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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Nov 21. 2021

빌뇌브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장엄한 영상미의 극치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전부터 뛰어난 영상과 탄탄한 연출을 고루 갖춘 감독으로 정평이 나있었습니다. 특히 빌뇌브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영상미는 단순한 아름다움이나 거대한 스케일을 넘어 어떤 먹먹함 혹은 장엄함을 주는 독특함을 지닙니다. 아마도 그 첫 시작은 <시카리오>가 아닐까 합니다. <시카리오>는 언제 어디서 무엇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과 긴장을 러닝타임 내내 유지하는 매우 훌륭한 영화인데요. 빌뇌브 감독은 영화 중간중간 버드 아이 뷰라고 부르는 높은 하늘에서 하이 앵글로 원경을 찍는 컷을 삽입합니다. 인물과 사건 깊숙이 파고들어 매우 밀도 높은 긴장을 조성하던 카메라가 갑자기 황량한 사막의 원경을 느리게 조감하죠. 그 타이트함과 느슨함이 주는 긴장의 대비는 매우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몇 초간 느리게 이어지는 그 컷으로 인해 영화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먹먹하고 무거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함과 동시에 많은 해석의 여지를 관객에게 던져줍니다. 탁월한 미장센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 원경이 주는 대비감에 중독(!)된 것일까 그는 <블레이드 러너 2049>와 <컨택트>에서도 이어갑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시카리오>에선 그저 원경을 조감했다면 이후의 두 영화에서는 원경과 오브젝트를 대비시켜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것. <컨택트>에서는 그런 미장센에 하나의 요소를 더 추가하는데 바로 사운드 이팩트입니다. 외계 우주선을 원경에서 자연과 대비시킬 때마다 뱃고동 소리 같은 부웅하는 사운드 이팩트를 삽입하는데 장엄한 미장센에 풍부한 볼륨감을 더하는 효과적인 장치였습니다.



<듄>의 영상을 보고 있으면 이전 세 작품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멀리서 가만히 사막을 조감하는 영상은 당연히 <시카리오>가, 이리저리 지나다니고 우주선들의 모습과 직선으로 이뤄진 거대한 실내의 공간감, 곳곳에서 드러나는 동양적 요소들은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유선형의 매우 거대한 우주선의 스케일감과 그 우주선이 발산하는 독특한 사운드 이팩트, 그리고 거대한 우주선과 매우 작은 인간들의 극명한 대비는 <컨택트>가 떠오릅니다. 말하자면 빌뇌브 감독은 <듄>이라는 엄청난 프로젝트를 통해 지금까지 갈고닦은 특유의 장엄한 영상미를 마음껏 발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뛰어난 영상미는 활자로만 존재하던 <듄>의 세계관을 매우 설득력있고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듄>은 전형적인 영웅과 제국의 서사인 아버지의 황망한 죽음과 준비되지 않은 아들의 고난과 극복을 통한 가문의 멸망과 부활이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가문인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중심으로 여러 집단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고 지금의 석유와 같은 매우 중요한 천연자원인 '스파이스'를 둘러싼 집단들의 암투가 이뤄지면서 서사의 볼륨을 채웁니다. <듄>의 원작 소설은 그 책이 매우 두껍기로 유명한데, 저는 당연히(!) 읽지 않아서 원작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만 영화만을 놓고 보자면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라이벌인 '하코넨' 가문의 갈등을 중심축으로 놓고 실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황제의 존재와 독특한 정신능력을 지닌 비밀스러운 여성 집단 '베네 게세리트', 후속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사막 집단 '프레멘 족' 등을 주변에 배치시킨 서사는 균형을 잘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아라키스' 행성에 도착하자마자 하코넨 가문에게 공격을 받고 하루아침에 붕괴되어 버리는 것. 영화에서는 수백 년 간 두 가문 사이 정쟁과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고 했는데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의사가 내린 방어막 하나 때문에 우주에서 손꼽는 전투력을 지닌 명문 가문이 하루아침에 몰락해버리는 이야기는 너무 급작스러운 전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도 라이벌 가문과의 첫 전투도 아닌 수백 년 간 전투가 진행됐었다면 당연히 여러 방비가 철저하게 잘 되어 있었을 텐데 말이죠. 물론 방대한 내용을 자랑하는 원작 내용을 두 편의 영화로 끝내려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겠지만 차라리 수백 년간 라이벌을 이루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실제 전투가 이뤄진 건 꽤 오래전이고 그건 아트레이더스 가문을 방심하게 만들어 한 방의 일격으로 끝내기 위한 하코넨 가문의 '오바마 급 전략적 인내(!)'였다는 설정을 깔았다면 이런 급작스러운 전개가 좀 더 설득력을 갖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원작의 방대함을 감안하면 <듄> 1편은 상당량의 정보를 무리없이 관객에게 전달하면서 이야기도 전개시키는 좋은 균형을 갖추었다고 생각됩니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다면 이 영화는 중간중간 애매한 요소를 삽입해놨는데 아들과 엄마, 더 자세히 말하면 엄마의 감정선입니다.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연약하기만 한 아들을 보호하려는 엄마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가문의 몰락 이후부턴 교묘하고 모호하게 그 감정선이 애정으로 보이게 연출했다는 점입니다. 직접적인 대사나 행동은 없지만 1초, 2초 짧게 짧게 지나가는 눈빛이나 몸짓에서 분명히 그런 점이 드러나는데, 그것이 전형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분명히 아닙니다. 아들인 폴 아트레이드는 아버지인 레토 아트레이드에게 라이벌로서의 어떠한 반항이나 적개심을 드러내지 않고 엄마에게도 어떠한 모자 관계 이상을 넘은 애정을 드러내지 않거든요. 반면 엄마인 레이디 제시카 아트레이드에게서 모자 관계 이상의 무언가를 드러내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그저 그런 영화들에서 드러나는 단순한 연출이나 연기 실수는 아닐 것입니다. 그런 감정의 변화를 드러내는 연기가 짧고 모호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아들을 향한 엄마의 모종의 감정이 측은함인지 아니면 급격히 변화하는 아들을 향한 두려움인지 어떤 것인지는 2편에서 드러나겠죠.



<듄>은 오랜 기간 동안 영화화를 위한 많은 노력과 시도가 있었습니다. 영화 및 드라마로 실제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지만 모두 결과가 좋지는 못했죠. <듄>은 어찌 보면 할리우드가 풀지 못한 미완의 숙원 사업과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프로젝트는 실패할 확률이 높죠. 많은 이들의 관심이 제작 발표부터 쏠리고 그만큼 많은 자본과 스타들이 집결하면 배급사, 제작사, 에이전시, 대중, 마니아 집단까지 온갖 곳에서 간섭과 영향력이 행사됩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확률이 높죠. 수많은 이들이 오랜 기간 작업에 참여하고 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영화 제작 과정은 예술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큰 비즈니스에 가깝습니다. <듄>을 둘러싼 엄청난 이해관계와 그에 따른 부담감을 감내하면서 자신의 비전을 작품에 온전히 살린다는 것, 그런 작가주의적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이 정도의 상업적 완성도를 낸다는 것, 이 모든 것을 성취할 감독은 극히 드뭅니다. 그만큼 드니 빌뇌브 감독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감히 스티븐 스필버그나 제임스 카메론의 반열에 올랐다고 말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리들리 스콧의 수준이나 그 이상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ps. 영화에서 슬로 모션을 남발하는 좀 거시기하긴 했습니다. 자칫 우리 마이클 베이 형이 생각나려고 했었거든요.



ps 2. 현재 할리우드의 젊은 남자 배우 중 티모시 살라메만큼 스크린에서 매력과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가 누가 있을까요. 그의 눈빛과 몸짓에는 연약, 무기력, 공허, 반항적 이미지와 지적이면서 클래식한 이미지가 공존하면서 내뿜는 세련된 퇴폐미가 배어있습니다. 그 예전 제임스 딘이나 어린 시절의 에드워드 펄롱과는 또 다른, 더 현대적인 버전의 위험한(!) 매력. 티모시 살라메만큼의 다양한 레이어까지는 아니지만 제가 깜짝 놀랐던 배우는 로버트 패틴슨이었습니다. 그가 <테넷>에서 보여준 모습은 티모시 살라메보다 더 거칠고 날카로운 독사같은 치명적인 매력(무슨 말이지?)이었습니다. 곧 개봉할 <더 배트맨>이 기대되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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