지 아냐고. 사냥꾼은 그녀가 어디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고, 그들의 아빠는 마약을 하고 엄마는 일찍 죽었다는 등 얼마나 불후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는지 대답해줍니다. 그러곤 고상하게 말하죠, 다른 사람들은 치즈를 구워 먹을 때 체다 치즈를 쓰지만 자신은 '그뤼에르'를 쓴다고. 아테네는 대사를 이어갑니다. 


"너는 능력이 없어서 항상 직장에서 잘리고 여기저기 옮겨 다녔지. 뭐 상관없어. 이 나라는 내 나라이기도 하지만, 교육 못 받고 무식한 너네 같은 사람들의 나라이기도하니까. 대신 너네가 실패하면 돈을 내면서 그 대가를 치르는 건 우리야. (중략) 너 같은 사람들은 아무 루머나 가져다가 그 병신 같은 세계관에 대입시켜 온통 왜곡시켜 버리지. 그리고 그게 사실이길 바라기 때문에 그걸 사실이라고 결론지어버리지."





하지만 아테네가 알고 있던 크리스탈의 불후한 과거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크리스탈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어머니는 아직 잘 살아있습니다. 


이 부분 또한 진보주의자들의 편견을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어딘가 고장 난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당신들이 지금 정신 나간 정치인들을 믿는 건 삶의 궤적 어딘가에서 필시 어떤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고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보수를 지지할 수가 없어."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인 크리스탈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자입니다. 심지어 그녀가 이 사냥터에 오게 된 건 아테네가 다른 사람과 크리스탈의 이름을 헷갈렸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테네는 미안하다거나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크리스탈이 말합니다.


"넌 진짜 진실에는 관심이 없는 거야, 그렇잖아?"


아테네:

"당연히 관심 있지. 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엔 내가 옳다는 거야."

 

절대 인정 안 하는 건 한국 진보와 똑같네요. 뭐 보수라고 크게 다를 건 없긴 하지만.



베티 길핀



이 영화에서 한 가지 빠뜨려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 '크리스탈' 역의 '베티 길핀'. 이 배우의 연기는 정말 일품입니다. 일품을 떠나 이 영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단순히 주연이기 때문에 배역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유전>의 토니 콜렛과 어딘가 닮은 듯한 외모에 능청스럽게 눈썹을 씰룩거리며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고 농담을 치는 그녀의 연기는 어딘가 연극적이고 과장된 느낌이 나려다가 기가 막히게 자연스럽게 스윽 흘러갑니다. 진지한 듯 유머스러운 듯 과장된 듯 자연스러운 듯 절묘한 줄타기를 하는 베티 길핀의 연기는 <더 헌트>가 가진 독특한 분위기와 세계관의 색깔을 규정합니다. 워낙 이 영화의 세계관 및 주변 인물들의 색이 유머인 듯 아닌 듯하기 때문에 주인공의 연기와 분위기에 따라 극 전체의 분위기가 바뀔 수 있는 거죠. 베티 길핀이 그 역할을 기가 막히게 해낸 것입니다. 만약 주인공이 다른 배우였다면, 이 영화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지금 이 분위기보다 좋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결국


이 영화의 결론은 보수가 좋고 진보가 나쁘다가 전혀 아닙니다. 전체적인 무게 중심은 진보의 모순을 풍자하는데 꽤 기울어 있기는 합니다. 작가나 감독이 왜 이런 무게 중심을 택하게 됐는지, 혹시 그들의 정치적 성향이 반영된 것은 아닌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는 더 알아봐야 할 문제이지만 결국 작가나 감독이 이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고어 호러 스릴러라는 장르를 빌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미국의 심각한 정치적 양극화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죄의식 없이 즐겁게 그들을 죽이는 사람들이 정작 음료수에 든 설탕 함량을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컷은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자 최근 몇 년 간 본 가장 날카롭고 영리하면서 흥미로운 정치 풍자가 아닐까 합니다.



끝으로


저의 정치성향은 굉장한 보수도 그렇다고 굉장한 진보도 아닙니다. 우리가 1940년대의 이태리, 독일, 일본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지향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에서 좌와 우의 협력은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민주주의는 더 나은 사회가 아닌 오직 선거 승리에만 집착해 양쪽 모두 우리 편의 '우상화'와 상대 편의 '악마화'에만 빠져있습니다. 


저는 좌나 우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영화와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보적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정치를 비판하는 것이 왜 나쁘겠습니까, 문제는 일방향으로 치우칠 때입니다. 현상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그 현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때 가능합니다. 지금의 영화계는 너무 한쪽에만 치우친 관점 만을 렌즈에 담고 있습니다. 제가 <더 헌트>를 유독 통쾌하게 본 이유, 그 용기가 대단하다 느끼는 이유도 위에서 말한 제 개인적인 철학 때문일 것입니다.


<더 헌트>는 <익스트랙션> 같은 공산품들만 보다가 오랜만에 시원한 칠성사이다 한 병 원샷한 청량감을 줬습니다. 마지막 컷과 대사가 주는 그 통쾌함이란! 혹시 영화를 보지 않고 이 글을 읽으시는 (정신 나간)분이 계시다면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1) 잔인함 주의 (2)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같은 제목의 영화와 헷갈리지 마시길!



ps.

이 영화 개봉 전 트럼프는 보수 지지자들이 진보 엘리트들에 의해 사냥당한다는 줄거리만을 보고 트위터로 굉장한 비난을 날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 영화를 본다면, 아마 그의 인생 최애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ps 2.

이 영화에 대한 미디어의 평가는 미국 현지에서 매우 상반된 반응을 보입니다. 많은 매체를 보지는 않았지만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이며 트럼프와 날을 세우고 있는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가 꽤나 상반된 리뷰를 쓴 게 대표적입니다. 뉴욕 타임스는 호평을 보낸 반면, 포스트는 혹평을 썼는데 고상한 말을 잔뜩 쓰면서 혹평을 하던 포스트 리뷰는 이런 블룸하우스류의 장르물에 너무 감정적이고 옹졸한 방응이 아닌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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