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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un 04. 2020

The Last Dance

황제에 걸맞은 이야기





아마도 제 리뷰를 종종 읽으시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제가 얼마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에 질려 있는지. 하지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넷플릭스가 지닌 장점이 하나 있으니 그건 다큐멘터리. 지금까지 본 거의 대부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는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농구 황제의 다큐멘터리는 그 만족의 정점이 아닐까 합니다(ESPN과 어느 정도의 협업이 이뤄졌는지 모르겠지만). 에피소드 하나가 끝날 때면 그제야 깊은 몰입에서 빠져나와 크게 숨을 한 번 몰아쉬게 됩니다. 이보다 더 멋진 다큐멘터리가 또 나올 수 있을까 싶습니다.


<더 라스트 댄스>를 보면서 묘하게 기시감이 들었는데, 그건 예전 스티브 잡스 자서전을 읽을 때의 그 느낌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생명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 같다고 느낀 시점에 일찍이 본인이 직접 낙점한 작가 월터 아이작슨에게 자서전을 부탁했더랬습니다. 그렇게 이른 시점(!)에 시작된 자서전 집필 덕분(!)에 자서전은 잡스의 죽음 후 절묘한 시점에 출판되어 세상에 나왔고 곧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몸이 달아있던 저는 번역본을 기다릴 수 없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원서를 주문했고 어딜 가나 끼고 다니며 잡스의 삶을 탐독했습니다. 그 자서전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활자 속 스티브 잡스는 비즈니스 잡지나 헤드라인에서 보는 화려한 영웅이나 기업인이 아닌 자연인 잡스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서전은 차분히 한 꺼풀씩 그의 신화와 명성, 유명세를 벗겨내며 나약하고 고집 세고 비겁한 인간, 스티브 잡스를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어딘가에서는 영웅 혹은 천재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인물이지만 어딘가에서는 증오와 미움을 받았던 한 명의 인간, 그 자서전은 스티브 잡스를 입체적이고 디테일하게 묘사하면서 벌거벗은 본래의 모습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사실 스티브 잡스 자서전에 비하면 <더 라스트 댄스>는 조금 더 조던을 멋진 신화로 포장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아무래도 영상 매체와 활자 간 플랫폼의 차이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다큐가 아직 조던이 살아있는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결정적으로는 두 콘텐츠의 제작 의도 자체가 달라서이겠죠.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이 죽음 앞에서 '벌거벗은 한 인간'의 모습을 사실대로 그려내는 의도였다면, 이 다큐멘터리는 "더 라스트 댄스", 즉 시카고 불스와 마이클 조던의 두 번째 쓰리핏(3연속 우승)이자 마지막 우승인 1998년 우승, 그 영광과 그를 향한 마이클 조던의 커리어에 의도가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다큐는 꽤 다양한 각도에서 조던을 조망하며 입체적으로 그려내려 노력합니다. 요즘 조던의 독재적인 리더십을 두고 꽤 여러 말들이 많은데, 조던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언제 한번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 라스트 댄스>는 다큐멘터리라는 외피를 지니고 있지만, 이 다큐가 내재하고 있는 각종 요소들, 1998년 조던의 마지막 우승과 그의 커리어 초기부터 1998년을 연대기 순으로 되짚는 두 개의 서사가 교차하며 오가는 플롯, 극적인 음악과 편집의 내러티브 등은 이 다큐를 드라마나 영화라고 불러도 무색하게 만듭니다. 영화 같은 다큐. 이 다큐의 여러 장치들이 이야기의 서사를 매우 극적으로 상승시키는 측면이 없잖게 있지만 "세기의 운동선수", "모든 운동선수 중의 운동선수", "농구의 신"이 거쳐온 그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한 삶과 커리어의 인생 곡선, 그리고 그 곡선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애초에 이런 다큐는 불가능했겠죠.


아직 다큐멘터리에서 그의 "마지막 춤"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농구 황제"의 그 모든 여정이 끝나면 그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1990년대를 관통한 사람이라면 그 시대가 농구의 시대, 마이클 조던의 시대였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당시 농구 코트에서는 어느 하나 어설프게 다리를 벌리고 혀를 내밀며 조던 흉내를 내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그는 농구라는 스포츠를 넘어 문화와 시대의 아이콘이었습니다. 그 마이클 조던의 삶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이렇게 멋진 영상과 내러티브로 엿볼 수 있는 경험은 결코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닐 것입니다. 




ps.

<더 라스트 댄스>가 보이는 극적인 다큐 형식, 즉 영화적 장치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방식은 시청자에게 더 강한 정서와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반면 사실을 "더" 왜곡하거나 사건의 여러 면 중 한 면 만을 부각시켜 다큐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왜 "더" 왜곡할 수 있다고 말했는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다큐멘터리는 곧 사실, 팩트, 정의, 진실"이라 믿는 경향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논픽션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곧 다큐멘터리가 진실이라는 말은 아닙니다(그렇게 보이지만). 


많은 영상 기록 중 어떤 영상을 사용할지, 많은 관련자 중 누구를 섭외해서 인터뷰를 딸지, 많은 인터뷰 속에서 어떤 말을 선택할지 등등 다큐멘터리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사건이나 인물을 다루는 PD의 주관적 시각과 태도,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상들을 어떤 색감, 어떤 플롯, 어떤 순서로, 어떻게 잘라 붙일 것인지, 어느 부분에서 어떤 음악을 삽입할 것이며 어떤 나레이션을 넣어 영상에 직접 개입할 것인지 등등, 즉 단편적 정보의 조각들을 어떻게 이어붙여 어떤 모습으로 시청자/관객에게 전달할지 역시 전적으로 PD 주관의 영역입니다. 이는 곧 다큐멘터리가 주제를 전달함에 있어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사실 왜곡과 주관적 편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더 라스트 댄스>가 마이클 조던이 아닌 "배드 보이즈"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아이제이어 토마스의 다큐멘터리였다면 마이클 조던의 모습은 또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겠죠. 그렇게 다큐멘터리는 PD의 믿음과 주관에 따라 같은 사건도 전혀 다른 모습과 의미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드라이한 전달방식을 버리고 시청자의 더 강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극적인 편집과 음악, 영상 등을 쓴다면 왜곡과 편향이 더 강화될 개연성은 한층 높아지죠. 그러니 다큐멘터리를 시청할 때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다큐 속 사건이나 인물이 어느 한 면 만을 취사선택되어 전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인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면에서 <더 라스트 댄스>가 과거 논란이 있었거나 일 수 있는 부분에서 당사자의 일방적 말이 아닌 관련자의 인터뷰를 서로 보여주며 그것에 대한 코멘트나 반응을 보여주는 방식은 꽤 좋은 장치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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