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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Sep 11. 2020

작은 조각들

신문 쪼가리들과 나


방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양의 책을 버렸습니다. 책장 구석에서 아주 불룩하고 오래된 서류 봉투 두 개를 꺼냈습니다. 기억에서 잊고 있었던 신문 스크랩. 예전의 저는 책을 읽는 것도 좋아했지만 신문을 읽는 것도 좋아했었습니다. 대학 4학년 때는 신문 6~7종류를 매일 보기도 했었죠. 물론 모든 신문의 모든 섹션을 꼼꼼히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은 진보, 보수, 중도 각각 개별적인 미디어가 지닌 한계를 명확히 깨닫게 해 줬고, 또한 그 한계(혹은 논조)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 줬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의 입체성과 복잡성을 깨닫게 해 줬습니다. 신문을 펼치는 건 세상과 사회를 향해 난 창을 여는 것과 같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신문 스크랩을 하게 된 건 2011년부터 입니다. 그전에도 마음에 드는 구절을 어딘가에 끄적여두기도 하고 그랬습니다만 인상 깊은 기사나 페이지를 오려 한 곳에 보관하게 된 건 2011년부터 입니다. 하지만 여느 '즐겨찾기'가 그렇듯 스크랩이란 의례 한 번 봉투에 들어가면 다시 꺼내 보지 않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꺼내보지도 않을 기사들을 하염없이 봉투에 넣어두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스크랩 활동이 잦아들었고 이내 서류봉투는 책장 가장 구석 자리에 처박히곤 다신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방바닥에 기사 쪼가리들을 쏟아놓곤 주욱 훑어봤습니다. 금융부터, 경제, 사회, 경영, 예술, 국제관계, 역사까지 중구난방 계통 없이 참 여러 기사들을 모았구나 싶습니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 특집 기사부터 쿠르드 민족의 기원, 태양의 서커스를 만든 이와의 인터뷰, 중국의 살아있는 제갈량이라 불리는 왕후닝, 종합소득세와 보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기사까지 참 다양하기도 합니다.



현재의 내가 사회를 바라보고 기업을 바라보고 인간을 바라보고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 이 노랗게 빛바랜 종이신문 기사들, 계통 없이 난잡하고 파편적인 이 기사들이 모여 지금 나의 인식과 사고 체계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참 왕성한 호기심을 지닌 청년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걸 알고 싶었고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를 읽으면 다섯이 더 궁금해져 닥치는 대로 읽었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영감을 받았고, 생각의 조각을 모으려 사유했고, 그것이 제 생각과 행동에 스며들도록 노력했습니다. 



왕성하고 치열했던 그때 생각이 문득 납니다. 오늘 밤은 저 자신에게 부끄러워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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